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말 한국에서 최대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이 29일 중국 시안시(西安市, 서안시)에서 일어난 사건 하나를 전했다. 태권도 챔피언 아내와 산타(散打) 선수 남편이 심하게 말다툼을 하다가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이 무술 챔피언 부부는 전날밤 심한 말다툼을 했고, 그 와중에 아내가 자신의 트로피를 부수자 남편도 복수심에 아내의 메달을 삼켜버렸다고. 산타는 중국의 전통무술인 쿵푸를 애초 군용(軍用)무술로 가르치고 이를 다시 현대적인 형태로 발전시킨 무술이다.”
일보는 중국 어느 신문의 31일 자 보도를 운운했는데, 중국보도에서는 산타를 해석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한국의 일보가 한국독자들을 위해 친절하게 해석을 붙인 건 대형일간지다운 처사다. 단 여기서 트로피 부분은 중국어 보도들과 다르다.
“丈夫一气之下将自己的奖杯摔碎,将妻子的奖牌吞入腹中,后到医院将异物取出。 (남편은 홧김에 자신의 트로피를 둘러메치어 부셔버렸고 아내의 메달을 삼켰다가 그 뒤 병원에 가서 이물을 빼냈다.)”
어떤 보도에는 ”쏴이러(摔了, 둘러메쳤다)“가 아니라 “자쑤이(砸碎, 박살냈다)“고 썼지만, 파괴행동의 주어는 여전히 남편이지 아내가 아니다. 한글보도가 논리성은 더 강해졌다만, 기본사실과는 다르다. 그 뒤에 이어진 의사와 남편의 의사의 문답도 필자의 불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둘 다 무술을 하는 사람들인데 왜 실제로 겨뤄서 해결할 생각을 안 했느냐”는 질문에, 남편은 “만약 우리가 실제로 싸웠으면, 집 전체가 날아갔을 것”이라며 참사 예방 차원에서 그냥 메달을 삼켰다고 말했다.”
남편의 원래 말은 “俩人不敢打架,打完架家可能就没了”로서 여기에서의 “쟈(家)”는 집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가정”으로 보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家可能就没了”를 “가정이 사라질 수 있다“고 이해해도 되고 그게 더 자연스러운 것이다. ”집 전체가 날아갔을 것”이 재미나는 표현이나 아주 정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두 가지 이해가 다 가능하니까 꼭 틀렸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만. 어찌 보면 가십거리 수준의 기사를 놓고 흠을 잡는 필자가 오히려 우습기도 하다. 문제는 토픽 정도가 아니라 중요한 보도나 논평들에서도 허점들이 드러나는 데 있다.
10월 31일 중국과 한국이 사드갈등을 일단 봉합하기로 합의를 본 다음, 한국의 한 대형일간지는 중국공산당의 기관지 《인민일보》가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섰기에 사드문제에서 중국이 선심을 베풀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1일 사설 격인 종성(鐘聲) 칼럼”에서 어떻게 주장했노라고 설명을 덧붙였는데, “중성(钟声)의 원뜻은 ”종소리“지만 중국어로 ”중앙의 목소리(中央的声音)“의 약어와 음이 같으므로 그 필명이 중공 중앙의도의 대변인을 뜻함은 알만한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이다. 헌데 11월 1일의 중성 칼럼 《중한 쌍방의 공동이익에 착안하여(着眼中韩双方共同利益)》는 21면의 국제부분에 실렸다. 한국신문 실물을 본지가 하도 오래서 잘 모르겠다만, 한국에는 사설을 21면에 싣는 신문도 있나? 정확하지 않은 설명은 뱀발이라 해야겠다. 한국 일간지는 중성 칼럼의 내용을 이렇게 전했다.
“중국이 협상에 응한 이유로 '이웃에게 선의를 베푸는 (중국의) 주변외교 방침'을 들었다. 한국이 중국에 먼저 다가와 관련 요구를 수용한 만큼, 시진핑 중국 주석의 외교 이념인 '친성혜용(친근·성의·호혜·포용)'에 따라 포용해줬다는 것이다.”
언급된 칼럼 원문은 다음과 같다.
“亲诚惠容理念和与邻为善、以邻为伴周边外交方针,是中国处理和深化同周边国家关系的指导性原则。(친성혜용 이념과 여린위선, 여린위반 주변외교방침은 중국이 주변국과와의 관계를 처리하고 심화하는 지도성 원칙이다.)”
“위런워이싼 이린워이빤(与邻为善、以邻为伴)”을 일단 한자음으로 표기했는데, 한국 기자는 전자를 “이웃에게 선의를 베푸는”으로 풀이했고, 그 기조에 따라 기사를 썼다. “착할 선(善)”를 굳이 “선의”로 본다면 그런 풀이도 틀린다고 하기는 어렵고, 중국이 그런 표현에 대해 공식적인 규범화된 번역문을 내놓은 것 같지도 않다. 헌데 “위런워이싼(与邻为善)”과 같은 구조로서 역사가 훨씬 오래고 사용범위도 훨씬 넓은 “위런워이산(与邻为善)”은 인간에게 선의를 베푼다는 해석보다는 “남과 잘 지낸다”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다.
그에 비춰 미뤄보면 “위런워이싼(与邻为善)”은 “이웃과 잘 지낸다”고 이해하는 게 맞다. “위런워이싼 이린워이빤(与邻为善、以邻为伴)”을 “이웃과 잘 지내고 이웃을 동반자로 삼는다”라고 이해하는 게 자연스럽고 앞뒤말과도 맞아떨어지는데, 한국 기자는 “친성혜용”을 직역 및 해석하고, “위런이워이싼”을 자의로 해석하면서도 “이린워이빤”을 잘라먹었다. 잘된 처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중요사항에서는 누락도 엄밀한 의미에서 왜곡이다!
중국공산당 19차 전국당대표대회를 전후하여 한국에서 쏟아져 나온 보도들과 분석문장들에는 차마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는 게 중국인들의 정평이다. 일일이 꼬집고 바로잡을 정력도 시간도 없으므로 단적인 예를 하나만 든다.
어느 전문가는 덩샤오핑(邓小平, 등소평)이 전날 “절대 선두에 서지 말라”는 방침을 내놓았는데 지금 시진핑 총서기가 미국과 패권을 다툰다는 식으로 비난했다. 시진핑 총서기의 대회보고에서 중국이 패권을 다투지 않음을 강조했는데도(원문은 중국은 어느 정도까지 발전하든지 영원히 패권을 자랑하지 않고 영원히 확장을 하지 않는다(“中国无论发展到什么程度,永远不称霸,永远不搞扩张。”)한국 전문가들은 아예 무시해버린다.”
중국과 관련하여 한국 전문가들의 문제는 덩샤오핑의 말들을 오해하거나 왜곡하는 데 있다. 1990년대 초반에 덩샤오핑이 한 몇 마디 말 가운데서 “줴뿌당터우(绝不当头)“는 절대 선두에 서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절대로 우두머리로 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당시 소련의 해체를 전후하여 중국이 제3세계의 인솔자(우두머리)로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 정치가들이 그런 요구를 제기했다 하고, 확인되지 않은 설에 의하면 조선(북한)의 김일성 주석도 비슷한 제의를 했다는데, 블록불가담운동의 중요한 성원인 조선이 그런 제의를 했다고 믿기는 좀 어렵다. 덩샤오핑은 당시 국제정세와 중국의 국력, 중공의 능력에 근거하여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렸으니, 그게 바로 남들이 아무리 부추기더라도 중국은 절대로 어떤 집단의 우두머리로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판단이 옳으냐 그르냐, 그 결정의 효과가 좋았느냐 나빴느냐를 젖혀놓고, ”뿌당터우(不当头)”는 중국어에서 엄연히 우두머리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지 선두에 서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어려운 말도 아닌데 그렇게 오역하고 이상한 해석을 붙이는 게 능력 탓일까? 시진핑 주석의 처사를 비난하려는 의도가 앞섰기에 일부러 그러루한 글들이 생겨난다는 의심을 가시기 어렵다. 정말 괜찮은 중국관련기사를 보기 어려울 때면 괜히 서글퍼난다. 그릇된 정보들에 오염된 한국인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걱정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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