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선 평화이음 이사의 단편소설 ‘월담’을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3.
신문을 오늘 모두 불살라 버리라고 해놓고 기차역으로 갔다. 차를 끌고 갈까 싶기도 했지만, 남대문경찰서 주변이 어떤지 모르겠기도 하고 과음에 잠을 설친 것도 있고 해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애 엄마는 동행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그래도 내가 먼저 수영이를 보고 내일이라도 다시 오자 싶은 생각이었다. 아이가 다쳤거나 너무 초췌하거나 그러면 안 그래도 종일 낯 색이 파리해서 벌벌 떨고 있는 사람이 그대로 까무러칠까 걱정이었다. 서울역에 도착해보니 기차를 타고 온 것이 천만 다행인 게 서울역 건너편이 바로 남대문경찰서였다. KTX덕으로 서울서 경북이 지척이 된 것이 오랜데, 왜 그렇게 마음의 거리는 멀기만 하던지, 이 정도 시간이면 당분간 옥바라지도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겠다고 생각해놓고는 스스로에게 깜짝 놀랐다. 요즘 같은 세상에 담 한 번 넘고 소리 한 번 지른 걸로 구속까지야 당할까 하면서도 내심 가혹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미안하고 불길해서 침을 퉤퉤퉤 뱉고 싶은 심정이 다 들었다. 경찰서 앞에는 어제 통화한 현욱이라는 학생과 미주라는 후배 여학생이 기다리고 있었고 정문 한 쪽 옆에서는 ‘방위비분담금 6조 강요하는 미국을 규탄한 정의로운 대학생들 즉각 석방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앳된 학생이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듣자하니 학생들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오전에는 사회단체와 학생들, 인권변호사들이 함께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도 열었다고 했다. 연행된 학생들은 단식을 하면서 묵비권을 행사 중이라 했다. 단식을 하고 있다니, 애 엄마랑 동행하지 않기를 잘 했다고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버지!” 수영이는 생각 보다 밝은 얼굴로 웃음까지 띄고 유치장 면회실로 들어섰다. “아버지, 놀라셨죠? 죄송해요.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는데...” “어디 다친 덴 없나?” 만나면 욕부터 튀어나갈 줄 알았는데, 안 그래도 뽀얀 얼굴이 더 맑아진 것 같아서 뭔가 크게 안도감이 들고 어제부터 입안에 맴돌던 욕들이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네, 걱정마세요. 아버지. 도와주시는 민변 변호사님들도 계시고, 국민여론도 좋다고들 하시니 다 잘 될 거예요.” “국민여론이 뭐가 좋아, 신문이랑 방송은 계속 난리인데. 니들 다 종북 빨갱이라고 엄벌하라고” “아버지, 이제 ㅈㅅ일보랑 종편뉴스 그만 보셔야 해요. 그거 보면 우리나라에 도움 되는 기사는 하나도 없어요. 제가 편지 많이 써서 보낼테니 그거 많이 보시고 우리 친구들이 보내드리는 기사 많이 보세요. 어머니께도 그런 것만 전해주시고... 어머니는...” “엄마는 안 데려왔다. 내가 먼저 봐야 안심이 될 것 같아서 일단 다녀오마고 왔는데, 설마 이만일로 구속까지야 시키겠나? 그리고 편지는 뭐, 거기서 오래 살 작정이가? 고마 잘 좀 봐달라그고 얼렁 집에 가자.” “네, 그러네요. 저는 최대한 빨리 나갈테니 여튼 신문은 끊으시고 어머니는 안심 좀 시켜주세요.” 녀석이 원래 저렇게 넉살이 좋았나 싶게 웃기도 잘 웃고 꼴에 농담도 잘 쳤다. 서울 유학생활이 몇 해 됐어도 집에서 보면 고향 억양 하나도 달라진 것 같지 않더니만, 긴장된 자리라 그런지 서울태생이라고 해도 될 만큼 서울말이 매끄러웠다. 같이 들어온 후배들은 눈물이 그렁그렁한데, 그 아이들을 달래주고 이런저런 당부도 하는 폼이 뭔가 낯설고, 저게 내 속에서 난 놈이 맞나 싶은 생각이 다 들었다. ‘확실히 빨갱이 짓이랑은 다른 건지?’며 몇 마디 잔소리를 더 하고 싶은 맘도 있었으나 왠지 아들놈 후배들 앞에서 해서는 안 될 소리인 것도 같고 해서 마음과 달리 점잔을 빼다보니 허락된 시간이 끝나버렸다. 들어가다 말고 돌아서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데, 뭐랄까... 녀석이 어른이고 내가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서울역 광장은 건너편 남대문경찰서 앞과 달리 자유당 시대를 방불케 했다. 아들녀석의 얼굴을 보고 다소 편안해진 마음은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태풍 속 뗏목처럼 홀딱 뒤집어졌다. 빈소주병처럼 누워있는 노숙자들이 군데군데 보이는 서울역 광장엔 태극기와 성조기, 심지어 일장기까지 든 사람들이 모여 성토 중이었다. 도심의 소음에 저마다 목청을 높여 떠드는 통에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들이 더더욱 기괴하게 뭉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불쾌감을 고조시키는 것 같았다. 내가 저기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있는 수영이 아버지라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것인지 원래 이렇게 한심한 무리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었는지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몇 달 전부터 구미에서도 주말이면 고속버스를 대절해 서울로 집회를 간다고 난리들이더니 혹시 이런 곳에 오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사실은 나도 시간만 허락됐으면 한 번은 왔을 거였다. 얘기를 듣자하니, 쉬는 날 한 번 가기엔 쏠쏠한 재미가 있다고 했다. 광화문 8차선 도로를 태극기에 성조기 휘날리며 활보하면, 스피커 소리가 쾅쾅 심장을 울리는 것이 자유대한을 지키는 영웅이 된 듯 기분이 그만이라고도 하고, 고속도로를 오가는 차 안에서 술이며 고기며 제법 잔치음식 같은 것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풀린다고도 했다. 요즘은 줄었지만 서울행 한 번에 차비며 식대가 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당을 챙겨오는 적도 있다고 하니, 자유당 시절 반공궐기대회 보다 참가자에 대한 대우는 훨씬 좋아진 것이다. 하여튼 주말에 서울 나들이를 다녀온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일부러라도 구경 한 번 가봐야겠구나 했었는데, 광장의 어수선함과 저마다 완장을 찬 듯 흥분해있는 깃발부대들을 보자니, 호기심에라도 따라다니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싶었다. 현욱이가 보내준 기사와 댓글들을 다 읽기도 전에 구미역에 도착했다. 신기하게도 댓글들은 수영이와 친구들의 월담을 지지하고 칭찬하는 것 일색이었다. ‘오늘날의 독립군들이다.’ ‘이런 대학생들이 있다니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다.’ ‘표창장을 주지는 못 할망정, 구속이라니 말도 안 된다. 우리나라는 애국자들을 언제쯤 제대로 모실 것이냐.’ ‘이번에는 미국이 너무 했다. 6조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우리나라가 호구냐. 그 돈 이면 우리가 자주국방 하고도 남겠다.’ ‘6조 원 미국에 줄 거면 그냥 내보내고 남북통일 하자. 그 길이 더 남는 장사다.’ 이런 등등의 댓글들이 수천 개씩 달렸는데, 이 녀석들이 어디서 이런 것만 잘도 찾아내 보냈네 싶으면서도 내심 안심이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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