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재단에서 월간 '민족과 통일' 2월호가 발간됐다.
기고글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영화「백두산」 솔직 후기
※결론을 포함한 영화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스포주의
1월 1일, 2020년의 첫날, 오전에 사람들과 신년맞이로 불암산을 깔끔하게 등반하고 난 뒤 식사 자리에서다. 개운하게 산 기운을 받고 나서 먹는 식사 자리여서였는지 평소보다 먹성이 십분 더 발휘되던 그때, 지금 8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백두산」 이야기가 나왔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평소에 시간이 여의치 않다는 핑계로 잘 보지 못했던 터라 흥미롭게 듣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번 영화 「캣츠」를 시원하게 말아먹고(정말 재미가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예산을 투자해서 아무런 내용적 가치가 없는 인간 고양이들의 향연을 보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광고에서만 잠시 봤던 「백두산」이었다. 약 삼 분여 간의 광고 내내 ‘또 뭘 저렇게 부수고 때리냐, 돈 낭비했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왠지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같이 밥을 먹던 후배가 인터넷에서 본 댓글 말이다!
미군은 악의 축으로 나오고 남한군대는 오합지졸로 나오고 북의 군대는 제대로 나오는 것이 너무 ‘빨갱이’ 영화 아닌가!
사실 휴일을 제대로 즐기고 싶어서 오전에 청년당 식구들과 불암산에 다녀온 것으로 인해 피곤한 몸을 끌고서라도 꼭 보고 싶었다. 댓글이 저 정도면 꽤 괜찮은 영화일 것 같아서다. 왜냐고? 우리 사회는 옳은 이야기를 하면 빨갱이로 매장당하는 그런 사회이지 아니한가! 게다가 대중화에서 저 정도로 주한미군과 남북관계를 소재로 다루었다는 이야기에 솔깃했다.
아무튼 영화 「백두산」은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극 중 남한의 특수부대원인 하정우가 백두산의 화산폭발로 인해 한반도가 초토화되기 일보 직전에 백두산 용암의 내부를 북이 가진 ‘핵’으로 폭파함으로써 화산폭발을 막는 히어로 물이다. 잠시 등장하는 배수지는 쁘띠큐티라는 애칭을 가진 하정우의 아내로 나오는데, 만삭인 상태로 한반도를 탈출해 미국으로 건너가려다가 하정우가 급히 북파된 것을 알고 오열을 하는 장면(밖에) 인상에 남지 않는 아쉬운 인물이다. 반면 마동석은 평소 나오던 이미지와 달리 학구적인 지질학자이자 교수인 로버트 강(본명은 강봉래이지만 실명을 잘 쓰려 하지 않는다! 이 무슨 사대주의!)으로서 백두산 화산폭발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기 고수 이병헌! 염문설을 뿌리고 다니는 그이지만 연기만은 실로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역할은 북한의 고위 장교였다 ‘숙청’당한 위험인물로서, 중국에 국가 기밀을 팔고, 남한과 내통하며 사람들을 쉴 새 없이 ‘죽이는’ 킬러로 나오나 영화 주인공이라는 설정답게 하정우와 만나 백두산 화산폭발을 막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더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이쯤에서 줄이자면 그렇다.
아무튼 영화 「백두산」이 어땠냐고? 우선 개인적으로 킬링타임용 영화다. 극중 전개가 빠르다. 스토리의 짜임이나 호흡도 숨 가쁘게 이어졌다. 처질만하면 부서지고 때리고! 총질하고 싸우고 긴박해지고! 게다가 우리 민족이 ‘나름’ 하나가 되어 한반도의 위기를 타파하는 전개는 꽤나 감동적이어서 마지막엔 눈물까지 훌쩍(?)였다. 또, 앞서 이 영화를 ‘빨갱이’ 영화라고 혹평한 댓글의 주인이 왜 불편해마지 않은지 알법했다. 극중에서 중국인 마피아가 이병헌과 하정우가 빼돌린 북의 핵미사일을 뺏으러 왔을 때, 하정우가 뱉은 대사 때문이다.
“아씨, 미국이고 중국이고 니들 다 꺼져!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에이 씨.”
여기서 잠시 심장이 멎을 뻔 한 첫 번째 사실.
주한미군의 적나라한 실체도 나온다. 남과 북이 합쳐서 핵을 가지고 백두산으로 향해 가는 길에 갑자기 난데없는 총소리가 들린다. 남한군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며 사상자를 내고 폭파 일보직전인 한반도의 위기를 구출해야할 히어로(?)들의 앞길을 막는 자들의 정체가 바로 주한미군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실에서와 꼭 똑같이 말한다.
“당신들은 우리들의 승인 없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다.”
꽤 쿨내(쿨한의 요즘 인터넷 은어)나는 대통령이 비밀리에 합동작전을 승인하자 몰래 찾아와 대통령을 위협하고, 자신들의 승인이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한미동맹을 들먹이며 협박을 한다. 다행이 로버트 강이 이런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 문제가 뭔지 알아요? 자기 문제 하나도 스스로 결정 못하는 이 무능력한 정부에 있다고요!”
라고 하며 로버트 강은 잠시 한반도를 떠날 생각을 한다. 이 땅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가 전개되며 로버트 강은 다시 극적으로 돌아와 이 위기를 막아내는데 역시 큰 역할을 해낸다. 여기까지가 「백두산」의 나름 메시지다.
그러나 두 대사를 보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도 잠시, 역시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장면들이 빠지지 않고 내게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었다. 그것은 바로 왜곡된 북의 이미지를 다룬 장면들이었다.
이병헌의 인물설정부터 살펴보자. 그는 남한과 내통하다 북에 ‘발각’되어 노동교화소에서 몇 년 동안 갇혀있는 요주의 인물이다. 그런 이병헌이 재난 위기가 닥친 틈을 타 남한 병사들에 의해 구해지는 장면에서 그는 완전한 ‘폐인’의 모습이다.
실제 북한에서 말하는 ‘숙청’이란 우리 사회에서 흔히 연상하는 사형이 아니다. 대부분 숙청이라는 말은 자신의 현재 직위보다 더 아랫단위로 내려가 민중들에게 복무함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몸소 깨닫고, 평범한 이들과의 노동 속에서 스스로를 다시 단련시키자는 북한 나름의 ‘처벌’이다. 우리로 얘기하자면 ‘직위강등’에 다름없는 처벌의 형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북은 ‘숙청’을 남발하는 나라며, 그것은 곧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형’을 남발한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혁혁한(?) 개념이다. 사실관계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북한의 체제에 대한 완벽한 오해에 뿌리 내리고 있다.
이병헌의 등장과 동시에 그려진 북한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그려내는 전형적인 ‘숙청’과 폐쇄적인 북의 이미지를 다시금 드러내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지하 감옥에 갇혀 있다가 죽은 사람들, 그리고 총을 든 군인들의 모습은 북한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지저분하고 날선 이미지는 보통 북한사람은 가난하고 공격적일 것이라는 우리들의 편견과 묘하게 오버랩 된다. 말 그대로 억압, 폐쇄 등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진부하리만큼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게다가 백두산 화산폭발 직후 북한은 진작 모두 망한 상태다. 말 그대로 무정부상태로 그려져 폐허가 된 모습이 등장하는데, 그 위기상황에서 남한이 북한에 함부로 들어가 작전을 수행하고 종국에는 한반도를 구출해 낸다는 설정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웃.나.라 일본이 화산폭발로 망해 바다를 건너가 구해내고 일본은 사라졌지만 영웅적으로 일본인들을 구해냈다고 한다면? 우리들에게는 다소 신나는(?) 설정이지 않을 수 없지만 평범한 일본인들은 이를 과연 얼마나 유쾌하게 받아들일까? 이러한 전제는 우리가 철저히 ‘북’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편견이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다. 북은 가난하며, 북의 체제는 온전하지 않다라는 편견 말이다.
더군다나 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김일성 주석의 동상이 훼손된다는 것, 민족의 성산으로 여겨지는 백두산이 재앙의 상징으로서 한반도를 장악한다는 상상력. 그것은 북에게 충분히 폭력적인 설정이 아닐까? 우리 사회가 남북의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이 때에 여전히 평화가 아닌 ‘폄하’를 지향한다는 그런 씁쓸한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영화의 상상력은 아마 극중 이병헌의 대사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남조선 자본주의자들은 참 쓸데없는 상상력이 많단 말이야!”
우리의 상상력 또한 실은 우리가 사는 사회 그 이상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나고 자란 토양으로부터 우리의 의식도 만들어지고 제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 「백두산」의 ‘화산폭발’, ‘한반도 대재앙’ 그리고 영화에 뿌리깊이 자리 잡은 반북적인 설정은 단순히 우연히 발생한 기발한 상상력이 아닌, 우리 사회가 철저히 반북적인 사회임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피란을 가는 곳곳의 사람들은 어딘가 재난에 재난을 더한 남루한 이미지임을 벗지 못하고 있다. 곳곳의 시스템이 너무나도 손쉽게 붕괴되어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병헌은 또 다른 대사를 날린다.
“이 나라는 진작 망했어야 했어.”
우리는 왜 이 대사에 너도 나도 고개를 자연스럽게 주억거릴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 사회가 철저히 북을 ‘악마화’, ‘대상화’시켰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손쉽게 알 수 있다. 구글에 ‘북한’이라고 검색만 해도 나오는 폭력적이고 비정상적이며 때로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진들이 그렇다. 사실관계 확인도 되지 않았으며, 유독 북에 대한 이미지들은 선정적이며 폭력적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되려 ‘북’을 체제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열성을 기울여왔다는 반증이다.
인터넷 기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북에 대해 올바르게 알 수 있는 기회는 우리 사회에서 거의 0프로에 가깝다. 게다가 이병헌의 배우자 역으로 등장한 까메오 전도연은 ‘약’에 중독된 북한의 고위간부층으로 그려지는데, 이 역시 북한의 고위층은 부패했고 썩었다는 남한사회의 왜곡된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이런 북에 대한 왜곡되고 전형적인 시선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를 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 물론 우리 민족이 하나 되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영화도 나름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어서 나쁘지 않다. 거기까지는 좋다. 게다가 상상력이 엄청난 컴퓨터그래픽CG까지 가미되니 강남의 고층 건물이 무너질 때마다 스트레스까지 해소되는 그런 오락 영화로서는 가치가 있다. 깔끔하게 오락적이다.
그러나 북에 대한 그 고약한 왜곡과 혐오 서린 시선은 깔끔하지 못한 영화다. 물론 남한의 대중화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라면 한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한계가 짙은 혐오와 남루함이 점철된 모습이라면, 그것이 과연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바로 진짜 평화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흥행을 통한 자본의 성공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안타깝지만 당연한 논리이긴 하지만 말이다.
남북이 평화로 나아가는 이 시대에, 진짜 평화를 그리기 위해 이제는 북을 더 바르게 보고 올바르게 알아가려는 노력이 더 시급하다. 저 좋은 CG와 배우들이 우리의 편견에 둘러싸인 북한이 아닌, 있는 그대로, 자신들의 공동체를 아름답고 주체적으로 꾸려가는 북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면 남과 북은 긴박하게 터져대던 백두산 화산보다 더 뜨겁게 평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함께’ 백두산을 오르고,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시대에 서 있다. 가슴이 고동치는 이 평화의 시대에, 서로에 대한 좋은 이야기, 존중과 배려가 가득한 이야기, 그렇게 평화를 엮어내는 영화들이 더 많이 필요로 할 때이다. 그런 영화가 만들어지기를 간곡히 바라고 또 바라본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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