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원을 기억하며] 5. 백지은 “거짓이 없고 투명한 사람”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1/05/11 [09:00]

[신혜원을 기억하며] 5. 백지은 “거짓이 없고 투명한 사람”

김영란 기자 | 입력 : 2021/05/11 [09:00]

▲ 2018년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답방을 위해 활동한 신헤원 작가.  © 김영란 기자

 

자주·민주·통일을 염원하며 자신의 한 생을 바쳤던 신혜원 작가.

 

신혜원 작가는 암 투병 중 지난 3월 22일, 4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많은 이들은 신혜원 작가의 삶은 조국과 민중, 조직과 동지를 위해 헌신해 온 삶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신혜원 작가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통해 그의 삶을 다시 한번 더 되돌아본다. (편집자 주)


 

“거짓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민들레 뒤풀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 바로 언니가 선배들과 진지한 토론을 하는 풍경이었죠. 대체로 모두 한바탕 독서토론에, 긴 회의를 마치고 간 뒤풀이에서는 왁자지껄 웃고 떠드느라 바빴고 진지한 이야기는 뒤늦게 나오곤 했어요. 하지만 언니는 달랐어요. 뒤풀이 자리 풍경을 슥 둘러보면 어느 자리에서 언니는 선배들과 조용히 토론하고 있었죠. 어떤 내용이었을지는 잘 모르지만 분명 모임에서 채 풀리지 못한 고민, 토론에서 다 이야기하지 못한 것을 선배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던 것이겠지요. 그래서 그런지 언니와 토론을 하는 선배들은 언제나 진심으로 언니의 말에 귀 기울이고 정성을 다해 토론을 했었어요. 그 토론에 몇 시간이 걸릴 지라도요. 보통 모임에서 고민이 다 풀리지 않더라도, 그 고민을 마음속으로 다시 넣기도 하고 다음으로 미루기도 하는데 언니는 늘 솔직하게 더 토론했어요. 그런 투명한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백지은 씨는 신혜원 작가를 이렇게 기억했다. 

 

백지은 씨와 신혜원 작가는 2015년 ‘민들레’라는 모임을 통해서 만났다고 한다. 민들레는 진보적인 예술인들의 모임이다. 백지은 씨 당시 대학생 연극동아리를 하고 있었다. 

 

신혜원 작가의 첫인상은 어땠을까?

 

백지은 씨는 “언니의 첫인상은 굉장히 뭐랄까... 무표정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큰 표정 변화가 없고, 무덤덤한 모습에 첫 만남에서는 인사도 나누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어딘지 모르게 차가워 보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후 작업을 같이하면서 자주 만나다 보니 첫인상은 깨졌어요”라고 기억했다. 

 

차가워보였던 신혜원 작가의 모습이 바뀐 것은 언제일까? 이에 대해 백지은 씨는 이렇게 말했다. 

 

“충무로에서 언니랑 처음으로 둘이 만나 술 한잔했던 때가 기억이 나요. 당시 신입 민들레와의 만남으로 언니와 제가 자주 만났죠. 이런저런 활동 고민을 털어놓는 와중에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거나, 철없는 소리를 할 때마다 언니의 ‘눈썹이 씰룩, 입꼬리가 꾹-’하며 표정이 바뀌던 게 기억나요. 언니의 표정을 보니까 제가 아무렇게나 말했구나 싶어 정신을 차렸죠. 그러면서 제가 다시 깨달은 이야기를 하면 언니가 또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화하면서 서로 많이 알아갔던 시간이었어요. 언니가 차갑고 무심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동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첫 만남이었어요.”

 

▲ 신혜원 작가(왼쪽)과 백지은 씨(오른쪽). [사진제공-백지은]  

 

백지은 씨는 신혜원 작가를 ‘동지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사람, 동지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신혜원 작가는 동지들이 이런저런 수다를 떨던 중에 스치듯이 나왔던 근황이나 작은 소식들도 다 기억했다가 다음에 만났을 때 조용히 안부를 물어보았다고 한다. 

 

계속해 백지은 씨는 “언니는 주위 사람들이 못 먹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처럼 어려워하는 부분들도 기억했다가 그 사람에게 무언가 선물해야 하거나 할 때 참고했어요. 언니는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생색을 내지 않고 조용하게 짚으며 말했어요”라고 말을 덧붙였다. 

 

또한 백지은 씨는 신혜원 작가의 쓴소리에 대해 “언니는 동지들의 작은 고민, 어려움 하나 대충 듣지 않았어요. 대답을 시원시원하게 해주거나 즉각적인 공감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귀 기울여 들어주고,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다시 조용히 생각한 바를 말해 주었죠. ‘진정으로 동지를 위한 말이 무엇일까’, ‘지금 동지에게 어떤 말이 필요할까’를 깊이 고민하고 또 건넬 말을 고르고 나서야 이내 해주시는 언니의 조언과 공감은 백 마디 말보다도 큰 꾸짖음이자, 위로와 격려였어요. 그래서 자꾸 언니에게는 어떤 고민을 말하면 분명히 한소리 들을 거 같지만 언니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 같아요. 쓰지만, 몸에 좋은 언니의 조언이었죠”라고 돌아봤다.  

 

백지은 씨는 신혜원 작가에게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을 ‘동지를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이라고 꼽으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활동하면서 수많은 동지를 만나고 관계를 맺다 보니, 어떨 땐 표면적인 관계에 집착해서 정작 주변 사람들과 깊은 동지애를 쌓아나가지 못하는 상황들이 생기기도 하는 거 같아요. 결국 함께 활동하는 동지들과 얼마나 진심을 나누고, 함께 활동의 신념을 쌓아가는지가 중요할 텐데, 눈앞에 마주하는 동지의 얼굴, 당장의 관계에만 매여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 져요. 언니가 민들레에서 보여주었던 깊은 동지애는 다정하고 따스한 모습으로만 다가오지는 않았죠. 때로는 격정적인 토론으로, 때로는 매서운 쓴소리로 해주는 꾸짖음도 누구보다 깊은 신념과 동지애에서 비롯된 언니의 사랑이었음을 기억하고 저도 진심으로 동지들을 대하겠습니다.” 

 

[신혜원을 기억하며] 6편은 유정숙 가극단 미래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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