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아 김련희 씨가 북에 계시는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를 보내와 아래에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북녘의 내 고향 평양에 계시는 사랑하는 부모님께
아버지. 어머니. 오늘은 제가 남녘에서 맞는 9번째 추석입니다.
민족의 큰 명절이어서 이날만큼은 멀리 있던 자식들도 부모님과 가족 곁을 찾아온다는데 저는 차로 2시간이면 가닿을 지척에 있으면서도 9년이나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고 있네요.
하지만 단 하루도 부모님 생각을 떠나본 적이 없고 지금 이 시각도 아버지, 어머니 건강은 어떠실까, 오늘 같은 명절날 오래도록 돌아오지 못하는 이 맏딸 생각으로 또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이 먼저 앞섭니다.
혹여 부모님 아프시다는 소식이라도 날아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마음은 하루하루 급해져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기고 싶은 심정 비할 바없이 절박한데 야속하게도 그 간절한 소원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이 못난 딸이 언제면 오려나, 손꼽아 기다리다 끝내 실명하셨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어머니의 슬픈 소식입니다.
가슴이 미어지게 너무 아픈데 그런 소식을 듣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자식이 너무 죄스럽습니다.
부모님, 하지만 제가 겪는 이 고통이 너무나 뼈를 깎는 무서운 아픔이기에 더는 눈물만 흘릴 수 없었습니다.
여기 남녘에 와보니 너무나 많은 분이 분단의 고통과 슬픔을 안고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던 조국의 자주통일을 위한 운동을 했다는 죄 아닌 죄로 이 추석날에도 독감방에 갇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통일운동가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통일운동은 자신의 청춘, 온 생을 모두 희생하고 감옥에 끌려가는 것을 항상 각오해야 하는 참으로 간고하고 힘겨운 것입니다.
그렇게 감옥에 끌려가고 강제추방되며 그 고된 탄압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우리의 자주평화통일만을 위해 웃으며 그 고난을 맞받아가는 분들을 볼 때면 나 하나 개인의 이산고통으로 눈물 흘리던 제가 너무 죄스럽고 또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감히 눈물을 흘릴 수 없었고 여기 남녘 동포들의 그 통일염원을 위한 일에 저의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부모님은 아마도 어려서부터 항상 앓던 이 딸의 건강 때문에 많은 걱정을 하시리라 봅니다.
하지만 너무 근심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비록 가족과는 떨어져 있지만 여기 수많은 남녘동포들이 저의 가족이 되어 제가 힘들세라, 아플세라, 항상 저의 곁에서 따뜻이 돌봐주고 있어 걱정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추석 명절에도 혼자 외롭지는 않은지, 밥은 제대로 해 먹고 있는지, 전화도 주시고 맛있는 음식들도 보내주셨어요.
참으로 여기 남녘동포의 그 따뜻한 혈육의 정과 응원의 힘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는 것이고 그 사랑에 떠받들려 희망찬 내일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 때문에 너무 많이 걱정하셔 건강을 해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부디 제가 돌아가는 그 날까지 부모님만 건강하시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우리 만날 날은 과연 언제일가요?
이렇게 한 해 두 해 세월은 야속하게도 속절없이 흘러만 가는데 도무지 저의 고향 길은 열리지 않네요.
하지만 언젠가는, 그리 멀지 않은 언젠가는 우리 꼭 만날 그날은 반드시 오겠죠?
그날까지 부디 건강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추석 명절 부모님께 이 맏딸이 삼가 인사를 드립니다.
2020년 10월 1일 추석 맏딸 김련희 올림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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