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가 ‘미디오 오늘’에 기고한 글을 저자의 동의 아래 전재합니다.
해외에서 분단 한반도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 것인가? 해외에서 통일운동을 하는 것을 남북한은 어떤 시각으로 보고 평가하고 있는 것인가? 해외에서 남북 한 쪽 편을 들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제 3의 시각으로 독자적인 입장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인가? 언론은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인가?
해외에서 통일운동을 하다 사망한 한 언론인에 대한 우리 언론의 보도를 보면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의문을 떠올리게 된다. 재미 언론인 노길남 <민족통신> 대표가 그 당사자다. 그는 25일(현지시간) LA 한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숨졌다. 향년 76세다. 고인에 대해 27일 보도된 국내언론의 기사 제목을 보면 아래에 소개하는 것처럼 다양하다.
“在美 친북인사 노길남, LA서 코로나로 사망 / 민족통신 대표 노길남 박사 서거 / 재미 통일운동가 노길남 대표 코로나19로 별세 / 재미 친북언론인 노길남 씨 코로나 19로 사망 / 강릉 출신 재미 친북인사 노길남 민족통신 대표 코로나19로 숨져 / 민족언론인 재미동포 노길남 민족통신대표 코로나 증상으로 별세 / 75차례 방북 ‘김일성상’ 받은 노골적 친북 인사 노길남 미국서 사망 / ‘김일성상’ 받은 재미 친북 인사, 코로나 증세 보이다 숨져 / 재미 친북인사 노길남 민족통신 대표 코로나19로 숨져”
고인에 대한 부고기사 제목 속에서 남북 분단의 현실, 이념 대립의 현주소, 언론과 체제와의 관계, 언론이 제 4부로써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언론의 인식과 철학 등이 들어가 있는 것이 확인된다. 고인에 대한 국내언론의 평가와 기술이 다양한 이유는 고인의 약력에 대한 기사내용을 취합해 보면 이해가 된다.
고인은 국내 대학 재학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재미 언론인 신분으로 75회의 방북 취재를 하고 남한에도 수차례 방문하는 등 통일운동을 벌여왔다. 또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해외본부와 6·15 해외측위원회에 참여해왔고, 2014년 4월 북한의 최고상인 '김일성상'을, 2008년 4월 북한에서 사회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대에 연세대학교 법정대학 재학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해 박정희 군사정권 반대투쟁을 했고, 학교 영자신문 편집장을 지냈다.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주립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일보 미주지사 기자, 코리안스트릿저널 편집장, 뿌리 편집장, 라디오코리아 앵커 등 언론분야에 종사했다.
고인은 1980년 광주항쟁시기부터 미국 동포사회에서 한국민주화운동을 벌이면서 1987년 민족문제연구 민족지도자 양성후원단체 한민족연구회를 조직하고, 1999년 <민족통신>을 창간하여 대표 겸 편집인으로 최근까지 활동했다. 한국 정부는 <민족통신>을 친북 매체로 규정해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
위와 같은 고인의 행적 가운데 언론사나 언론인이 어느 부분을 주목하느냐, 어느 부분이 가장 의미가 있다고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내용의 기사가 작성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이 국가보안법이 시행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친북 재미 언론인’이라는 기술로 연결되는 것을 크게 나무랄 수는 없다. 수십 년 간 언론 현장, 언론인의 의식구조를 지배하는 국보법은 남북관련 모든 기사 작성 시에 고려되는 항시적인 보도지침이기 때문이다.
국보법의 적용 강도가 군사독재 시절과 민주화 이후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그것은 남북관계의 분석, 평가, 기술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쳐왔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통일을 추진한다고 하는 2020년 현재 북한관련 기사는 거의 다 “~ 의도로 보인다.”“ ~ 저의가 숨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등의 문장이 빠지지 않는다. 국보법에 의해 북한을 악마 화하거나 비정상적 객체로 분칠하면서 언론이 국보법을 피해가려는 수법이고 그에 따른 작업 결과물이다.
남북대치 상황에서 공안당국이 항시적으로 수행하는 심리전 차원의 정보가 기사로 둔갑해 일반 국민들에게 전달되어 왔고 그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과거와 큰 차이가 없다. 이런 판이니 적에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이 정당화된다는 식의 손자병법이 국보법에 덧씌워지면서 대북 공작반이 만드는 북한에 대한 ‘가짜뉴스’는 언론의 단골메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국보법은 언론현장 뿐 아니라 국내 초등학교 교과서 검인정 과정에서부터 사전 점검 항목에 들어가 있어서 전체 국민은 이 법이 제시하는 프레임으로 통일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현실이니 통일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답변이 주를 이룬다. 일부 진보언론이 독야청청 하려다가는 신문시장에서 퇴출되는 불이익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너무 오랫동안 언론을 포함한 이 사회에서 막강한 강제력을 행사하면서 일상생활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언론인들조차 항상 국보법을 의식하면서 대소사에 상상의 자유를 스스로 제약하는데 익숙해지고 그런 것에 대한 심적 부담도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동시에 어느 언론도 대북관련 오보에 대해 정정 보도를 내는데 적극적이지 않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보법 정신을 충족시키고 남북대결에서 남측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 노길남 <민족통신> 대표도 재미동포이자 미국시민권자로 북한을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북측의 달라진 사회상이나 소식, 북측 정부 인사 등을 직접 인터뷰해 매체에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이유로 친북과 같은 딱지가 붙여진 것이다. 그러면 고인처럼 해외에서 시민권자가 된 동포도 국보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것이 최상의 행동으로 보고 그렇지 않을 경우 남측에서 불이익을 당연시 하면서 이념적으로 반정부라는 낙인을 찍는 ‘친북’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남북한이 고집하는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판단하기에 최상의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이는 제 3, 제 4의 관점이나 철학을 갖는 것이 해외 동포들에게도 부적절한 것인가? 북한의 실상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알리려고 하는 노력이나 작업을 삼가야 하는 것인가? 남북이 전쟁이 아닌 평화통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 보고 북한의 실상을 보도하는 재외동포에 대해 국보법의 잣대를 적용해야 하는 것인가? 북에서 큰 상과 학위 수여를 받았다면 반드시 친북, 종북 이어야 하는가?
고인이 대표로 있던 <민족통신>은 미주 LA에서 재미동포들이 발행하는 동포 소식지 겸 한반도 뉴스(남측과 북측 포함)와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신문이며 이 매체의 운영자들은 재미동포, 목사, 교수, 사업가 등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족통신>은 지난 2004년 11월 국정원·경찰청의 요청으로 정보통신부가 이른바 ‘친북사이트’라며 차단한 34개 사이트 중의 하나다. 공안당국은 <민족통신>이 북한 체제를 찬양하고, 친북적인 소식을 전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민족통신>은 폐쇄가 풀렸는지 국내에서도 접속이 가능하다. 공안당국이 패쇄 조치를 왜 언제 해제했는지 밝힌 바는 없다.
그러면 여기서 어떤 식의 표현이 북한 체제를 찬양, 고무하는 국보법 제 7조 등에 해당하느냐 하는 것인데 이는 대단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라 문제가 많다는 것은 여러 번 확인된 바 있다. 예를 들어 ‘종북콘서트‘ 논란을 일으켜 국보법 위반(찬양·고무 등) 혐의로 기소된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전 대표가 2020년 2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경우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황 전 대표는 지난 2014년 11∼12월 재미동포 신은미 씨와 함께 통일 토크콘서트를 3차례 열면서 북한을 찬양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밖에도 정부나 미국을 비판하는 내용의 시화집을 발간하거나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며 북한 담화를 전파한 혐의 등도 받았다. 하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이런 혐의에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황 전 대표는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2심은 황 전 대표의 모든 혐의에 대해 국보법 위반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1심은 토크콘서트 주최나 시화물 발간 등 대부분 혐의를 무죄로 보았으나 일부 행위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었다. 하지만 항소심은 1심이 유죄로 본 2010년 총진군대회 및 김양무 10주기 추모행사 참석 등도 무죄를 선고했다<한겨레신문 2020년 2월18일>.
황 전 대표와 신은미 씨는 자신들이 보고 들은 북한에 대해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라고 했지만 공안당국과 공안당국의 발표를 받아쓴 언론들은 두 사람을 종북 또는 친북으로 몰아가는 식으로 발표하고 보도했었다. 여기서 공안당국의 황 전 대표 등에 대한 국보법 7조 적용이 자칫 대북 심리전 차원 또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행된 것이라는 의혹과 함께 언론이 그 선전수단으로 악용된 것이란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고 노길남 대표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 하다. 즉 공안당국이 그의 북한에 대한 보도가 국보법이라는 색안경으로 판단해 친북, 종북이라는 식으로 남한에서 철저히 고립시키는 불이익의 굴레를 씌운 것은 아닌지 살필 필요가 있다. 고인은 국내에서 국보법 위반으로 어떤 형사적 수사나 재판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 사상범을 양산한 국보법 7조 등은 인간의 원초적 자유를 70년 동안 억압하면서 사회적 상상력을 차단, 변질 시키는 폐해를 낳고 있다. 북한을 궤멸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이 법은 남한 사회에서 모든 경쟁 상대를 공존의 대상이 아닌 반드시 물리쳐야 하는 존재, 즉 선과 악의 개념 속에서의 존재로 축소시키는 파괴적 논리를 광범위하게 유포시키고 있다. 국보법은 이 사회에 진보의 황무지 상태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이다. 진보는 상상의 자유 속에서 그 세력이 확장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민족의 절반이면서 통일의 동반자인 북한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관계나 수혜적인 관계만이 주로 허용될 뿐이다. 북한을 수평적인 관계에서 장단점을 평가하는 대상이 아닌 괴멸시켜야 할 존재로 국한하는 국보법은 북한이 포함된 미래학이 이 사회에서 존재치 못하게 만들었다.
국보법은 지난 1948년 12월1일 일제의 ‘치안 유지법’을 모태로 좌익 활동과 반정부활동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탄생부터 개인의 사상과 이념을 제한하고, 정권수호를 위해 만들어진 반민주적인 악법이었다. 세계인권선언에 반하는 국보법이 지배해 온 지난 70 년 동안 양심과 언론 자유, 민주주의는 처참하게 유린돼왔다.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1961년~2008년 2월까지 1만4000여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이는 매년 298건이 기소된 것으로 거의 매일 한 건 꼴로 국보법 위반 사건이 발생한 셈인데 국보법이 적용된 시국 사건이나 간첩단 사건의 경우 90% 이상이 재심을 거치면서 무죄로 판결 난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런 비극적인 사실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남한의 위상은 추악하게 일그러지면서 인권 후진국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향후 남북 교류를 활성화한다 해도 국보법이 유지되는 한 그것은 대단히 제한적인, 그러면서 수구세력에 의해 언제든 깨질 유리그릇과 같은 그런 형국을 면키 어렵다. 국보법은 유엔 회원국인 북한을 평화통일의 파트너로 삼아 미래를 구상하는 작업을 정부만이 전담케 하고 주권자인 국민은 자율적, 능동적 평화통일 노력이나 작업을 시도조차 못하게 만들고 있다. 미래학은 국가단위로 설계되는데 남측에 이 학문이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의 하나가 바로 이 국보법이다. 남북의 긍정적인 측면을 살려 생산적인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보법은 북을 해치기보다 남측 내부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독버섯이다. 문 대통령이 남북합의에 대해 국회비준을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6·15와 10·4선언이 국보법의 장벽에 막혀 국회 문턱을 통과하지 못했었다.
한 인물을 어떤 각도에서 보고 평가하느냐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언론자유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그 자유가 국보법과 같은 악법 또는 정치, 경제적 부당이익을 취하려는 동기가 작동된 틀에 갇혀 있거나 그런 목적에 의해 굴절, 왜곡되어 있으면 안 된다. 그 폐해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남측이 불통의 사회가 되면서 자살률 세계 최고와 같은 n포 세대 사회가 된 비극의 원인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고 노길남 대표의 사망에 대한 기사 제목은 공개된 것이고 그것은 기록으로 남게 된다. 한 인물이 친북인사 또는 통일운동가 등으로 기억되게 되는 것이다. 일부 언론의 그에 대한 부고 기사는 국보법의 독기를 풍기고 있다. 그런 기사는 먼 훗날 고인에 대한 종합적으로 평가되기 전까지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면서 계속 독기와 악취를 풍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고인의 부고 기사의 적절성 여부를 심도 있게 반성해서 상식에 맞는, 올바른 정답과 같은 보도기사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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