[정문일침112] 한국 언론들이 놓친 훌륭한 보도감

중국시민 | 기사입력 2016/08/26 [19:19]

[정문일침112] 한국 언론들이 놓친 훌륭한 보도감

중국시민 | 입력 : 2016/08/26 [19:19]

한국언론들의 세부 캐기는 워낙 대단하다. 표정 하나, 단어 하나를 놓고 길다란 분석과 추측을 해내는 게 한국 기자들의 뛰어난 능력이다. 24일 조선(북한)의 잠수함 탄도미사일발사시험에 대해서도 김정은 위원장의 표정과 동작에서부터 어느 사람이 김 위원장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는데 이르기까지 여러 날 째 숱한 분석(?)기사들이 나온다. 발사성공으로 아무개가 김 위원장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걸 허락받았다는 기사를 보고 하품을 한 건 필자 하나뿐일까?

 

그런데 그처럼 세부를 잘 파고드는 한국언론들이 훌륭한 보도감을 놓쳤으니 참으로 이상하다. 혹시 관련기사가 나왔는데 필자가 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만, 김 위원장이 신을 신은 채 바닥에서 올방자(책상다리)를 틀고 앉은 데 대한 관심이 몇 해 전보다 훨씬 덜한 건 사실이다. 몇 해 전에 김 위원장이 어느 유치원(경상유치원이던가?)에 갔을 때 신을 신은 채로 장판에 앉고 그 곁에 아이들이 둘러싼데 대해 한국언론들이 얼마나 요란스레 떠들었던가! 헌데 이번에는 제2차 타격능력확보를 보여주는 잠수함탄도미사일발사시험성공이라는 하도 큰 이슈에 눌려서 신을 신은데 대해서는 신경쓰지 못했나? 아니면 이번엔 곁의 다른 사람들도 신을 신은 채로 바닥에 앉았기에 김 위원장 한 사람만 공격하기 머쓱해서일까?

 

야외에서는 신을 신은 채로 올방자를 틀고 앉는 게 자연스럽다만, 실내에서는 아무래도 신 신고 올방자 틀기가 이상하다.
조선중앙통신사가 보도에 곁들인 사진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는데 좀 늦지만 거들어본다.

 

우선 떠오른 건 1980년대 중반에 텔레비전으로 중국과 일본의 기사들이 창쟝(长江, 양자강)을 따라 내려오는 기선에서 벌이는 바둑대항전 장면이었다. 선실에 테이블과 소파들을 놓고 기사들이 대국하는데, 네워이핑(聂卫平)을 비롯한 중국기사들은 소파 아래쪽으로 다리를 드리우고 앉은데 반해, 일본 기사들은 소파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몇 해 지나 한국 바둑 수준이 급상승하여 중국, 한국, 일본 기사들이 시합을 빈번히 벌일 때에는 한결 흥미로운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적잖은 한국 기사들이 걸상이나 소파 뒤에 올방자를 틀고 앉았기 때문이다. 세 나라의 사람들이 세 가지 자세를 취하는 풍경이 상당기간 펼쳐졌다. 금년에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대결할 때에는 소파에 다리를 드리우고 앉았으므로 필자는 세상의 변화를 새삼스레 느꼈었다.

 

뒤이어 생각난 건 김일성 주석이 청산리 농민들과 마주 앉아 의논하는 사진이었다.

 

▲ 멍석위에 올방자를 틀고 앉아 격이 없이 농민들과 담화를 나누며 청산리 마을을 현지지도 하는 김일성 주석     © 자주시보, 중국시민


뒷날 아프리카의 어느 국가 수반이 청산리에 갔다가 기념사적물로 보관된 멍석을 보고 수원들을 불러 같이 그 자리에 앉아봤다는 일화가 있다. 사진에 나오는 김일성 주석의 자세는 일상적인 자세였다 한다.

 

조선평화통일지지 일본위원회 의장이었던 이와이(岩井章)가 1978년 금수산의사당에서 김일성 주석의 접견을 받고 오찬접대를 받았는데, 인삼술이랑 마시다가 무심결에 김 주석의 다리를 보니 걸상 위에 올방자를 틀었다. 김 주석은 이와이의 눈길을 알아채고는 미안하다고, 나는 집에서 구들에 앉는데 습관되었다고 해석했다. 이와이는 대번에 김 주석의 세심함과 겸손함,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느끼었다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전형적인 구들세대였기에 올방자 틀기가 편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구들에서 자라났는지는 사진자료들이 충분하지 않으나 유학을 했다니까 적어도 여러 해는 서양식 환경에서 생활했는데, 올방자를 틀고 앉은 장면을 여러 번 보였다. 한국식 보도법에 따르면 이거야 말로 “할아버지 따라하기”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니겠는가. 거기에 분석을 더 가하면 백성들에게 친근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라느니 얼마나 많은 글을 낳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그처럼 훌륭한 보도감을 놓쳤으니 한국기자들의 후각이 퇴화됐는지 아니면 필자가 지나치게 높은 요구를 제기했는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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