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쟁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 여러 글들에서 펴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전쟁이 담고 있는 모든 사실을 다 반영하지 않고 있으며 특히 북한도 현재까지 러시아나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자기의 구체적인 활동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글에서는 4차 중동전쟁 과정에 지금까지 언론들에서 중요하게 보도하지 않았던 몇 가지 사실들을 통해 북한군이 활용하는 특이한 전법의 위력과 실지 전력을 가늠해 보려고 한다.
3차 중동전쟁과 4차 중동전쟁에 이용된 애급과 이스라엘 쌍방의 병력과 무기기술장비는 큰 변화가 없다. 굳이 강조한다면 애급이 3차 중동전쟁 때 수백 대의 미그-21과 미그-23을 손실당한 후 취약해 진 공군력을 대신하기 위하여 소련으로부터 SA-6과 SA-7를 비밀리에 반입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스라엘이 정신적 우월감, 무기장비수준, 방어준비, 일상동원준비의 모든 면에서 애급을 압도하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4차 중동전쟁은 첫 순간부터 애급의 일방적인 우세로 일관되었다. 만일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거나 전쟁의 결정적인 시각에 애급군 총참모부가 우유부단하지 않고 북한 군사고문단의 강경한 충고를 새겨들었다면 이스라엘군은 별로 저항해 보지도 못하고 완패하였을 것이다.
초청받고 애급에 도착한 북한 군사고문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장비수준이 높은 애급군의 실태를 보고 깜짝 놀란다. 실지로 당시 북한군의 장비수준은 그리 높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이나 1950년대 한국전쟁 때 쓰던 장비들을 그대로 쓰는 부대가 태반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애급은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고 비교적 부유하게 살았으므로 북한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최신형 전투기들과 전차들, 미사일들을 충분히 장비하고 있었다.
북한 군사고문단은 애급군의 실태를 요해한 후 사다트대통령과 애급군 총참모부에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제기한다.
- 애급군의 전쟁의지는 확고하지 못하다. 우선 애급군 총참모부가 신심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대통령의 지시에 대한 무조건적인 집행정신이 없다. 또한 대부분 군인들은 이스라엘군대에 대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다.
- 소련이 제공한 교범과 전술에 의거해서는 안 된다. 애급군이 장비한 무기들은 이미 전에 이스라엘이 충분히 연구하고 대책을 세운 상태이므로 실지로 전쟁에서 자기 위력을 나타낸다고 보기 힘들다.
- 국민들이 전쟁에 대한 신심이 없고 두려워한다. 특히 애급보다 우세한 이스라엘공군을 결정적으로 제압하고 수도와 국민들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전쟁은 불가능하다.
이런 문제는 소련 군사고문단이라면 제기조차 못했던 내용들이다. 오직 자력으로 강대한 적과 간고하게 맞서 싸운 경험이 있는 북한만이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인데 이것은 사다트대통령과 애급 군부의 주요 간부들의 지지를 받았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가겠는가 하는 것이다.
북한 군사고문단의 존재에 대해서는 사다트대통령과 애급군 총참모부의 제한된 성원들만 알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지어 정탐에서는 최고라고 자처하는 이스라엘의 모사드도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그 어떤 낌새도 채지 못 했는데 이것은 반탐분야에서 하나의 중요한 경험이다.
북한 군사고문단은 크게 작전부문, 공병부문, 특수전부문, 통신부문, 공군부문, 반항공부문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공군부문은 많이 취급되었으므로 될수록 약하고 다른 부문들만 설명한다.
사실 세계전쟁사를 깊이 연구하면 유사한 전쟁들이 적지 않은데 바로 한국전쟁과 4차 중동전쟁이 대표적 실례이다. 정말이지 4차 중동전쟁은 꼭 1950년 여름의 한국전쟁 초기를 방불케 한다.
- 북한은 1950년 여름에 전쟁준비를 하면서 5월부터 미국과 한국이 눈치 채지 못하게 주력부대들을 농촌지원의 명목으로 황해도와 강원도에 이동 배치한다. 이와 비슷하게 애급군도 훈련과 휴가의 명목으로 이스라엘의 의심을 받지 않게 주요 부대들을 수에즈운하계선에 집중배치하는데 성공한다.
- 북한은 1950년 여름에 전쟁승리의 기본요인을 단기간에 서울을 점령하는데 두고 대부분 38도선 근방에만 배치되어 있는 한국군을 소멸한 다음 미군이 개입하기 전에 전격전으로 대전과 부산을 점령하려고 기획한다. 물론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애급군도 전쟁승리의 기본요인을 수에즈운하를 단번에 강행 도하하는데 두고 운하를 경계로 종심이 깊지 않은 이스라엘군 방어진을 짧은 기간에 격파소멸한 다음 후방에 배치된 이스라엘군이 미처 진출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전격적으로 시나이반도를 점령하는 방법으로 전쟁을 결속하려는 작전 안을 세운다. 물론 꼭 이 기획대로 전쟁이 되지 않았다. 너무도 신통히 방불케 하는 전쟁방안과 진행과정이다.
이와 함께 반드시 강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애급군 내부에서 사다트대통령에 대한 우상화와 총참모부 지시집행에서의 절대성, 전쟁의 필요성과 승리의 신심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신교양을 대대적으로 강화한 것이다. 이것은 북한이 전통적으로 해오는 사상교양사업과 같은 것으로서 애급의 입장에서는 3차 중동전쟁의 교훈으로부터 쉽게 접수되어 매우 강도 높게 진행한다. 그러나 이 사실에 대해서 서방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아무리 무장이 좋아도 군인이 전쟁과 전투에 대하여 공포심을 가지고 있으면 무용지물이다. 더욱이 3차 중동전쟁을 치르면서 이스라엘보다 기술적으로 열세한 상황에 처한 애급군에 있어서 군인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무기가 이스라엘군의 무기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전쟁을 할 수 없다.
- 우선 총참모부와 주요 부대의 담당참모들을 준비시키는데 일차적인 힘을 넣었다. 그들을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실지 동작으로 하나하나 배워 주고 머리를 틔워주어 그들이 애급군이 현재 장비하고 있는 무기장비가 결코 이스라엘 무기보다 못하지 않으며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게 하였으며 소련의 전법이나 교범이 기준이 아니라 무기를 장비하고 운용하는 주체인 애급군의 실정이 기준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기발한 전술방안들을 부단히 창조하고 무기들을 개량하도록 하였다.
- 전쟁과 전투의 기본참가자인 군인들을 준비시키는데 매우 큰 힘을 넣었다. 이를 위해 특공대를 조직하고 북한 군사고문단 특수전담당교관들이 직접 훈련을 집행한다. 그것은 특공대가 돌파구를 열면 나머지 부대들은 별로 걱정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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