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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일화]11.제4차 중동전쟁에서 활약한 북한 군사고문단 (1)

해금강 | 기사입력 2017/06/16 [02:36]

[북한군일화]11.제4차 중동전쟁에서 활약한 북한 군사고문단 (1)

해금강 | 입력 : 2017/06/16 [02:36]

 

▲ 제4차 중동전쟁에 참전한 북 조종사들, 이집트 조종사가 팔짱을 낀 모습을 보니 얼마나 전우애가 강했는지 짐작이 간다.     ©자주시보

  
애급(이집트)의 사다트대통령은 1960년대 3차 중동전쟁 때 소련만 믿고 있다가 6일만에 무참히 패한 것을 복수하려는 의지로 우선 소련과의 군사교류를 중지하고 소련군사고문단을 철수시키며 비밀리에 북한 군사고문단을 초청하여 전쟁준비를 강행한 후 1973년 10월 6일 전쟁을 일으켜 시나이반도를 되찾는다.

 

이 전쟁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 여러 글들에서 펴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전쟁이 담고 있는 모든 사실을 다 반영하지 않고 있으며 특히 북한도 현재까지 러시아나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자기의 구체적인 활동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글에서는 4차 중동전쟁 과정에 지금까지 언론들에서 중요하게 보도하지 않았던 몇 가지 사실들을 통해 북한군이 활용하는 특이한 전법의 위력과 실지 전력을 가늠해 보려고 한다.

 

▲ 제4차 중동전쟁 당시 이집트군이 배치한 3연장 SA-6, 게인플(2K-12)과  1발짜리 SA-2, 가이드라인(뒤쪽) 지대공 미사일, 모두  당시엔 매우 위력적이었으며 지금도 이용되고 있다. 
▲ 제4차중동전쟁(욤 키푸르전쟁) SA-6게인플 지대공 미사일과 유도 레이더차량     © 자주시보

 

▲ SA-7 휴대용지대공미사일

 

3차 중동전쟁과 4차 중동전쟁에 이용된 애급과 이스라엘 쌍방의 병력과 무기기술장비는 큰 변화가 없다. 굳이 강조한다면 애급이 3차 중동전쟁 때 수백 대의 미그-21과 미그-23을 손실당한 후 취약해 진 공군력을 대신하기 위하여 소련으로부터 SA-6과 SA-7를 비밀리에 반입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스라엘이 정신적 우월감, 무기장비수준, 방어준비, 일상동원준비의 모든 면에서 애급을 압도하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
(참고, 2000년 이전에는 북한군에서도 소련제 대공미사일을 삼-2, 삼-4, 삼-6, 삼-7이라고 불렀다. 서방식으로 말하면 SA-2, SA-4, SA-6, SA-7이다. 최근에 와서야 러시아식으로 S-75, S-100, S-125, S-175, ... 라고 부른다. 여기서 SA-4는 S-125, SA-6은 S-175이며 SA-7은 소련이 처음 개발한 휴대형대공미사일을 의미한다. 굳이 북한에서 자체로 개발한 대공미사일과 대비한다면 각각 번개-1, 번개-2, 번개-3, 화승총에 대응한다.)

 

그런데 4차 중동전쟁은 첫 순간부터 애급의 일방적인 우세로 일관되었다. 만일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거나 전쟁의 결정적인 시각에 애급군 총참모부가 우유부단하지 않고 북한 군사고문단의 강경한 충고를 새겨들었다면 이스라엘군은 별로 저항해 보지도 못하고 완패하였을 것이다.


이 전쟁은 전쟁의 주체는 무기가 아니라 해당 나라 지도부와 국민의 전쟁의지, 군대의 전략전술과 군인들의 각오라는 사실을 다시금 증명하였다. 지금 대부분 언론들에서 이것을 애써 가리우려고 하지만 하늘의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는 없다.

 

▲ 1973년 제4차중동전쟁 당시 지휘실에서 지도를 보며 작전회의를 진행하는 사다트 대통령(가운데)     © 자주시보



1. 북한 군사고문단이 제기한 문제점들

 

초청받고 애급에 도착한 북한 군사고문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장비수준이 높은 애급군의 실태를 보고 깜짝 놀란다. 실지로 당시 북한군의 장비수준은 그리 높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이나 1950년대 한국전쟁 때 쓰던 장비들을 그대로 쓰는 부대가 태반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애급은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고 비교적 부유하게 살았으므로 북한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최신형 전투기들과 전차들, 미사일들을 충분히 장비하고 있었다.

 

북한 군사고문단은 애급군의 실태를 요해한 후 사다트대통령과 애급군 총참모부에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제기한다.

 

- 애급군의 전쟁의지는 확고하지 못하다. 우선 애급군 총참모부가 신심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대통령의 지시에 대한 무조건적인 집행정신이 없다. 또한 대부분 군인들은 이스라엘군대에 대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다.

 

- 소련이 제공한 교범과 전술에 의거해서는 안 된다. 애급군이 장비한 무기들은 이미 전에 이스라엘이 충분히 연구하고 대책을 세운 상태이므로 실지로 전쟁에서 자기 위력을 나타낸다고 보기 힘들다.

 

- 국민들이 전쟁에 대한 신심이 없고 두려워한다. 특히 애급보다 우세한 이스라엘공군을 결정적으로 제압하고 수도와 국민들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전쟁은 불가능하다.

 

이런 문제는 소련 군사고문단이라면 제기조차 못했던 내용들이다. 오직 자력으로 강대한 적과 간고하게 맞서 싸운 경험이 있는 북한만이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인데 이것은 사다트대통령과 애급 군부의 주요 간부들의 지지를 받았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가겠는가 하는 것이다.
북한 군사고문단의 능력이란 북한에서 배우고 체험한 것밖에 없으므로 결국은 북한의 경험을 애급의 실정에 맞게 적용하는 방향에서 해결하여야 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한의 경험을 애급의 실정에 맞게 적용한다는 문구이다.
소련은 애급의 구체적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저들의 경험과 교범을 강제로 내리먹였다면 북한은 자기의 경험을 철저히 애급사람들이 인정한 조건에서, 그들의 입맛에 맞게 가공하여, 그들의 것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북한 군사고문단의 존재에 대해서는 사다트대통령과 애급군 총참모부의 제한된 성원들만 알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지어 정탐에서는 최고라고 자처하는 이스라엘의 모사드도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그 어떤 낌새도 채지 못 했는데 이것은 반탐분야에서 하나의 중요한 경험이다.

 

북한 군사고문단은 크게 작전부문, 공병부문, 특수전부문, 통신부문, 공군부문, 반항공부문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공군부문은 많이 취급되었으므로 될수록 약하고 다른 부문들만 설명한다.

 

▲ 수에즈운하 전 전선에서 집중포격으로 이스라엘 방어선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빠른 속도로 시나이반도로 진격해들어간 전법이 한국전쟁 당시 북이 38선을 돌파하여 빠른 속도로 남하했던 것과 비슷하다.     © 자주시보

 


2. 유사한 두 전쟁의 수행방식과 군내부의 정신교양

 

사실 세계전쟁사를 깊이 연구하면 유사한 전쟁들이 적지 않은데 바로 한국전쟁과 4차 중동전쟁이 대표적 실례이다. 정말이지 4차 중동전쟁은 꼭 1950년 여름의 한국전쟁 초기를 방불케 한다.

 

- 북한은 1950년 여름에 전쟁준비를 하면서 5월부터 미국과 한국이 눈치 채지 못하게 주력부대들을 농촌지원의 명목으로 황해도와 강원도에 이동 배치한다. 이와 비슷하게 애급군도 훈련과 휴가의 명목으로 이스라엘의 의심을 받지 않게 주요 부대들을 수에즈운하계선에 집중배치하는데 성공한다.

 

- 북한은 1950년 여름에 전쟁승리의 기본요인을 단기간에 서울을 점령하는데 두고 대부분 38도선 근방에만 배치되어 있는 한국군을 소멸한 다음 미군이 개입하기 전에 전격전으로 대전과 부산을 점령하려고 기획한다. 물론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애급군도 전쟁승리의 기본요인을 수에즈운하를 단번에 강행 도하하는데 두고 운하를 경계로 종심이 깊지 않은 이스라엘군 방어진을 짧은 기간에 격파소멸한 다음 후방에 배치된 이스라엘군이 미처 진출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전격적으로 시나이반도를 점령하는 방법으로 전쟁을 결속하려는 작전 안을 세운다. 물론 꼭 이 기획대로 전쟁이 되지 않았다. 너무도 신통히 방불케 하는 전쟁방안과 진행과정이다.
두 전쟁 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승패는 너무도 명백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반드시 강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애급군 내부에서 사다트대통령에 대한 우상화와 총참모부 지시집행에서의 절대성, 전쟁의 필요성과 승리의 신심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신교양을 대대적으로 강화한 것이다. 이것은 북한이 전통적으로 해오는 사상교양사업과 같은 것으로서 애급의 입장에서는 3차 중동전쟁의 교훈으로부터 쉽게 접수되어 매우 강도 높게 진행한다. 그러나 이 사실에 대해서 서방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3. 승리에 대한 신심을 키워 주고 전쟁공포심을 없애는 사업

 

아무리 무장이 좋아도 군인이 전쟁과 전투에 대하여 공포심을 가지고 있으면 무용지물이다. 더욱이 3차 중동전쟁을 치르면서 이스라엘보다 기술적으로 열세한 상황에 처한 애급군에 있어서 군인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무기가 이스라엘군의 무기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전쟁을 할 수 없다.
이 문제를 북한군사대표단은 다음과 같이 해결하였다.

 

- 우선 총참모부와 주요 부대의 담당참모들을 준비시키는데 일차적인 힘을 넣었다. 그들을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실지 동작으로 하나하나 배워 주고 머리를 틔워주어 그들이 애급군이 현재 장비하고 있는 무기장비가 결코 이스라엘 무기보다 못하지 않으며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게 하였으며 소련의 전법이나 교범이 기준이 아니라 무기를 장비하고 운용하는 주체인 애급군의 실정이 기준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기발한 전술방안들을 부단히 창조하고 무기들을 개량하도록 하였다.
이 과정에 민간소방차 몇대로 수에즈운하 모래 둑을 허무는 세계전쟁사 어디에도 없었던 기발한 전술방안, 대구경포병화력을 최대로 집중하여 수에즈운하에서 방어하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정신적으로 제압하고 완전소멸하는 전법, 7호발사관을 장비한 결사대로 이스라엘전차들을 격파하는 전법, 낡은 통신기재들을 개조하고 전술적으로 잘 운용하어 이스라엘과 서방, 소련을 기죽게 하는 전자장애를 조성하는 전법, SA-6을 위주로 여기에 SA-4와 SA-7, 소구경대공포를 3~4층으로 배치하어 수도 카이로 상공에 날아드는 이스라엘 전폭기들을 모조리 격추하는 전법, 미그-17을 근접지원기로 활용하는 전법 등 4차 중동전쟁을 대표하는 수많은 전법들이 태어났는데 이것들은 북한 군사고문단의 고심어린 탐구와 노력, 정력적인 지도에 의해 태어 난 그야말로 애급의 실정에 꼭 맞으면서도 이스라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전법으로서 세계전쟁사에 빛나는 한 페이지를 기록하였다.
아마도 4차 중동전쟁이후 전쟁에서 거둔 귀중한 경험과 교훈을 잘 총화하고 부단히 연구발전시켰다면 1982년 5차 중동전쟁 때 시리아가 쓰디쓴 패배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 전쟁과 전투의 기본참가자인 군인들을 준비시키는데 매우 큰 힘을 넣었다. 이를 위해 특공대를 조직하고 북한 군사고문단 특수전담당교관들이 직접 훈련을 집행한다. 그것은 특공대가 돌파구를 열면 나머지 부대들은 별로 걱정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특공대는 이스라엘에 대한 복수심이 가득한 군인들로 자원선발하여 조직하였다. 다음 특공대원들에게 북한 특유의 고강도훈련을 들이먹였다. 그 훈련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은 훗날 북한 군사고문단이 철수할 때 제일 서운해 하고 눈물을 많이 흘린 군인들이 바로 특공대 대원들이였다는 하나의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전장에서는 아무런 무서움이 없이 수에즈운하를 번개처럼 돌파하고, 반격하는 이스라엘 전차를 맞받아 7호발사관을 들고 나가면서도 죽음에 대한 공포와 눈물을 몰랐던 4차 중동전쟁의 영웅들이였지만 귀국하는 북한 군사고문단 특수전담당 교관들을 붙잡고 눈물을 흘린 것은 어제 날의 겁쟁이에 불과했던 자기들을 참다운 군인으로, 영웅으로 키워주었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고, 또 부어 준 북한 군사고문단에 대한 최대의 믿음과 경의의 표시였다.
특공대는 70cm높이에 기관총실탄들이 무섭게 빗발치는 상황에서 각종 장애물들을 신속정확히 극복하고 지정된 대상물을 점령하는 훈련, 상상을 초월하는 초강행군훈련, 고도의 실탄사격훈련, 피투성이의 태권도훈련, 짧은 시간 내에 사막과 초원에 아무런 흔적 없이 은폐하였다가 적을 불의에 기습타격하고 신속히 이탈하는 훈련들을 몇 달 동안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 특공대원들은 점차 겁을 모르고 그 어떤 정황 속에서도 적을 타격소멸할 수 있는 만능병사로 준비 되였으며 애급군의 별로 성장했다.
이러한 경험에 토대하어 애급군에서는 우세한 이스라엘의 전차부대를 소멸하기 위하여 전문적으로 7호발사관으로만 무장한 특공대들을 추가적으로 조직하였다. 이 특공대는 이스라엘 전차가 지나갈 수 있는 노상에 개인점호를 파고 은폐하였다가 전차가 지나 간 다음 뒤에서 일어나 전차의 엔진이나 무한궤도를 목표로 7호발사관을 발사하는 훈련을 기본으로 진행하였는데 전쟁과정에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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