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 ‘사랑의 사람’ 이창기 시인에게 배우는 사랑의 실천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0/01/27 [12:18]

황선, ‘사랑의 사람’ 이창기 시인에게 배우는 사랑의 실천

김영란 기자 | 입력 : 2020/01/27 [12:18]

 

▲ 이창기 기자의 유고시집 『님을 따라(도서출판 615)』가 출간되었다.[사진제공-도서출판 615]     ©김영란 기자

 

지난 12월 초 이창기 기자의 유고시집 님을 따라(도서출판 615)가 출간되었다.

 

황선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이창기 시인은 착하고 힘없어 보이는 것들의 거대한 힘과 승리를 믿었습니다. 시인의 시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특징은 이것입니다. 시인의 글에 흐르고 있는 혁명적 낙관주의야말로 애초 느껴지던 불편함(사실 부끄러움)을 반성과 결심으로 변화시키는 근본이 아닐까 합니다. 시인이 지키고자 했던 착하고 여린 생명들의 승리의 담보이자 가장 고매한 인간정신의 정수는 개개인에 있어서는 무명전사의 정신이고 그것의 집단적 승화는 일심단결, 공동체주의로 정리 할 수 있습니다라고 이창기 기자의 시에 대해 평했다.

 

황선 시인의 추천사 전문을 아래에 소개한다.

 

--------------아래--------------------------

 

사랑의 사람이창기 시인에게 배우는 사랑의 실천

 

-황선 시인

 

 

바보 과대표

 

이창기라는 분을 처음 만난 것은 이 시를 통해서였습니다. 90년대 대학을 다니며 학생운동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학생회 자료집에서 한 번 이상 읽어봤을 시입니다. 당시 시인의 필명은 홍치산이었는데, 후에 내가 국가보안법 사범이 되어 옥중에서 쓴 글을 출판물로 엮어 펴주고, 감옥에서 끄적인 서툰 창작시에 처음으로 시평을 써준 분이시기도 합니다. 이번에 시인의 유고집을 출간하며 추천사를 제안받았는데 많이 외람된 줄 알면서도, 시인 생전에 받은 보살핌에 대해 작은 갚음이라도 될 것 같은 마음에 제안을 덥석 받고 말았습니다. 필력도 사상도 일천한 처지라 걱정이 크지만, 이창기 시인의 시를 읽으며 받았던 위안과 응원을 독식하지 않고 함께 누리고 싶은 마음 역시 무거운 제안을 사양할 수 없게 했습니다.

 

시집 바보 과대표10분 사랑을 읽었을 때도 그렇고, 작고 후 여기저기 남겨놓은 글을 볼 때도 그렇고, 시인의 시는 우선 저를 불편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불편함이 특이합니다. 보통 불편한 감정은 그 대상을 기피하게 하는데, 시인의 글은 은근히 불편하게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어 버립니다. 성찰하게 하지만 자조하거나 절망하게 하지 않고 어느새 처져있던 어깨를 두드리며 살살 북돋아 준다고 할까? 그러니 이창기 시인의 시가 주는 불편함은 회피가 아니라 즐겨찾기를 낳고, 찾을 때마다 약이 되고 힘이 되는 불편함입니다. 시인은 늘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고 반성합니다. 누구나 한 번 이상 써봤을 일기부터 이름난 문장가의 글까지 본질적으로 반성문 아닌 수필을 찾기는 힘듭니다. 이창기 시인 역시 고해성사 같은 글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글에 담긴 반성적 어조에는 꾸밈이 없으며, 그 반성에 일말의 자기연민도 없다는 것은 다른 이들의 글과 구분 지어지는 특징입니다. 예로부터 작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등 자기애의 과잉으로 쓰여진 글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저도 그렇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반성이 아니라 연민과 변명의 글을 남기고 싶어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창기 시인은 다릅니다. 철저히 자신을 낮추는 한편, 주변인들에게선 배울 점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습성화되어 있는 분 같습니다. 보통 감옥이나 전방 군 복무 중에 쓴 글들에 흔히 묻어나는 원망과 쓸쓸함도 그의 옥중 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감정이 일어도 그것은 연민이나 억울함이 아니라 분노와 의기, 각성과 성찰의 감정입니다.

 

 

에이그 우째 동아리실 청소는 쉽게 해도

내 가슴 더러운 때 이리도 닦아내기 힘든고’ (청소를 하며)

 

살아 있어야 한다

 

소외의 아픔 절절한 이들

한시도 잊을 수 없고

갈등과 방황의 주위사람들 눈빛

그 하나 놓칠 수 없어

안일에 빠져 무기력하게 죽여보내는

11초도 용납할 수 없나니’ (생활의 전사)

 

자신에게는 강한 채찍을 들이대고 늘 자신을 배우는 사람으로 여겼던 이창기 시인은 주변 모든 것을 스승으로 삼고 경이의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시인의 시에서 드러나는 특징 또 하나는 경이라는 감정입니다. 경이의 대상은 매우 구체적이고 다양하며, 경이로운 부분 역시 다른 서정시와 달리 특징적이었습니다. 시인은 단 지 아름다움과 향기를 노래하지 않습니다.

 

절벽에 산다는 건

강하다는 것

이미 이겼다는 의미’ (절벽 억새꽃)

 

요 싸랑부리가 토끼가 제일 좋아하는 풀이여,

긍게 토끼 쌀밥이제’ (씀바귀)

 

당신이 한 달 19만 원 봉급에 이 고생 하는 것

다 자식 잘 되라는 거라며

부모 맘이야 다 똑같다고 데모 그만하라고

저는 왠지 아주머니처럼 고생하시는 사람을 위해서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게으른 제가 부지런한 아주머니에게’ (학교 청소부 아줌마)

 

그윽한 그 향기

곁에 두고도 사람들은 몰라라

자귀나무처럼

향기 그윽한 이 곁에 두고도

 

사람들은 몰라라

그저 멀리 이름 난 향기 쫓아다니면서’ (자귀나무)

 

시인의 시에서 자주 읽히듯, 시인은 감옥 창틀 먼지절벽등 거친 환경에서 저마다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생명을 특히 사랑스러워했으며, 새벽 화장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의 근면함, 외상술 주시는 학교 앞 술집 고모님의 잔소리, 농사꾼 아버지가 보름달 빵을 아껴 드시던 모습 등 그 모든 사소할 수 있는 풍경을 기억하고 시에 담았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섬세하고 지극한지 글을 읽을 때마다 생각합니다. 자신의 넘치는 정에 도취되지 않고, 그 사랑에 뜨겁게 감사하는 사람만이 담을 수 있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에 담긴 경이로움이 단지 찰나의 감탄이 아니라 모두 나름의 서사를 지닌 까닭에 낙관과 긍정의 힘으로 승화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이창기 시인은 착하고 힘없어 보이는 것들의 거대한 힘과 승리를 믿었습니다. 시인의 시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특징은 이것입니다. 시인의 글에 흐르고 있는 혁명적 낙관주의야말로 애초 느껴지던 불편함(사실 부끄러움)을 반성과 결심으로 변화시키는 근본이 아닐까 합니다. 시인이 지키고자 했던 착하고 여린 생명들의 승리의 담보이자 가장 고매한 인간정신의 정수는 개개인에 있어서는 무명전사의 정신이고 그것의 집단적 승화는 일심단결, 공동체주의로 정리 할 수 있습니다.

 

재물 탐욕하는 자 매국노 되고

지위 탐욕하는 자 당쟁꾼 되고

양심의 명령 따라

온몸 내던지는 사람

무명전사

티 없는 그 이름

가장 용감한 그 이름

무명전사!’ (무명전사의 미소)

 

혼자 잘나 쑥 자란 이빨 뻐드렁니 되고

혼자 독불장군 자라난 장죽 꺾어지면 그만인걸

못생겨도 가지런한 여러 이가 있어야 씹을 수 있듯

휘청 나약해도 뭉쳐야 태풍도 막아내는 대나무숲처럼’ (날 때부터)

 

이창기 시인은 자신이 사랑한 모든 것들에게서 배웠고 그 배움을 고스란히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은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문인들 역시 역사와 뒤엉켜 살았습니다. 이름난 시인의 친일논란은 너무 흔한 사연이고, 소위 민중문학 내에서도 유혹이 많은 자본의 시장에서 글과 다른 삶으로 방황하고 갈등한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창기 시인은 사상과 삶을 일치시킨 독보적인 시인이자 진정한 진보운동가입니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옳으면 가고

해야할 일이라면

목숨을 던진다.

단 하루를 살아도

민족을 위해

인간의 존엄을 위해!’ (단순한 삶)

 

사상은 높게 생활은 단순하게. 생활은 너저분하고 복잡하게 하면서 사고는 근시안적이기 쉬운 자본주의 시장에서 시인은 스무살 시절 스스로 맺었던 약속을 지키며 살았고, 약속처럼 깨끗하게 안녕을 고했습니다.

 

단 한시도 조국을 잊은 적 없고

단 하루도 할 일 저버린 적 없노라고

큰일은 못 했어도 저 들풀처럼 살았노라고

하여 행복했노라고

최후의 순간이 오면

바람에 하늘거리는 저 방가지똥처럼’ (창살 턱의 방가지똥)

 

자기 자식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은 많지만, 올바르게 사랑하기는 힘든 세상입니다. 자식 사랑조차도 왜곡되기 쉬운 세태에서 시인은 어떻게 그토록 많은 것들을 절절히 사랑했을까? 아내와 딸을, 부모님을 닮은 민중을, 풀 한 포기, 들꽃 한 송이, 돌멩이와 바람 소리도 눈여겨보고 귀담아듣는 사랑의 시작에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피땀 흘려 싸운 무명씨들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 있었습니다. 역사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현재는 물론 미래와 후대들의 역사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시인은 가르쳐줍니다.

 

눈 감고 생각해보면

역사의 굽이굽이

역력히 새겨진 그 돌격의 발자취들

눈을 들어 바라보면 조국산천

골골능선 환하게 반겨주는 티 없는 미소들’ (무명전사의 미소)

 

이창기 시인의 작품집 님을 따라를 읽다 보면 사랑 많은 사람, 이창기를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고 싶게 됩니다. 시인은 시 님을 따라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사랑하게 되면 다 그리 되는가요

님을 따르고만 싶어지는 이 마음

말투도

표정도

웃음도

사랑에 눈이 멀면 다 그리 되는가요

님의 취향

님의 뜻

님의 의지와 신념까지

이 내 가슴 깊이 새기고만 싶어집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그리하고만 싶어집니다’ (님을 따라)

 

일찍이 만해 한용운이 복종이라는 시에서 노래한 사랑을 훌쩍 넘어서는 숭고한 사랑의 실천이 시 님을 따라에 밝혀져 있습니다. 이 사랑의 실천법이 제가 감히 시집 님을 따라를 남보다 먼저 읽고 여러분께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삶과 사상, 작품 활동을 일치시키며 우리에게 이토록 묵직한 사랑의 무게를 일깨워주신 이창기 시인, 이창기 열사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당신의 후배여서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저도 님을 따라우리 민족과 민중, 보이지 않는 후대들까지 아낌없이 사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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