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안녕히 다시 만나요
-황선(평화이음 이사)-
벗이여, 나는 행복했습니다. 이역만리 낯선 병상에서 경황없이 이별을 고하게 됐지만 나는 넓고 깊은 민족의 품을 떠난 날이 없었습니다.
신촌거리에서 깃발 하나 올리지 못해도 깃발 찾기를 멈추지 않았던 약관의 나날, 그때는 채 알지 못했던 조국을 태평양을 건너고야 만났을 때, 그때부터 나는 외로움을 몰랐습니다.
누구는 나를 보고 빨갱이라 손가락질했고 누구는 내게 침을 뱉고 욕을 했지만, 비겁한 정치는 내게 아름다운 고향 강원도를 압수하고 분단의 창조자들은 내게서 태평양을 건널 항공권조차 빼앗았지만, 나는 가슴에 뜨거운 별 하나 품고 늘 따뜻했습니다.
조국을 사랑하게 된 후로 나는 진실을 알리는 기자였고, 위대한 민족을 탐구하는 학자였고, 유쾌한 늙은 택시운전사였고, 나는 근면한 통일운동가였고, 낙관의 철학자였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청년이었고 벗들의 동지입니다.
벗이여, 그대가 광주도청에서 총을 쥐고 마지막으로 밤하늘에 어머니 얼굴을 그렸을 때, 벗이여, 그대가 연세대 종합관 옥상에서 최루액을 맞으며 개처럼 끌려갈 때, 벗이여, 그대가 야수 같은 제재에 맞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을 때, 나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그곳에 있습니다, 겨레의 웃음 속에 겨레의 눈물과 함께. 작별인사는 하지 맙시다. 나는 ‘다시 만납시다’라는 인사만 기억하렵니다. 벗이여,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부디 안녕히 다시 만납시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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