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운명”

황선 | 기사입력 2021/08/17 [09:15]

시 “운명”

황선 | 입력 : 2021/08/17 [09:15]

운명

 

-황선

 

그렇다, 

쫓겨가야 하는 것이다. 

 

평온하게 협정서에 도장찍고

악수하며 사진찍고

물러나기엔

손에 적신 피가 너무 많아서

그래서 그토록 쉬운 협정서 

한 구절 지키기도 

겁을 냈던가 보다. 

 

마지막 성조기까지 게양대에서 끌어내려

먼지처럼 훅 불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울며불며 매달리는 

영혼없는 식민지 노예들을 향해

학살의 개버릇 남 못주고

마지막 총질을 중뿔나게 날리리라,

도망자의 발길을 늦추는 

친애하던 졸개들을 군화발로 차 던지리라,

카불공항으로 꾸역꾸역 내빼던 

구차한 목숨들에 그러했듯이. 

 

오산의 활주로에서도

부산항 밀항선에서도

맞다, 그렇게 가야 하는 것.

고향의 가로수도 메말라 

피 묻혀 돌아오는 그대들을 향해

노란손수건 한 장 흔들어 맞아줄 수 없다. 

 

그것이 도처에서 

어린 눈물로 살찌워 온 

점령군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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