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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의 단편소설] 월담(2)

황선 | 기사입력 2020/08/17 [18:46]

[황선의 단편소설] 월담(2)

황선 | 입력 : 2020/08/17 [18:46]

* 황선 평화이음 이사의 단편소설 ‘월담’을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2.

 

이 일을 어쩔 것인가? 당장 서울에 가봐야 하는가? 머릿속이 좀처럼 정리가 안 되어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카톡메시지가 카톡 카톡 불러댄다. 

아까 전화를 준 학생인지 수영이 친구라는데, 글이 장황하다. 

‘수영이 아버님, 저는 수영이랑 같은 동아리 친구입니다. 최근 미국이 우리나라에 주한미군 주둔비용으로 6조라는 돈을 내놓으라고 해서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미군은 이미 해 마다 1조가 넘는 우리 국민의 혈세를 주둔비 분담비용으로 걷어가고 있는데, 이 돈을 남겨 미국의 은행에 넣어놓고 이자놀이를 한다거나 주한미군이 아니라 주일미군의 경비로 사용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은 말로는 우리나라를 지켜주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미국의 동북아전략에 따른 주둔일 뿐입니다. 오히려 미군의 존재는 한반도의 평화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거듭 정상회담을 하고 공동선언에서는 공존과 공영의 길을 약속하고 확인하는 마당에 미군은 점차 더 필요가 없어지는 형국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의 이익을 위해 억지로 주둔하고 있는 미군유지비는 더더욱 우리가 부담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내고 있는 1조 원의 분담금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과도하고 불평등한 것입니다...’

도대체 6조 원이 얼마인지... 동그라미가 몇 개나 붙어야 읽을 수 있는 액수인지도 우리로서는 가늠할 수가 없는 돈이고, 얘기를 들어보면 과하다 싶은 것은 맞지만, 미국이 우리를 함부로 하고 우리는 거기에 감히 어쩌지 못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자랄 때처럼 조용하고 무난하게 대학생활을 해주기를 바랬건만, 어디서 이 바람이 들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80년대나 90년대처럼 전대협이니 한총련이니 하는 단체가 위세를 떨치고 대학가 주변에선 매운 최루탄내가 진동하는 시절도 아니고, 요즘 대학생들은 알바하기 바빠서 모여 앉을 새도 없다던데 이런 희귀한 일에 빠지다니 정말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친구란 녀석은 좋은 변호사들이 나서주었다는 것, 하루 한 번 유치장으로 면회가 가능한데 오시게 되어 연락주시면 다른 사람들을 못 하게 하고 시간을 비워놓겠다는 등의 말과, ‘오마이뉴스’와 ‘민중의 소리’ ‘주권방송’ 등 의심스러운 몇 몇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끝으로 수영이가 부모님 걱정을 많이 하며 걱정마시라고 했다고 남겼는데, 그 놈이 부모 걱정을 눈꼽만큼이라도 하는 놈이었으면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있겠나, 걱정말라는 소리에 갑작스레 더 부아가 나는 통에 당장에라도 서울로 뛰어가야 하나 싶었던 생각을 내던지고 애 엄마를 닦달해 술상을 보고야 말았다. 

평소 잘 먹지 못하는 술을 거푸 마셨는데도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뒤척이다가 새벽같이 일어났다. 아무래도 서울에 가서 녀석의 얼굴을 확인해야 하지 않겠나 자꾸 마음이 쓰였다. 문 앞에 신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마자 쏜살같이 나가 들고 들어왔다. 사실 요즘은 화장실에도 핸드폰을 들고 들어가 앉아있느라 종이신문을 굳이 더 볼 이유는 진작에 없어졌는데 그놈의 의리 때문에 그냥저냥 보고 있는 것이다. 소위 메이저신문들만 모아 배달 지소를 하는 친구는 요 몇 년 죽지 못 해 사는 상황이라고 만날 때마다 하소연이다. 그 몇 만원도 아쉬운 일이 많아서 확 끊어야지 마음을 먹고 만났다가도 결국 앓는 소리에 구독을 계속해 온 것이다. 신문이 활자가 아니라 종이 자체의 쓸모가 있어서 아쉬운 날이 있으니 모아뒀다가 그렇게라도 쓰자는 너그러운 생각까지 하면서 불필요한 구독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날은 신문을 들고 앉아 꼼꼼하게 기사들을 훑었다. ㅈㅅ일보는 <친북단체에 뚫린 미대사관저>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는데 읽어보니 더 강하게 학생들을 진압해서 끌고 가지 않은 경찰의 무능에 대한 성토가 주였다. 하기야 경찰이 사다리의 접근부터 저지했더라면 저것들이 홍길동이 아닌 한에야 저 높은 담을 뛰어 넘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그러면 우리 수영이도 당일로 훈방되고 말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학생단체’도 아니고 그 단체의 공식 이름도 아닌 ‘친북단체’라니, 왜 이렇게 쓰는지, 이 신문을 삼대에 걸쳐 보면서도 한 번도 문제의식을 가져보지 않았는데, 유독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설상가상 무슨 대단한 정치기사도 아니고, 어디서 어마어마한 재난사고가 나서 인명피해가 난 것도 아닌데, 컬러사진까지 게재한 것이다. 다행히 대형 플랑을 든 여학생들이 사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고 아들놈은 깨알 만하게 나와 누구도 알아보기는 어려울 듯 싶었다. 그런데 이 신문이 사설까지 엄벌 운운 하며, 해리 해리스인지 뭔지가 시건방 떤 것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학생들을 생 빨갱이로 몰아가는 것을 읽고 있자니 피가 머리로 훅 몰려드는 것 같았다. 그 길로 파자마 차림으로 달려나가 온 구미시내를 돌며 우편함에 꽂혀있는 ㅈㅅ일보를 다 들고왔다. 가을비도 부슬부슬 내리는데 우산도 없이 신문뭉치를 모아들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아내가 당황해 물었다.

“왜요? 신문에 우리 수영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왔니껴?”

“아이다, 사진은 안 나왔는데 이거 신문이 순 엉터리야, 이런 거 읽으면 순식간에 바보 되는 기라.”

(계속)

 

*월담 1회 보기->http://www.jajusibo.com/5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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