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당은 21대 총선에서 정당득표 3%를 획득해 비례 국회의원을 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총선 결과 정당득표율은 1.05%에 그쳤고 지역구 당선에도 실패했다. 뼈아픈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민중당 강화가 한국 사회 진보 운동의 주요과제인 만큼 왜 목표달성에 실패했는지 잘 평가하고 혁신해나가야 한다.
1. 주목할만한 선거운동
선거 과정에서 민중당에 눈에 띄는 사례가 있었다. 본격적인 선거 평가에 앞서 이 사례들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1) 주목할 만한 두 후보
첫 번째로 울산에서 출마한 김종훈 후보의 사례를 보자. 김종훈 후보는 민중당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김종훈 후보는 ‘누가 미래통합당을 이길 수 있습니까!’ ‘국정농단 세력의 부활을 막겠다’, ‘싹 쓸어버리겠습니다’라며 미래통합당에 맞섰다. 그 결과 김종훈 후보는 민주당과 단일화를 하지 않은 속에서도 33.9%를 득표했다.
다음으로 서울지역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보인 노원갑 최나영 후보를 보자. 최나영 후보는 3.96%를 득표했다. 노원구에서는 정당득표율도 1.26%로 서울에서 가장 높았다.
민중당이 노원구에서 보다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2019년 노원주민대회에 있는 듯하다. 최나영 후보는 노원주민대회 공동조직위원장으로서 2019년 10월에 열린 노원주민대회를 600여 명의 주민들의 참여 속에 성대히 성사했다.
노원주민대회에서는 주민에게 직접 받아 완성한 주민요구안이 발표됐다. 10개 항으로 된 주민요구안은 ①국회의원 국민소환제 ②검찰개혁(공수처 설치) ③국회의원 무노동 무임금 ④비리정치인 처벌 강화 등으로 이루어졌다. 노원주민대회에서는 적폐청산을 바라는 국민의 목소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최나영 후보는 노원주민대회의 성과를 바탕으로 총선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었다.
2) 뽑지 말아달라는 데도 뽑아준 특이한 현상
한편, 이색적인 모습도 있었다. 강북갑의 김은진 후보는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며 미래통합당을 낙선시키기 위한 선거운동을 했다. 김은진 후보는 미래통합당을 이길 수 있는 후보에게 투표해달라고 호소했다.
김은진 후보는 자신을 강조하지 않았음에도 1.7%의 득표율을 얻었다. 노원갑, 성북을에 이어 서울에서 세 번째로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정당투표에서도 강북구는 1.13%의 득표율을 보여 노원구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높았다.
부산 북강서을 이대진 후보도 적폐청산을 실현하기 위해 미래통합당 후보 낙선운동을 주된 선거운동으로 삼았다. 이대진 후보는 “저에게 혹시라도 올 단 한표조차 미래통합당을 떨어뜨릴 수 있도록 투표해주십시오”라고 호소하며 중도사퇴했다.
그래서 이대진 후보는 득표를 하진 않았지만 3월 30일에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2.8%의 지지율을 얻은 바 있다. 민중당 후보들의 평균적인 여론조사 지지율보다 높은 수치였다.
이렇듯, 민중당은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눈여겨 봐야 할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민중당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원인과 교훈을 살펴보자.
2. 목표 달성에 실패한 원인
1) 정책이 민중의 요구와 달랐다
민중당이 총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기본 이유는 민중당의 정책이 민중의 요구와 달랐기 때문이다.
민중당은 공보물 1면에 ‘부와 빈곤의 대물림을 끝내자’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이와 관련한 공약으로는 ▲30억 상속·증여상한제로 불로소득 환수 ▲종합부동산세 강화, 금융소득종합과세 강화 ▲페이퍼컴퍼니 규제 강화 등을 제시했다.
문제는 오늘날 국민이 적폐청산을 절박하게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민중당이 전면에 내세운 정책이 국민이 생각하는 총선 목표와 달랐던 것이다.
예를 들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을 조금 올리고 근무시간을 조금 줄이자는 것에 불과한데도 적폐들의 방해로 좌초했다. 국민은 이런 사소한 개혁도 실패하는 걸 보면서 적폐를 청산해야 뭐라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적폐를 청산해야 소득주도성장을 넘는 정책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요구가 적폐청산이라는 것은 21대 총선 결과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21대 총선 결과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에 맞서 180석을 차지했다. 이는 4.19 혁명 이후 최대 압승이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이유는 국민이 적폐청산을 그만큼 절실하게 바라기 때문이다.
좋은 성적을 거둔 민중당 후보들도 적폐청산 구호를 놓지 않았다.
김종훈 후보는 적폐청산을 앞세워 지지를 호소했고 안타깝게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었다. 최나영 후보는 노원주민대회를 통해 국민의 적폐청산 요구를 실현하는 데 앞장섰고 그 결과 서울의 다른 지역구에 비해 3배가량 높은 지지를 얻었다.
김은진 후보의 경우 미래통합당을 이길 후보에게 투표해달라고 호소했음에도 국민이 굳이 표를 준 이유는 적폐청산 주장에 강하게 공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민’과 ‘민중’을 다르게 보는 위험천만한 주장도 한다. 국민의 요구는 적폐청산이더라도 민중당이 표를 얻어야 할 민중의 요구는 적폐청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민중과 국민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국민과 민중의 대다수가 노동자다. 대다수의 노동자들도 적폐청산을 바라고 민주당에게 투표했다. 적폐청산은 국민의 요구이자 민중의 요구인 것이다.
이렇듯 민중이 적폐청산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있는 와중에 민중당은 적폐청산이 아니라 ‘부와 빈곤의 대물림’을 전면에 내세웠다. 국민이 바라는 것과 민중당의 정책이 달랐던 것이다.
2) 진보운동의 기본 노선과도 맞지 않았다
또한, ‘부와 빈곤의 대물림’ 정책이 한국 진보운동 노선에 부합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한국 진보운동의 노선은 자주 민주 통일이다. 자주 민주 통일을 실현해야 진보를 실현할 수 있다.
자주란 우리나라를 미국의 요구가 아니라 국민의 요구대로 운영하는 것이다. 국민이 아니라 미국의 요구가 실현되는 나라에서는 민주주의나 민중의 이익을 실현할 수 없다. 국민이 바라는 일이라도 미국이 반대하면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대한민국에서 미국 자본가들의 이익을 관철하려고 한다. 우리나라에 신자유주의가 적극 도입된 것도 IMF 때 미국이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늘날 대표적인 노동문제인 비정규직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만약, 우리나라가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다름 아닌 미국이 막아 나설 것이다.
2018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는 일이 동일하다면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고 정규직과 동일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답변이 81%였다. 국민은 사실상 비정규직 철폐를 바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대다수 국민의 뜻과는 다르다. 국민이 우리나라의 주인이 아닌 것이다.
자주 민주 통일이 계급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정확한 진보운동 노선이며 정확한 계급노선이다.
그런데 민중당은 자주 민주 통일 노선을 초월한 정책을 내세웠다. 민중당은 자주와 통일을 뒷순위로 배치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 영역에서도 자주 민주 통일 노선에서 벗어났다.
민중당은 ‘부와 빈곤의 대물림을 끝내자’라는 공보물에서 “재산권은 ‘신성불가침’이 아닙니다”라며 불로소득을 환수해서 서민들에게 분배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30억원 넘어가는 재산 몰수, 투기 농지 몰수,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등의 정책을 냈다.
재산을 몰수해 서민들에게 분배하겠다는 정책은 민주화의 범위를 넘어선다. 종합부동산세율을 높여 복지에 쓰겠다는 정책들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민중이 자본가들의 부를 빼앗는 혁명에 가깝다.
이런 정책은 오늘날 한국 진보운동의 단계를 넘어선 급진적인 정책이며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도 없다. 민중당이 자주 민주 통일 노선을 확고히 견지하지 못한 결과 한국 현실과 국민의 의식에 맞지 않은 정책을 내세운 것이다.
3. 민중당의 과제
1) 민중의 이익을 앞세워야
지금까지 민중당이 21대 총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요인을 살펴봤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에서 찾아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먼저 봐야 할 것은 민중당은 왜 적폐청산 구호를 들지 않았냐는 점이다. 민중당은 미래통합당과 가장 처절히, 치열하게 싸워 온 정당이다. 박근혜 탄핵 촛불 사회자가 비례후보로 출마하기까지 하지 않았나.
민중당이 총선에서 적폐청산과 거리를 두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적폐청산을 강하게 외치면 민주당에 도움이 될 뿐 민중당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표를 얻기 위해서는 적폐청산이 아니라 민중당이 부각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판단하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적폐청산은 어느 당에 더 도움이 되느냐를 떠나 국민의 요구다. 어느 것이 나에게 유리하고 불리한가를 먼저 생각하다보면 국민이 절박해하는 요구를 뒤로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민중당이 적폐청산을 더 강하게 외쳤으면 국민은 보다 많은 지지를 보내주었을 것이다. 애초에 국민은 민주당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민주당에 표를 몰아준 게 아니다. 미래통합당을 이기기 위해서 민주당에 표를 보내주면서도 더 진보적이고 적폐를 잘 청산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갈망한다.
열린민주당이 한 때 많은 지지율을 보였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열린민주당이 내세운 건 ‘매운맛 민주당’이었다. 민주당보다 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표현이었다. 그 결과 한 때 열린민주당은 지지율 14.3%까지 받았다.
가장 앞장에서 적폐청산을 해왔고 앞으로도 가장 잘 할 수 있는 정당은 민주당도 열린민주당도 아니라 바로 민중당이다. 그런데 정작 민중당은 적폐청산 구호를 전면에 들지 않았다. 대신 다른 정당과 차별성을 얻기 위해 초현실적인 정책을 내세웠다.
민중당은 국민의 요구, 민중의 요구를 대변하고 실현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당리당략을 우선하다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외면한다면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국민의 지지를 얻긴 힘들 것이다.
2) 자주 민주 통일 노선을 확고히 해야
한국 사회 진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주를 실현하고 국민의 뜻에 따라 나라가 운영되는 민주를 실현하며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 자주는 자주 따로 민주는 민주 따로 어느 하나만 추진해서도 안 되며 자주 민주 통일을 초월한 급진적인 정책을 추진해서도 안 된다.
조준을 잘못하면 과녁에 명중할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민중당은 자주 민주 통일의 노선을 정확히 따라야 한다.
민중당 정책 중에 많은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받은 정책이 있다. 바로 ‘전국민고용보험’이다. ‘전국민고용보험’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자 경제의 주인으로서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정책이다.
‘전국민고용보험’이 관심과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주 민주 통일의 노선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민주노동당이 주장하고 민주당이 받아들여 실현된 무상급식도 민주화의 영역이었다.
경제 정책에서도 자주 민주 통일의 노선을 정확히 따라야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실현도 가능하다.
자주와 통일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민중이 자주와 통일을 바라고 있다. 총선이 끝나자 남북관계 발전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정세현·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는 코로나19 의료보건분야 협력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부도 새로운 국회에서 판문점선언 국회비준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정부는 남북 철도 연결을 염두에 두고 동해북부선 철도 건설을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면서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국민은 이 소식을 전한 4월 20일 SBS 기사 댓글에 “코로나 경제 위기 극복, 남북 경협 확대 잘 되기를..(추천 4,136회, 1위)”, “통일해서 국력 키우고 분단국가로서 이리저리 치이는 상황을 타개해야 합니다(추천 2,603회, 2위)”라며 남북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편, 미국이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포털사이트에는 미국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대세를 이룬다. 예를 들면 다음 포털에 있는 4월 21일 서울신문 기사 <트럼프 “더 내라” vs 한국 “더 못 줘”..방위비 분담금 길게 간다> 기사에는 “트럼프야, 니들이 주둔비를 내던지 그게 싫으면 너네들 나라로 꺼져(추천 8,734회, 1위)” “동맹이라 부르고 등쳐먹음(추천 2,788회, 2위)” 등의 댓글이 달리는 식이다. 주한미군에게 나가라는 의견도 거침없이 내고 있다.
민중당은 자주 민주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해 온 정당이다. 국민이 자주 민주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지금, 민중당이 자신의 몫과 역할을 다해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4. 마치며
민중당 강화는 한국 사회 진보의 절박한 과제이다. 사람 중심 정당, 자주 민주 통일을 원칙적으로 걸을 수 있는 정당이 바로 민중당이기 때문이다. 민중당이 강화되어야 촛불개혁도 완성할 수 있고 자주통일도 실현할 수 있다. 민중당은 하루라도 더 빨리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민중당은 시대와 민중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민중의 정치의식도 날이 갈수록 장성하고 있다. 박근혜 탄핵부터 지금까지 정국을 주도하는 건 민주당 등의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아니라 민중 자신들이다. 민중당은 민중을 두려워할 줄 알고 민중의 뜻을 충실히 받드는 충복이 되어야 한다.
민중당이 민중의 뜻을 올바르게 대변하는 정당이 된다면 민중은 아낌없이 민중당을 지지하고 성장시켜 줄 것이다. 21대 총선의 교훈을 깊이 새기고 하루 빨리 진정한 민중의 정당이 되도록 노력하자.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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