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이음이 월간 '민족과 통일' 9월호를 발간했다. 우리사회와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진영 논리와 흑백 논리
언제부턴가 진영 논리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자기 진영의 이념은 무조건 옳고, 상대 진영의 이념은 무조건 틀리다고 하는 논리’이다. 진영 논리는 이제 거의 부정적인 말로 쓰인다. 사실 자기 진영의 이념이 옳다고 하는 것이 문제인가? 상대 진영의 이념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무조건’이라는 것이 붙어서 그러리라. 하지만 ‘무조건’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를 말하는지 모호한 규정이다.
‘이념’이 아니라 ‘언행’이라고 보면 진영 논리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 진영의 언행이 잘못되어도 두호한다. 무조건 편든다는 것이다. 저 사람은 우리 진영인데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보는 데서 출발하여, 심지어 그 사람이 잘못했어도 상대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안 되므로 우리가 방어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것을 진영 논리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런 논리를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또 문제가 있다. 과연 우리 진영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진영이란 것 자체가 없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아니 없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특정 정치세력을 자신의 진영으로 보고 그것을 위해 사실상 언행을 일삼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진영이 없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은 역사에 무책임한 사람이다. 진영은 우리의 머릿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서 진영은 민족민주와 반민족 수구로 나뉘어 있다. 이 진영 대립은 단순히 어제오늘에 생긴 것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과 분단이 되면서 형성된 양 진영이 약간의 변화를 겪으면서 여전히 지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진영의 대립은 아마도 통일의 그 날까지 지속이 될 것이다. 물론 이 대립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 성격이 얼마간 변하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성격 자체가 변했다고 보면 안 된다.
한편 특정 정치세력이 한 진영을 이루고, 그것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이 역사에 기여하는 것인 양 착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다. 군사독재의 폭압이 심할 때 그것은 주로 앞 세대와 단절되고 고립된 민중운동의 정파 조직에서 많이 나왔다. 하지만 어느 정도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갖추어지고 진보세력의 제도권 진출이 활발해진 이후에는 제도권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이러한 경향이 형성되어 왔다.
현재의 한국 현대사에서 진영을 나누면 안 된다는 생각도, 특정 정치세력으로 진영을 형성하려는 생각도, 지금까지 이어온 진영이 이제 없어지거나 변했다는 논리도 모두 잘못된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진영을 나누면 안 된다는 생각은 엄연히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 진영을 무시하는 것이다. 민족민주 대 반민족 수구의 진영이 대립되어 있는 현실에서 그것은 반민족 수구의 이익에 복무할 뿐이다.
특정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현재의 역사적 과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 그것 때문에 자신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세력들을 공격하는 일에 진력하는 세력은 민족민주 진영을 분열시키기 때문에 역사에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민족민주와 반민족 수구의 싸움에서 민족민주 진영은 최대한 단결을 통해서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반민족 수구는 한줌도 안 되는 것 같지만 그 배후에는 외세가 있고, 이 사회의 기득권층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 민족민주와 반민족 수구의 진영 싸움의 성격이 변했다는 견해에도 문제가 있다. 아직도 온갖 반민주 세력이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발호하는 현실이 보이지 않는가? 사회 곳곳에 그들의 세력이 여전히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외면하는 것인가? 더욱이 우리를 둘러싼 외세가 궁극적으로 그들을 지지 옹호하고 있고, 그들 역시 외세가 우리 사회에 영향을 계속 가지기를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겠다는 것인가?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말로 현 정부를 수구세력과 동일시하는 견해를 말하곤 한다. 또한 정권이 바뀌어도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고 한다. 현 정부가 아무리 잘못한다고 해도 수구세력과 동일시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고,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 역시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것이다.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은 이전의 성과를 바탕으로 가는 것이지 지금까지 온 것을 부정하고 가는 것이 아니다.
현 정부가 촛불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정권답지 않게 적폐청산을 위한 개혁에 미온적이고, 외세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반민족 수구세력을 확실하게 약화시키는 일이지 대안 없이 현 정부를 공격하는 일이 아니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은 그들이 반민족 수구세력을 미온적으로 대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과감하게 진보적 행보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화살이 겨누어져야 한다.
진영 논리와 더불어 우리가 좀 더 정확하게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는 것이 흑백 논리이다. 흑백 논리는 어떤 상황을 단 둘로만 판단할 때 일컫는 말이다. 흑백 논리는 분단 이후 수십 년 동안 독재정권에 의해서 이용당해 오던 논리이다. 반공 아니면 용공이라는 식이었다. 독재에 협조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빨갱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흑백 논리는 한시바삐 극복되어야 할 잘못된 논리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지 둘로 보면 모두 흑백 논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둘밖에 없는 것도 있다. 삶과 죽음이 그러하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그러하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모순 관계라고 한다. 좋다와 싫다, 사랑하다와 미워하다 등은 둘밖에 없는 것이 아니다. 중간도 있고, 제3도 있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반대 관계라고 한다. 둘밖에 없는 것을 둘 중 하나라고 한다고 해서 흑백 논리는 아니다. 그러므로 흑백 논리는 반대 관계인 것을 모순 관계라고 할 때 가리킬 수 있는 논리다.
독재정권 시절에 독재에 협조하고 순종하지 않으려면 반대해야 한다고 해서 그것을 흑백 논리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독재에 반대하는 투쟁을 회피하기 위해 독재에 대한 투쟁을 흑백 논리라고 하면서 온갖 제3의 길이 나타났다 사라진 적이 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분단을 극복하고 자주를 이루어 나가는 길에 외세를 반대하는 투쟁은 흑백 논리가 아니다. 아직도 엄연히 힘을 지니고 민족민주를 방해하고 있는 수구세력에 반대하는 투쟁은 흑백 논리가 아닌 것이다.
친일 수구 세력이 이 땅에서 절멸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여전히 강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친일 수구 세력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약화시키기 위한 투쟁은 진영 논리도 아니고, 흑백 논리도 아니다. 여전히 이 땅의 진영이 민족 민주와 반민족 수구로 나뉘어 있고, 반민족 수구를 향한 투쟁이 이 땅의 민주와 민족 자주, 통일을 위한 길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오히려 친일 수구 세력에 대한 투쟁에 더한층 박차를 가해야 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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