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반공·반북 이념의 지배를 받아왔다. 반공·반북 이념은 미국이 한국으로 하여금 자주적 발전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얽어매 놓는 튼튼한 올가미였고, 보수적폐 세력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휘두르는 만능의 보검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 지배 체제가 붕괴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6월 29일 문재인 대통령이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 “매우 솔직하고 의욕적이며 강한 결단력을 보여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제적인 감각도 있다”라고 말하는 등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칭송했다. 그런데 색깔론이 지배하던 과거와 달리 이에 대해 반발은 별로 없었다.
2018년에는 4월 남북정상회담 직후 여론조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한국 국민의 신뢰도가 무척 높은 것으로 나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보인 행동이나 발언에 신뢰가 가느냐’라고 묻는 질문에, ‘매우 신뢰가 간다’ 17.1%, ‘대체로 신뢰가 간다’ 60.5%로 긍정평가가 77.5%였다.
이처럼 상당 기간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반공·반북 이념이 힘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여전히 반공·반북 이념의 공고한 지배 아래 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근본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한국 사회의 기득권 지배 체제에 커다란 파열구가 생긴 것이다.
이런 변화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2000년 9월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 60%가 넘는 국민들이 ‘신뢰한다’라는 응답을 했다. 2000년 6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결과였다.
이전 시기 한국 사회에는 북한 지도자에 대한 악선전, 반공·반북 선전이 횡행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반공 만화 영화 ‘똘이장군’은 대표적인 반공·반북 선전물이다.
이런 반공·반북 공세는 언제, 왜 시작되었을까. 먼저 해방 직후 북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로 쏠리는 민심을 가로막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해방 직후 서울에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가 꾸려질 정도로 김일성 주석에 대한 민심 쏠림 현상이 강했다.
그리고 1946년 8월 미군정청 여론국이 전국 8,4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사회주의·공산주의에 찬성한다는 응답자 비율이 대단히 높았다. ‘조선인민이 어떤 종류의 정부를 요망(희망)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실시한 여론조사였고, 질문은 “귀하가 찬성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선택지는 ‘가)자본주의, 나)사회주의, 다)공산주의’였는데, 답변의 결과는 자본주의(1,189명, 14%), 사회주의(6,037명, 70%), 공산주의(574명, 7%), 모릅니다(653명, 8%)였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당황해 반공·반북 이념 공세, 빨갱이 몰이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공·반북 이념 공세의 핵심은 북한 지도자에 대한 왜곡 선전, 악선전이었다. 지금은 거짓으로 판명난 ‘김일성 가짜설’도 이런 여론 조작, 반공·반북 공세가 만들어 낸 웃지 못할 결과물의 하나이다.
다음으로 반공·반북 이념 공세와 빨갱이 몰이는 이승만과 미군정의 남한만의 단독 선거, 단독 정부 수립(이하 단선단정)을 반대하고 나라의 완전한 자주 독립과 조국통일을 열망하는 민심을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이승만과 미군정은 검찰, 경찰, 육군 특무대, 미군 방첩대 등을 동원하여 단선단정을 반대하고 평화통일을 바라는 인물, 세력에 대한 탄압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이 과정에 오제도라는 인물은 ‘사상검사’로 이름을 떨쳤고, 김창룡의 육군 특무대도 악명을 떨쳤다. ‘국회프락치사건’을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을 수 있다.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한 작금의 공안탄압도 이런 연원, 뿌리를 가지고 있다. 보수적폐 세력은 반공·반북, 반통일 공세에 정면 도전하여 연공·연북, 조국통일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였으며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위와 같은 수십 년 암흑의 세월을 뒤로하고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북한 지도자에 대한 극적인 민심 변화가 일어났다. 그동안 한국 사회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던 지배 이념인 반공·반북 이념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기득권 세력의 지배 이념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는 데에서 한국 사회가 근본에서부터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한번 억압의 굴레를 벗어난 민심의 변화는 가속화될 것이고 이에 따라 한국 사회의 변화도 속도를 낼 것이다. 머지않아 한국 사회는 반공·반북이라는 구시대 지배 이념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을 기대한다. 또한 한미동맹에 얽매여 너무나 큰 국가적 역량을 낭비해 온 가슴 아픈 역사를 영원히 뒤로하고 남과 북이 힘을 합쳐 평화, 번영, 통일의 한길로만 힘차게 나아갈 것을 기대한다. 이런 기대에 기초하여 한국 사회의 밝은 내일을 내다본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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