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주석과 ‘평양학원’

박한균 기자 | 기사입력 2021/07/07 [14:45]

김일성 주석과 ‘평양학원’

박한균 기자 | 입력 : 2021/07/07 [14:45]

북한이 ‘국가추모의날’(김일성 주석 서거일 1994.7.8.)을 하루 앞둔 7일 북한 최초 군사간부 육성기관인 ‘평양학원’을 조명했다.

 

북한 매체 메아리는 ‘물어보세요’ 코너에서 ‘평양학원’ 창설(1946.2.8.) 배경을 문답식으로 담았다.

 

재러시아 과학자는 ‘역사가 짧던 북한이 방대한 무력을 갖춘 제국주의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김일성 주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일성 주석이 군 건설을 위해 먼저 군대 간부들을 육성하는 평양학원부터 창설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달라’고 메아리에 부탁했다.

 

매체는 “공화국의 건군사에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평양학원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 후 새 조국건설에 필요한 민족간부 특히는 혁명적 정규무력건설에 필요한 군사정치 간부들을 키워내기 위하여 몸소 세우신 군사정치학교”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매체는 김일성 주석이 군사정치 간부들을 많이 키워내는 것을 선차적 과업으로 내세웠다고 덧붙였다.

 

김일성 주석은 1945년 11월 북한에서 첫 군사정치 간부 양성기지로 될 학원 창설을 구상하고 직접 그 터전을 잡아주기 위해 평안남도 룡강군 다미면 지울리를 찾았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현지에서 “반드시 자기 힘으로 민주주의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여야 하며 우리의 강력한 민족적 정규군대를 창건하여야 한다”라며 “그러자면 무엇보다 간부가 많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학원을 창설하고 여기에서 현대적 정규무력의 골간이 될 군사정치 간부들을 많이 키워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은 또한 학원 이름과 관련해 “학원의 이름은 우리가 조국에 돌아와 처음으로 세우는 학원인 것만큼 평양의 이름을 따서 평양학원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다.

 

김일성 주석은 초대 원장으로 김책을 임명했다. 김책은 1930년대 김일성 주석이 이끈 항일무장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일꾼들은 김일성 주석에게 평양학원의 명예원장을 제안했으며, 김일성 주석은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은 평양학원에서 1946년 1월 3일 첫 강의를 했으며, 이후 2월 23일 평양학원 개원식에 참석해 ‘평양학원개원식을 축하하여’라는 연설도 했다. 

 

김일성 주석은 이 연설에서 “새 조선을 건설하려면 자기의 군대를 가져야 한다. 자기의 군대를 가지지 않고서는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로 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매체는 “평양학원이 창설되었던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평양학원은 새로운 군종, 병종 학교들을 연이어 내오시어 항일의 전통을 이은 정규적 혁명무력인 조선인민군을 창건하시고 끊임없이 강화 발전시키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과 더불어 주체의 건군사에 길이 빛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평양학원은 설립 당시 정치반과 군사반으로 구성됐으며, 교육은 단기과정으로 공산주의 사상과 정치교육, 군사교리 교육으로 이뤄졌다. 1946년 4월 29일에 첫 졸업생이 배출됐으며, 이들은 각 도 보안대를 비롯해 각 도·시·군의 인민위원회와 철도보안대의 핵심 간부로 배치되거나 새로이 창설된 보안간부훈련소와 철도경비훈련소의 교관이 됐다. 1946년 5월 북한은 정규군 창건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으며, 그 일환으로 1946년 7월 8일 임시인민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평양학원 군사반이 강서군 대안리에서 보안간부훈련소와 통합해 북조선중앙보안간부학교로 바뀌었다.

 

평양학원은 1949년 1월 위치를 평양 만경대로 옮기고 ‘제2군관학교’로 개칭했으며, 이후 ‘강건군관학교’를 거쳐 현재 ‘강건종합군관학교’로 명칭이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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