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의 임원이 한국 협력회사들을 긴급 순방하여 계약대로 부품들을 공급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화웨이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것을 “허세”로 묘사했던 한국 언론들은 화웨이가 사정한다는 뉘앙스를 풍겼으나, 거꾸로 보면 한국 회사들에는 화웨이가 큰 바이어다. 보도에도 나왔듯이 화웨이가 1년에 사는 한국산 전자 부품은 12조원에 달한다. 110억 달러 정도인데 화웨이의 2018년 매출액이 1,000억 달러를 웃돌았음을 고려해야 그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영업액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부품을 한국에서 사들이는데, 화웨이의 목표는 연간 5,000억 달러 매출액이다. 언뜻 보면 허망하나 화웨이가 내부인사들도 황당하다고 여기던 성과들을 근년에 거두니까 웃기만 할 노릇이 아니다. 화웨이의 연간 매출액이 5,000억 달러 선에 이를 때에도 한국 전자 부품들을 지금 규모대로 산다면 600억 달러 정도다. 현실도 현실이지만 이런 장성전망이 보다 중요하겠다. 게다가 한국 정부나 회사들이 미국의 화웨이 배제에 동참하는 경우 잃을 건 이런 금액보다도 더 많을 수 있다. 거래가 한 번 끊기면 다시 잇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사업을 해본 사람들이 잘 안다.
어떤 사람들은 무턱대고 한국회사들이 화웨이와 거래를 끊어야 한다고 떠들거나 미국이 화웨이를 누르는 참에 한국 회사들이 다른 판로를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첨단 전자 부품이란 아무나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기본상식조차 모른다. 화웨이와 거래해온 미국 회사들이 90일 완충기 내에 화웨이에 제품을 최대한 제공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는 건 더구나 모르는 모양이다. 한국과 일본 회사들이 화웨이에 팔기만 하는 게 아니라, 화웨이에서 사들이는 물건들도 많다는 건 더구나 모르는 모양이다.
전날 한국 언론들만 보면 조선(북한)이 늦어도 내일모레쯤 망할 것 같던 경우와 비슷하게, 요즘 한국 언론들만 보면 화웨이가 사면초가에 밀리고 앞날이 캄캄하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최근에 쓴 오미차(http://www.jajusibo.com/sub_read.html?uid=45674§ion=sc5§ion2=)에서 이제 두고 봐야 안다고 지적했는데, 화웨이 폄하에 못지않게 한국 언론들이 애쓰는 게 중국 지도부 특히 시진핑 주석의 “오판”이다. 한국 언론들이 베낀 외신들이나 창작한 기사들은 시진핑 주석이 미국과 트럼프를 잘못 알고 꼼수를 부리다가 큰코다친다는 식이다. 그런 게 보도지침인지 모르겠다만, 일단 시진핑의 오판을 전제로 하다 나니 중국이 미국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게 시진핑 주석의 “무오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라 하기도 민망한 분석까지 나온다.
“무오류”란 말을 중국에서는 쓰지도 않는다. 어떤 말을 쓰지 않는대서 어떤 현상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쓰지 않는 말이 인간들의 의식과 행동에 끼치는 영향이 적거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전에는 “무오류”가 한국 언론들에서는 “북한전용”이었다. “수령무오류”라는 틀을 만들어서 조선의 처사를 틀에 맞추는 식이었다. 김정은 시대 초기에 김정은 위원장의 일거일동이 화젯거리로 될 때, 김정은 위원장이 어느 모임에서 고친 흔적이 있는 연설원고를 읽은 걸 놓고 “수령무오류”에 어긋난다면서 전대 수령들과 다른 모종의 변화를 점치는 기사들이 나돌았다. 그때 필자는 다른 일이 있어서 미처 반박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시진핑 “무오류”를 떠드는 글을 보니 전날 일이 생각나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수십 년 전 조선에서 출판한 《김일성 저작집》들에 실린 김일성 주석 육필 원고 사진들이다.
보다시피 조선에서는 수십 년 전에 이미 김일성 주석이 지우고 보태고 고쳐 쓴 원고들을 사진들로 보여주었다. 그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이 고친 흔적 그대로인 연설고를 들고 읽었다고 해서 “북한 주민”들의 “수령무오류”인식에 금이 실린다는 따위 분석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한국에서 유달리 “프레임”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데, 한국 일부 언론들은 프레임을 만들어내고 스스로 거기에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꼴이다. 한국 기사들을 볼 때 늘 떠오르는 말들은 “무식하면 용감하다”와 “제 덫에 제가 걸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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