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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 가꿔가기 55] 역사와 인물

중국시민 | 기사입력 2018/10/07 [11:00]

[통일문화 가꿔가기 55] 역사와 인물

중국시민 | 입력 : 2018/10/07 [11:00]

 

10월 5일 밤에 이명박 전 대통령 1심 재판결과를 접하면서 심정이 의외로 담담해 오히려 약간 놀랐다. 생각해보니, 15년 징역을 박근혜, 최순실의 징역과 비기면 별거 아니고, 130억 원 벌금도 이틀 전에 공개된 중국 배우 판빙빙의 추징금+ 벌금= 8억9천여만 위안(한화 1천437억여 원)에 비기면 1/10에도 못 미치는 미미한 수자였기 때문이었다. 

다스의 실소유자 논란이 10년을 넘겼다는데, 필자는 2007년 대선에 관해 BBK 실소유주논란만 기억난다. 다스는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마 재작년부터 언론들에 오르는 덕분에 알게 된 것 같다. 

중국 언론들은 70고령의 이명박 전 대통령이 15년 도형을 받았다고 그 연령을 부각했다. 인터넷에서는 해묵은 주장이 또다시 퍼졌으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이 한국 대통령이라는 것. 그런 글들을 보는 순간 “3년 일찍 죽었다면 완인이었다(早死三年是完人)”이라는 중국말이 떠올랐다. 이 전 대통령이 3년 전 2015년에 사망했더라면 그해 말에 사망한 김영삼 전 대통령만큼 여야 정치인들이 몰려가고 당시 새누리당 거물 김무성 씨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로 자처하는 희한한 장면이 전개되지는 않았더라도, 제법 높은 평가를 받고 후한 장례를 치르고 현충원이나 어느 국립묘지에 고이 모셔졌을 것이다. 2015년이면 74세라 옛날사람들이 “고래희”라고 하던 일흔 살을 훌쩍 넘겼으니 오래 산 셈이다. 그리고 죽은 사람의 사기죄를 묻는 경우는 없으니까 다스도 BBK도 그저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이명박은 청와대에서 나와 자신이나 자식이 감방에 가지도 비명에 죽지도 않은 첫 번째 인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었다. 

그런데 목숨이 질겨서 몇 해 더 살다나니 오래 전의 사건이 파헤쳐지고 수감되고 결국 징역을 살게 된다. 상고심에서 감형되더라도 감방에서 꽤나 오래 보내야 할 판이다. 

이명박이란 인물에 대해 필자는 여러 번 아쉽다는 견해를 피력해 적잖은 사람들의 핀잔을 들었다. 그 분들은 이명박이 워낙 나쁜 놈이고 쥐새끼라고 단언했는데, 이명박의 이미지는 오랜 세월 상당히 좋았고 많은 사람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한 것도 사실이다. 서울시장까지만 했더라도 지금처럼 천만으로 헤아리는 사람들이 쥐명박, 쥐새끼라고 욕할 리 없었을 것이다. 축구스타 차범근 씨의 자서전에 의하면, 1990년대에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동문이 2명 있었는데 하나는 이명박이고 하나는 차범근이었다 한다. 책은 아직도 남아있건만 고려대학과 고대 출신들은 이명박을 거들기도 싫어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전에는 고려대학의 홍보물이나 학교역사책들이 이명박이 학교가 배출한 성공인물들 중에서 앞자리를 차지했을 텐데, 이제 새로운 학교역사책을 편찬한다면 빠질 확률이 아주 높다. 사회적으로 매장된 사람들을 족보에서 빼고 교정에서 친일파 동상을 제거하고 자료에서 불미스럽게 끝낸 인물들을 지우는 게 한국 사회의 풍기가 아닌가. 

역사는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하므로 그런 풍기는 좋지 않다. 잘못과 수치도 역사의 한 부분이므로 존재를 인정하고 보존하면서 부당함을 지적하고 교훈을 섭취하면 그만이 아닌가. 자꾸 지우기만 한다면 후대들이 과거를 제대로 알 수 없게 된다. 

 

역사미화의 극치는 아마 조상을 독립유공자로 둔갑시키는 행위일 것이다. 최근 국가보훈처가 김정수 일가(김낙용·김관보·김병식)에 대해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졌다'는 사유를 들어 서훈 취소 결정을 내려, 10월 초 여러 매체들이 가짜 독립운동가 문제를 다뤘다. 그 일가의 사기는 발견되어서부터 취소되기까지 20년이 걸렸다는데, 가짜 독립운동가가 100명 쯤 되리라는 추정에 비춰보면 모두 밝혀내자면 몇 백 년은 걸릴 것 같다. 그리고 김정수 일가가 수십 년 타먹은 돈은 회수가 어렵다는 암울한 전망이다. 사기꾼 가족들이 돈을 받을 때에는 독립유공자 가족으로서 우쭐댔겠는데 묘가 파헤쳐지고 서훈도 취소된 뒤에는 주변에 어떻게 말할까? 족보는 어떻게 고칠까? 가문사람들만 보는 족보라고 예전의 서훈만 버젓이 기록해둘까?

김정수 일가 같은 가짜 독립운동가 문제는 진실 규명도 어렵지만 서훈 취소 따위가 더 어렵다 한다. 어찌 보면 그런 사기로 피해를 본 개인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개인이 사기를 당해 큰돈을 떼이면 분개하여 여러 곳에 호소하기 마련인데, 그런 사기는 정부가 손실을 보았을 뿐이라 발 벗고 나설 인간이 없었던 것 같다. 김정수 일가 문제도 마침 진짜 독립운동가 김진성의 공적을 가로챘기에 김진성 씨의 아들 김세걸 씨가 발견하고 추적하여 밝혀졌지 정부가 스스로 알아낸 게 아니다. 보훈처 사람들은 오히려 김세걸 씨의 행위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한다. 

한국의 독립유공자와 비슷한 지위의 인물이 중국에서는 혁명열사 특히 1920~ 30년대의 홍군출신이나 당원들이고 조선(북한)에서는 항일혁명투사나 반일지사이다. 중국에서는 1980년대에 노홍군의 명의를 빌어 사기 친 사건은 있었으나, 김정수 일가처럼 경력과 신분을 위조하여 유공자 대우를 받은 경우는 없다고 안다. 

 

지난 달 평양정상회담으로 하여 조선이 항일한 사람들을 3대를 잘 살게 해준다는 말이 한국에서 퍼졌는데, 항일혁명투사나 반일지사들의 후대로 인정되면 여러 모로 엄청난 우대를 받기 때문에, 그런 특혜를 노린 사람들이 제법 있었던 모양이다. 김일성 주석이 전우들과 지인들의 후대를 힘들게 찾았다는 “혁명일화”들에는 자기가 아무개의 아들이나 딸이라고 자처한 사람들을 김일성 주석이 만나보고 부정했다는 등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필자가 아는 바로는 일부 조선 사람들이 중국에 있는 항일투사의 친족으로 되기 위해 무척 애썼으나 결과 실패했다. 조선에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왜 없겠느냐만, 꼼수가 통한 경우는 없는 모양이거나,  적어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반대로 열심히 일해오던 사람들이 뜻밖에도 상훈부 일꾼의 방문을 받고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조국광복회(항일무장투쟁시기 김일성 장군이 조직한 반일조직) 비밀 회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식의 내용들이 공개된다. 

일찍 죽었으나 수십 년 뒤 자손들에게 덕을 주는 사람들과 오래 산 탓에 감옥살이를 하고 가문과 학교의 명예에 먹칠하는 인간. 극과 글을 달린 삶이 시사해주는 바는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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