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생님"

황선 | 기사입력 2021/09/25 [15:21]

시"선생님"

황선 | 입력 : 2021/09/25 [15:21]

▲ 왼쪽, 윤희보선생, 가운데 박선애 선생, 오른쪽 박순애 선생. 윤희보 선생이 출소한 뒤 우이동에서 함께 거주하던 모습     ©김영란 기자

 

선생님

 

-황선

 

때로는 말씀으로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침이나 뜸을 놓아주시겠다며

때로는 산에서 찾은 약초를 짊어지고 

보석같은 학생들이 고생한다며 

학교로 농성장으로 감옥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어린 당신이 맞았던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마냥 끌려가지 않고 오직 끌고당기던 

작은 소녀 거대한 투사,

지리산 골짜기를 타넘으며

배웠을 사람의 도리도,

감옥의 가혹한 고문을 견디며

지켰던 사람의 의리도,

당신을 알고 이십 몇 해가 지나도록

여전히 다 알지 못합니다. 

 

학살당한 오라비의 주검 앞에서

여섯살 어린 딸아이와 헤어져 

끌려간 칠성판 위에서 

어떻게 당신이 무너지지않고

자꾸만 자꾸만 높아졌는지

아직도 아직도 저는 모릅니다. 

 

누군가에겐 

가시밭길이 꽃길이고

누군가에겐 

아무리 드넓은 꽃밭도 가시밭이라는 것을

한 줄기에 가시도 돋고 보드라운 꽃도 핀다고,

양심의 깊이 사상의 높이 

그것이 가장 예민한 더듬이라고, 

 

가신지 몇 해가 지났건만

오늘도 살아오신 선생님. 

 

- 박선애 선생님 11주기, 선생님을 그리며 2021.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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