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을 한다니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체력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암 환자들이 죽는 것도 종양 때문이 아니라 못 먹어서 영양실조로 죽는 거라는 말도 흔합니다.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왜 못 먹게 되는지, 암과 항암이 왜 영양실조를 야기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의미가 분명해 집니다.) 식사를 한 끼 건너뛰기만 해도 다리에 힘이 풀리던 저인지라, 단식과 채식을 앞두고 저도 걱정이 없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구호를 걸어놓고 죽자고 하는 단식투쟁에는 투지 말고는 걸릴 것이 없었는데, 살자고 단식과 채식을 하자니 오히려 걸리는 것이 많았습니다. 투쟁의 장에서 곡기를 끊을 땐 여타 영양상태나 못 먹게 될 것들에 대한 미련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더니, 채식으로 식생활을 바꿔야 한다니 별 별것에 없던 미련도 다 생겼습니다. 고기 먹방에 하염없이 눈이 갔으며 평소에 영양소를 따져 먹으며 살았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필수아미노산이 부족해지는 것 아닌가?', '근 손실이 생기면 어쩌나?' '갱년기 인데 칼슘이 부족해지면 골다공증으로 고생하는 것 아닌가?' '지방 섭취가 부족하면 피부가 너무 거칠어지는 게 아닌가?' 등등 그간 감춰둔 자기애가 폭발하는 듯했습니다.
채식 초기에 무언가에 대한 결핍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긴 했습니다. 가장 휘청한 것은 당의 부족을 느낄 때였습니다. 갑작스럽게 식은땀이 나고 현기증이 진정되지 않는 저혈당 증세가 와서 급하게 산야초 효소를 타 먹고 오곡가루에 조청을 섞어 먹는 등 부산을 떤 일도 몇 차례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런 증상은 사라졌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결핍이라기보다는 평상시 당 과잉공급에 따른 작용이었습니다. 우리 몸은 아주 적은 영양분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그 중 필요한 것을 필요한 곳에 적시에 제공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습니다. 혹시 닥칠지도 모를 기아와 추위에 대비해 쓰고 남은 것들은 모두 방출하지 않고 피하지방과 내장지방에 저장해 둡니다. 당이 들어오면 그것을 몸이 쓰고 비축할 수 있도록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는데, 현대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당을 먹다 보니 췌장이 쉴 수가 없습니다. 많이 먹는 만큼 많은 인슐린이 분비되는데 이 과정이 자주 반복되면 인슐린 민감도가 떨어지는 상태(인슐린 저항성이 높은 상태)가 되므로 당은 세포 속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혈액 속에 남아 혈당을 과도하게 높이게 됩니다. 지나치게 높은 혈당이 소변에 섞여나오는 상태를 일컬어 당뇨라 합니다. 병원에서는 당뇨를 하나의 증상이자 그 자체를 병으로 취급하지만 자연치유에서는 당뇨 자체를 너무 높아진 혈당을 소변을 통해 배출해 적정혈당을 유지하기 위한 몸의 반응으로 여깁니다.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대응을 보면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한쪽은 당뇨라 판단되면 혈당강하제나 인슐린을 처방하지만, 한 쪽에선 몸이 노력 중이니 식습관을 빨리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호로 읽습니다. 대증요법이 아직 여지가 있는 몸의 회복 능력을 무시한 결과 자연치유 기능까지 퇴화시켜 버리는데, 쉬운 선택은 이후 점점 더 강한 약에 길드는 관문이 된다고 보는 것이지요. 당 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는 인슐린을 잘 활용하고 췌장이 자기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도록 달래가며 평생을 살기 위해, 우리는 필요 이상 자주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늘 풍족하게 먹고 있고 따라서 기아를 대비해 당을 지방으로 전환해 축적할 필요가 없는 몸'이라는 신호가 반복되면 안 그래도 지친 췌장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췌장은 한 번 고장이 나면 고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암 중에서도 췌장암은 발견도 치료도 쉽지 않고 통증 또한 심한 편입니다. 이런 췌장과 인슐린을 능률적으로 활용하면서 대사질환을 피하는 것에 절식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인슐린 저항성과 인체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다시 쓰도록 하겠습니다. 여튼 소화기관이 쉴 새 없이 당분을 과잉공급해 온 생활로 인해 조금만 당이 떨어져도 저혈당 증세가 온다면 더더욱, 전반 식생활에서 설탕과 분식 등 단당류를 제한하고 잡곡과 채소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시급한 것입니다.
채식을 생각하면 걱정되는 영양성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단백질과 지방일 것 입니다. 저는 평소 기름기 많은 음식은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으나, 단백질에는 제법 집착하는 편이었습니다. 과음한 다음 날이면 아침부터 우유와 계란을 찾았고, 아이들 밥상을 차릴 때도 단백질 반찬에는 유독 신경을 썼습니다. 어린시절 부터 우유를 배달해 먹고 학교에서도 의무적으로 우유 급식을 해왔으며 균형 잡힌 밥상이란 동물성 단백질이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해야 하는 것으로 배워온 결과인지 단백질 하면 동물성일 뿐, 식물성 단백질은 염두에도 두지 않아 온 날들이 오랩니다. 그러나 채식 식단 만으로 제법 든든함을 느끼면서부터는 생각보다 양질의 식물성 단백질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현미밥에다 양질의 단백질이 풍부한 우리 콩과 귀리 등을 섞어 드시면 좋습니다. 된장과 청국장은 건강식 그 자체이고 두부로 할 수 있는 요리도 무척 다양합니다. 채식에 도전하는 사람 중에 간혹 근 손실을 우려해 조제 단백질 파우더를 따로 먹는 경우도 있는데, 판매되는 단백질 파우더의 주원료가 동물성의 경우 대부분은 미국산 유청 단백질이고, 식물성의 경우도 GMO를 통해 대량생산한 대두단백질이 대부분입니다. 피부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동물성 단백질이나 지방의 과잉으로 인한 독성을 해독할 목적으로 식이조절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굳이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싶은 보조식품입니다.
지방도 그렇습니다. 얼마나 많은 저질의 지방을 먹고 그 찌꺼기를 청소하기 위해 또 다른 양질의 지방을 찾아 헤매는지 홈쇼핑 채널만 몇 번 돌려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양질의 지방을 구하기 위해 바다 건너 낯선 땅의 열매를 찾거나, 심해의 상어 간유를, 남극해 고래밥 크릴새우의 기름까지 짜내는 걸 보면 말이지요. 그러나 그렇게 사서 고생하지 않고도 우리 주변에 정말 좋은 기름이 많이 있습니다. 현미에도 기름이 있습니다. GMO 콩으로 낸 콩기름과 GMO 카놀라유에 비해 드물지만 현미유나 우리 콩 식용유가 시중에 있고, 들기름과 참기름도 있습니다. 생들기름을 공복에 먹기도 하지만, 굳이 기름을 내지 않아도 현미잡곡밥에 들깻가루를 넣은 국과 찬은 채식밥상을 매우 기름지게 만드는 재료입니다. 그리고 유용한 기름이 또 있는데, 식물성은 아니지만 마련해 두면 다양한 증상에 약으로 쓰기 좋습니다. 바로 '난유'입니다. 유정란 노른자를 볶아 기름을 낸 것을 난유라 하는데 난유에 많은 레시틴이 혈액 응고를 막아서 혈전이나 고혈압 등에 상복하기도 하고 세포 재생과 염증 치료에도 좋을 뿐 아니라 인슐린 작용을 도와 당뇨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요즘은 난유를 직접 만들어 상비하고 있는 집이 드물지만 집안 어른들 말씀을 들어보면 전에는 많은 가정에서 난유를 염증 치료 연고나 혈액순환제, 치매 예방제, 화장품 대용으로도 써왔다고 합니다. 참, 저희 남편이 수배때부터 치질로 고생을 이만저만 한 것이 아닙니다. 한동안 병원 치료를 했음에도 지금도 몸의 상태에 따라 불편해지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난유가 상당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먹거나 환부에 직접 바르는 방법 모두 효과가 있습니다. 드실 경우 매우 작은 찻숟가락으로 반 스푼 정도 하루 두 번 복용하면 된다고 합니다. 자연 방생한 유정란에서 추출한 난유가 귀한 편이라 시중에서 가격은 좀 나가는 편입니다. 계란 한 판에서 낼 수 있는 기름 양이 많지 않아 저렴한 가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최대한 저렴하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이번 기름 이야기에서는 그 기준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필요한 분들이 꽤 되실 것 같아서 참고하시라고 예외적으로 권했습니다.
꽃들이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어 옵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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