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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반세기 만에 만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

박한균 기자 | 기사입력 2020/06/14 [18:00]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반세기 만에 만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

박한균 기자 | 입력 : 2020/06/14 [18:00]

▲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분단 55년 만에 한반도의 두 정상이 손을 맞잡는 장면에 전세계가 들썩였다.   


“반갑습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힘들고 두려운, 무서운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분단 55년 만에 한반도의 두 정상이 손을 맞잡는 장면에 전세계가 들썩였다. 

 

이희호 여사는 자서전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심정을 이렇게 전했다.

 

“북의 조국 강산을 처음 보는 심정은 감개무량했다. 울컥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꽃술을 흔드는 군중이 보이고 그들이 외치는 함성이 들렸다. 저 아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있었다. 인민복을 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그가 마중을 나왔다. 트랩을 내려갔다. 북녘땅을 처음 밟았다. 무릎을 꿇고 그 땅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그러나 다리가 불편해서 그리할 수 없었다.”

 

북측의 풍경과 사람들, 문화와 음식 등 그간 국가보안법 장벽 너머에 가려져 있던 모든 것이 남측 국민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보수 매체를 통해 부정적으로만 비춰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든 언행은 남측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외교 관례를 깨고 김대중 대통령을 마중하기 위해 공항까지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보부터 파격적이었다. 

 

두 정상의 악수만큼 인상적이었던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리무진 오른쪽 뒷 좌석(상석)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내어 준 것이다. 파격의 연속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은 공항에서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까지 55분간 리무진 차량에 함께 있었다.

 

이튿날 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공항에서의 상황을 언급하며 “외국 기자들을 포함해 한 1,000여명의 기자들까지 기립박수를 쳤다”고 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건 인사지요 뭐. 제가 무슨 큰 존재라고”라며 겸손을 표하기도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바로 이어 “외신들 그담에 구라파 사람들은 자꾸 뭐라고 하냐면, 왜 은둔생활을 하느냐.은둔생활을 하는 사람이 처음 나타났다. 나는 뭐 과거에 중국에도 갔댔고 인도네시아도 갔댔고 외국에 비공개로 많이 갔댔는데 나보고 은둔생활을 한 대. 근데 김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생활에서 해방됐다. 뭐 그런 말 들으니까 좋아요.”라고 농담을 던져 좌중을 웃게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김대중 대통령과 그를 수행했던 여러 인사들을 통해 전해졌다.

 

정상회담 일정에서 돌아온 인사들은 너나없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특별한 감상들을 내놓기 바빴다. 6.15공동선언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윗 사람을 위하고 공감하는 사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에서 마주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여러 기회를 통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과거 남측에서 묘사한 것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주 머리가 좋다. 이론적이기 보다는 즉흥적이다. 또 자상하고 윗사람 위하는 자세를 보였다. 내가 다리가 불편하다고 내 숙소인 초대소에서 대화를 했다. 융숭한 사람이고 자상한 사람이다. 여하간 보통사람은 아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상당한 능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의 얘기를 잘 이해하고 그 말에 공감하면 바로 동조하여 결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북에서 가장 외부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개방적인 성격인 인물은 김정일 위원장이라고 들었다.”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고별 오찬장에서는 내가 팔걸이가 있는 의자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준비해 주었다.”

 

당시 국가정보원장이었던 임동원은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두 차례 평양을 방문했는데,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말하기를 즐겼습니다. 두뇌가 명석하고 판단력이 빠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명랑한 편이고 유머 감각도 대단했습니다.” 임동원은 “연장자를 깍듯이 예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에 앞서 1998년 방북하고 돌아온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또한 비슷한 평가를 했었다. 정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논리가 정연하고 활발하다”, “나를 어른으로 잘 대접해 줘 무척 고마웠다”고 말한 것이다.

 

세심하면서도 호탕한 리더 

 

김대중 대통령 곁에서 첫 남북정상회담을 수행한 이들도 여러 발언들을 했다. 

 

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자리했던 김민하 민주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만찬장에서 함께 앉아 보니 친밀감이 참 큰 인물이었다. 20명이 앉은 테이블이니 (중략) 필시 한두 명은 주목도 못 받고 조용히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전체 참석자들을 다 관리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한 구석에서 멍하니 앉은 사람을 보면, ‘저 친구는 뭐 생각하나? 한잔 받아’라며 잔을 건네고 관심을 쏟았다”고 말했다.

 

특별수행원으로 함께 했던 장상 이화여대 총장도 월간조선 인터뷰를 통해 “이번 회담기간 중 북한측은 2박3일 동안 변함없이 최상급의 접대를 했으며 남쪽을 비난하거나 거슬리게 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괜찮은 사람, 보통 사람’으로 다가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좌중을 휘어잡는 탁월한 리더십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여러 여야 정치인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왔다.  

 

그중에서도 박지원 전 장관은 “무척 호탕하신 분이었다. 완전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통일에 대한 열정과 민족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이나 서방 국가들, 특히 한국의 여러 국내 문제를 알 정도로 박식했다. 가수 이미자와 조용필을 매우 좋아했다”고 말했다.  

 

민첩하고 합리적인 대화 상대 

 

해외 인사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합리적인 대화상대로 평가했다. 

 

탕자쉬안 전 중국외교부장은 2000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두뇌회전이 빨랐고, 사물에 대한 반응도 민첩했으며, 목소리도 우렁차 아주 건강해 보였다”고 말했으며, 울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은 2001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관해 김 대통령이 느낀 것과 많은 부분, 똑같이 느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합리적인 대화자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우리가 알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생각은 편파적이었다. 

 

1992년 조선인민군 창건 60돌 기념식에서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육성이 2000년 이전 북의 지도자에 대해 알려진 전부였다.

 

그러나 2000년 6월을 지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남북 두 정상의 만남이 남측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고부터, 북에 대한 편견이 깨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지금 남북관계는 다시 어려움에 부닥치고 있다. 20년 전 두 정상이 합의한 6.15의 정신인 ‘우리민족끼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발휘해야 할 때이다. 문재인 정부가 북에 대해 말이 아닌 진실한 모습으로 소통하며 용기 있는 실천을 해나가야 할 때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6.15 남북공동선언의 역사적 의의 https://www.jajusibo.com/51010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이 가져온 변화 https://www.jajusibo.com/51028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2000년 정상회담 성사를 통해 본 문재인 정부의 과제 https://www.jajusibo.com/5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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