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내린 북한 함경도의 사흘 낮, 사흘 밤 이야기

박한균 기자 | 기사입력 2021/08/20 [13:15]

폭우가 내린 북한 함경도의 사흘 낮, 사흘 밤 이야기

박한균 기자 | 입력 : 2021/08/20 [13:15]

북한은 지난 1일부터 내린 폭우로 인해 주택, 농경지, 다리 등 곳곳에서 피해를 봤다.

 

주민 5천 명이 긴급 대피하고 주택 1천170여 세대가 침수됐다. 또한 농경지 수백 정보가 매몰·침수·유실됐다. 도로 1만6천900여m와 다리 여러 곳이 파괴되고, 강·하천 제방 8천100여m도 피해를 봤다.

 

이에 북한은 조선노동당 함경남도 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소집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등 빠른 대응에 나섰다.

 

북한은 함경남도 수재민들에게 여관과 기숙사 등의 건물을 내주는 긴급조치를 취했으며,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피해 복구용 주요 자재를 국가 예비분에서 해제해 긴급보장하면서 중앙에서 재정 물질적으로 함경남도 피해복구사업을 강력히 지원할 것을 명령했다.

 

현재 북한은 ‘중앙지휘조’를 꾸려 함경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수해피해 복구에 한창이다. 특히 함경도는 오는 당 창건일(10.10)까지 피해복구를 완료할 계획이다.

 

이는 북한이 지난해 8월 태풍 등의 피해 경험을 살려 함경도 인력으로도 충분히 피해 복구를 완료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북한이 재해를 이겨내는 모습이다.

 

보통 사람들은 재해를 당하면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특히 오랫동안 살던 집을 한순간에 잃었을 때는 크나큰 절망과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북한은 해마다 겪는 수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노동신문은 19일 ‘재난과 정의 대결-사흘 낮, 사흘 밤 이야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북한의 ‘집단주의’ 모습을 강조했다.

 

신문은 지난 1일 폭우가 내렸던 함경남도 중부의 내륙 산악지대 신흥군 일대의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함경남도에는 평균 113mm의 비가 내렸으며, 특히 신흥군을 비롯한 낙원군·함흥시·영광군 강수량은 149∼307㎜를 기록했다고 한다.

 

8월 1일 밤 11시, 폭우는 그칠 줄 모르게 쏟아져 내렸다. 하늘엔 번개가 ‘번쩍’했고, 천둥소리도 요란했다.

 

몇 시간 후 갈래를 셀 수 없는 수많은 개울물이 세차게 내렸다. 바로 그 시각 세찬 물결을 헤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담당 지역의 주민 대피를 책임지고 있던 사회안전원이었다.

 

사회안전원은 사회 안전 사업을 직접 담당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남측으로 말하면 재난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소방공무원 등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아직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곧바로 침수지역으로 갔다고 한다. 물속에 잠긴 주택을 찾아다니며 한 집 한 집 문을 두드렸다.

 

범람하는 물 때문에 대문이 잘 열리지 않는 집도 있었으며, 어떤 곳에서는 정든 보금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집주인들을 설복하느라 적지 않은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다고 한다.

 

신문은 “하지만 이들은 하나의 세대, 하나의 살림방도 그저 스쳐 지나지 않았다. 위험에 처한 자식을 목숨 바쳐 구원하려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이들은 마지막 한 세대까지 확인하며 미처 소개하지 못한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업어 내왔다. 이렇게 인민의 생명안전을 위한 분분초초 속에 담당 지역의 모든 주민들이 안전하게 소개될 수 있었다. 힘이 진하고 숨이 차올랐으나 이들은 순간도 지체함이 없이 수재민들의 생활보장대책을 위해 또다시 바쁜 걸음을 이어갔다”라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8월 2일 오전 7시 30분, 물 수위는 높아지고 금세 다리를 무너뜨릴 듯 세차게 흐른 강물. 상황은 점점 긴박해졌다. 다리를 건너 집으로 가던 신흥군 읍 218인민반의 한 여성은 집 걱정에 속이 타들어 갔다.

 

여성이 그의 집 앞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범람한 개울물이 마당으로 들이차고 있었으며 멀지 않은 곳에서는 빨리 안전지대로 대피하라는 방송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고 한다.

 

그때 집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여성은 주춤했다. 언덕 아래에 있는 한 후방가족(자식을 군대에 보낸 가족) 세대가 생각났던 것이다. 지금쯤이면 그 집은 반이 물속에 잠겼을지도 몰랐다.

 

여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 형편이 더 급할 것 같아 끝내 걸음을 돌려 언덕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8월 3일 12시, 기승을 부리던 날씨는 바람 없이 잔잔해졌다.

 

군인민병원에서 입원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한 공장 노동자는 마음이 무거웠다고 한다. 여러 곳의 도로가 파괴돼 통행이 금지되고, 자기 공장이 위치한 지역도 적지 않은 피해를 보았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착잡한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노동자에게 담당의사는 “집 걱정을 하던 모양이군요. 자, 변변치 않지만 어서 드세요”라며 “지금과 같이 어려운 때일수록 서로 도우면서 이겨내야지요. 집의 음식만이야 하랴만 그래도 달게 들어주면 고맙겠어요”라고 말을 건넸다고 한다.

 

이 노동자는 최근까지지만 해도 자기의 병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병실을 떠나지 않고 치료해 준 담당의사의 정성에 말끝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신문은 “위의 사실들은 큰물 피해를 입은 첫 3일간에 꽃펴 난 미담들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지금 지구상의 곳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연재해로 한지에 나앉아 절망과 비애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모두가 친형제, 한식솔이 되어 서로 돕고 이끌며 만난을 이겨나가는 감동적인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신흥 땅의 사흘 낮, 사흘 밤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귀중한 진리를 새겨주고 있다”라며 “정은 재난을 이긴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어려울수록 서로를 돕고 위하는 집단주의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집단주의 문화로 재난이 닥쳤을 때 서로의 힘을 모아 극복해갈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로그인 후 글쓰기 가능합니다.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북바로알기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