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 중인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의 공판이 지난 10월 6일 수요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508호에서 진행되었다.
이날 재판에서 이 연구위원은 모두 진술에서 이번 사건을 “‘고니시’란 인물을 이용한 ‘프락치 공작 미수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 연구위원의 모두 진술 전문을 아래에 게재한다. (편집자 주)
---------------아래---------
모두 진술
저는 지난 경찰과 검찰 조사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며 진술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공식처럼 흔하게 발생하는 사건의 실체와 무관한 공안당국의 무리한 짜맞추기 수사와 조작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부터 법정의 공판중심주의 재판과정을 믿고 진술을 시작하려 합니다.
재판이 시작되어 검찰의 증거기록 자료들을 처음 받아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는 공안당국의 짜맞추기 수사 논리와 증거 조작을 확인하면서 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삼 느끼는 것이 국가보안법이 만든 비상식적 ‘국가보안법 체제’가 작동하는 이상, 그것에 봉사하는 공안기관의 짜맞추기 논리와 조작의 유혹은 시대가 변해도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진실이었습니다. 저는 조작된 핵심 증거기록들과 그에 기초한 주관적 수사 논리와 그 결과물인 공소장의 내용을 인정할 수 없으며 그 오류에 대해서는 재판과정에서 상세히 언급할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을 저와 제 동료들을 대상으로 한 모종의 ‘정치공작 미수사건’ 또는 ‘프락치 공작 미수사건’이라고 규정합니다. 저는 이 공작의 주체가 공안기관 인지, 제3기관 인지, 북한(조선)인지를 2017년 사건 당시에도, 지금도 여전히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또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알 수 없는 상대와의 통신 과정을 거쳐 제가 내린 결론은, 페루 국적의 고니시라는 사람의 정체를 결국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알 수 없는 상대와의 몇 차례 연락도 중간에 모두 종료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제게는 이미 2년 전에 종료된 사건들이 다시 소환되어 기소된 사건입니다.
검찰 측 증거자료에 의하면, 고니시 부부는 2020년 2월에 사망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사망했는지 사라졌는지 그 확인 과정이 너무 허술하며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이 사건은 저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공안당국이 고니시라는 사람을 추적하다가, 저와의 만남을 계기로 양방향 수사로 진행되었으나 그는 사라졌습니다. 검찰의 증거기록을 보면 국정원이 고니시라는 사람을 수사한 것도 고니시가 저를 만나기 불과 2달 전부터입니다. 그를 수사하게 된 계기나 근거도 소설 같습니다. 고니시를 수사한 근거는 1997년 자수 간첩 조oo이라는 사람이 그해 안기부에서 쓴 자술 진술서의 내용에서 시작됩니다. 그의 안기부 진술서 내용에는 조 씨가 중남미에서 1980년대 공작할 당시 20대 대상이 6~7명 있었는데, 그들이 50대가 되어 한국을 드나들 것이라는 추정이 고니시 수사의 결정적 단서라는 것입니다.
1997년도 조OO 씨의 안기부 자술서에 고니시라는 사람은 ‘30대 후반’으로 자술 되어 있으나, 이 수사가 시작된 2017년 조OO 씨의 국정원 참고인 진술서에는 그가 ‘20대 후반’으로 갑자기 조작됩니다. 현재 80대 중반인 조OO 씨가 30여 년 전에 쓴 어떤 남자에 대한 하루 이틀의 기억에 의지하여, 조OO 씨는 30여 년 전의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람이 고니시와 동일 인물이라 하는데 그의 진술은 내가 만난 고니시라는 사람의 신체 특징, 나이, 성격과 크게 차이가 납니다. 국정원이 전향 간첩 조 씨의 1997년 안기부 자술서 내용을 ‘3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으로 조작한 이유는 처음에는 법원의 통신제한 조치 영장과 도청허가를 위해 고니시의 여권 기록과 나이에 짜맞추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그 이후 2019년 조 씨의 2차 참고인 진술서에서도 그 조작은 수정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 국정원이 고니시의 행적과 페루 관련 서류를 조사해 본 결과, 모든 기록과 증거가 고니시가 1986년 당시 30대 후반이라면 전부 맞지 않는 증거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재판에 조OO 씨가 증인으로 나와서 1997년 자신의 안기부 자술 기록이 착각이었다고 번복 진술하고, 조작된 내용에 다시 자기의 진술을 맞출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또한 공소장의 주요 근거인 국정원 녹취기록을 보면서 매우 놀랐습니다. 녹취기록도 토막말과 이해할 수 없는 비문으로 매우 부실했지만, 더 놀란 것은 사실무근의 내용들이 의도적으로 조작되어 여기저기 상당히 삽입된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경찰과 국정원의 조사과정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대봉산’,‘세븐조직’, ‘태양절’... 등 황당한 표현의 출처와 원인을 그 조작된 녹취기록을 보고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재판과정에서 상세히 서술하겠습니다.
국정원은 저와 제 동료들을 4년 동안 밀착 감시, 미행, 도청하며 수사를 진행하였습니다. 2017년 국정원의 초기 수사보고 자료를 보면 공안당국은 또 하나의 간첩 사건을 포착했다고 기술하며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합니다. 그러나 4년간 진행한 수사의 결과는 고대하던 지하조직은 없었으며 간첩 활동도 물론 없었습니다. 있는 것이라고는 공개 단체활동, 소모임 정치토론, 북 바로알기 저술 등 진보활동과 합법적 통일운동 과정뿐이었습니다. ‘남한 정부 전복모의’, ‘국가기밀 정보수집’, ‘사회주의 적화통일 논의’ 비슷한 어떠한 활동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방대한 인력을 투입한 공안당국의 4년간의 수사기록은 역으로 제 활동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증명하는 자료로 확인되었다고 봅니다.
공안당국이 지하조직으로 추정하는 토론모임 도청기록은 제가 지난사건 출소 후 2010년부터 지금까지 10여 년 이상 몇몇 동료들과 수백 번도 더 진행한 일상적 토론모임의 일부분입니다. 핸드폰 전원을 끄고 서로 만나거나 토론모임을 하는 것을 지하활동의 증거라고 추정하던데, 요즘 국정원이 일반수사를 잘 안 하나 봅니다. 저뿐만 아니라 진보 활동하는 주요 간부들이 보안이 요구되는 행사, 주요 토론, 개별 만남에서 핸드폰을 끄는 것은 활동 수칙과 습관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활동 수칙이 생긴 것도 국정원과 경찰의 진보진영 활동에 대한 핸드폰 도청과 프락치 사건이 하도 빈번하게 발생해서 생겨난 반응이자 자구책인 것입니다. 국내 메일보다 외국계 메일과 웹하드, 또 외국계 SNS를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고니시를 만나기 훨씬 오래전인 2009년 전주교도소 출소 후부터 ‘보안관찰 대상자’로 항상 감시상태였으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그것도 모자라 수시로 집 인터넷과 개인정보를 감청했으며 3~4년에 한 번씩 공안기관이 통신제한 조처를 했다는 통보도 사후에 보내왔습니다. 따라서 저는 카페나 공공장소를 이용하여 노트북으로 컴퓨터 작업을 자주 합니다.
공안당국이 4년간 밀착 수사를 했으나, 고니시는 사라지고 정작 저의 활동에 뚜렷한 혐의나 증거가 없는 사건이라면 국정원은 수사 결과를 폐기 처분해야 마땅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지난 5월에 국민들의 ‘국가보안법 폐지 10만 명 국회청원 서명 운동’으로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이 시작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범민련 사건, 청주지역 국가보안법 사건 등 일련의 국가보안법 사건 들을 연이어 터뜨렸습니다. 현재 국정원은 3년 유예기간을 두고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이 대중화되는 것을 막고 대공수사 부서를 어떤 형태로든 유지 강화해 보려는 기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3번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20대에는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사건’과 ‘삼민투 사건’으로, 40대 때는 이른바 ‘일심회 사건’, 그리고 현재 고니시라는 사람과 연관된 사건입니다. 돌아보면 저는 근 40년간 같은 주장과 실천을 해 왔으며 그 주요한 내용은 공소장에 기재된 북의 ‘적화통일 전략’이 아니라, 나라의 민주주의 확장, 민족통일국가 건설, 반외세 자주자립국가 건설 요구였습니다. 저는 현재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통일문제, 국제문제 연구자이자 진보 매체에 정기적으로 정세 칼럼을 기고하는 언론인이기도 합니다. 저는 구속과 동시에 이 사건과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에 대해서 6차례에 걸쳐 여러 매체에 기고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전부 이야기할 수 없지만, 두 가지만 언급하고 나머지는 모두 진술 첨부 자료로 재판부에 제출하겠습니다.
국가보안법의 문제에 대해 첫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일반 국민들은 국가보안법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조금 제한하지만, 무언가 안보를 지키는 순기능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시대에 뒤떨어진 철 지난 법이며, 자유민주주의와 평화통일 그리고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파괴하는, 법의 체모를 갖추지 못한 전근대적 악법입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선진국을 논하면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제적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국가보안법은 시대가 변했음에도 아직도 한국전쟁과 냉전시대의 적대적 대결 논리로, 변화된 현실과 국제정치 상식을 부정합니다. 그 가장 큰 문제는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여전히 정부가 아니라, 반란단체(반국가단체)로 규정함으로써 국민 상식, 헌법, 국제법의 법리와 질서에 커다란 혼돈과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국가보안법이 남북 정부가 상호체제 인정에 기초한 ‘평화공존형’통일을 법리적으로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데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에서 북한은 인정의 대상이 아니라 오로지 괴멸, 전복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통일의 방도는 현실에서 두 가지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 첫째는 ‘제도 통일’ 방안으로 남한이 북한을 자본주의화 하는 흡수통일 방안과 반대로 북한이 남한을 사회주의화(적화통일) 하는 통일 방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무력충돌과 전쟁을 동반합니다. 이것을 ‘적대적 통일 방안’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공존형 통일방안’으로 남과 북의 실체, 즉 상호 남한과 북한(조선)을 정부로 인정하면서 상호 공존형 통일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이를 법리적으로 표현하면 북한을 남쪽에서도 합법화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남과 북이 상호 정부의 실체를 인정하고 상호합법화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공존형 통일방안이라고 합니다. 이 공존형 통일방안의 대표적 방안이 ‘연방제’ 통일방안입니다. 또 남북 정상이 6.15공동선언에서 합의한 연방연합제(또는 연합연방제) 역시 크게 보면 다양한 연방제의 한 범주라고 판단합니다.
저는 이러한 연방제 또는 연합연방제가 우리나라 유일한 평화통일 방안이라고 주장해 온 사람입니다. ‘연방제 통일 방안’이 적화통일 방안이라는 주장은 공존형 통일을 반대하거나 통일 자체를 혐오하는 분단 기득권세력의 오래된 악선전일 뿐이라 봅니다. 연방제가 적화통일이라는 주장은 궤변입니다. 자본주의 체제가 우월하고 상호체제를 인정하는 남북 연방시대로 간다면, 오히려 북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해야지 왜 남한이 사회주의 체제로 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반통일적 궤변입니다.
공소장에는, 제가 북의 대남 적화통일 전략을 추종한다고 하는데 저는 남한의 ‘적화통일’이 가능하지도 또한 타당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한국 적화통일’ 반대론자이며 평화공존형 남북 연방통일론자입니다.
국가보안법은 냉전적 적대 논리로 북을 여전히 규정함으로써 가장 현실적인 평화통일방안(평화공존형 통일 방안)과 북의 정부 실체를 인정하는 남북 평화공존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합니다. 이로 인해 현실 가능한 평화통일 방안인 연방제를 이적시 함은 물론, 결과적으로 북의 정부 실체를 인정하는 모든 남북 정상회담 합의와 6.15, 10.4, 4.27판문점선언 등을 법리적으로 부정하게 됩니다. 반국가단체 수괴와 무슨 정상회담을 하며 그 합의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국가보안법은 20년 전에 6.15선언 합의와 함께 즉각 폐기되어야 할 법이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평화공존, 평화통일과 병존할 수 없는 시대에 뒤떨어진 법이며, 이 법이 북의 실체와 평화통일을 계속 거부함으로써, 국가 안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종국에는 대결과 전쟁, 무력통일 가능성을 높이는 위험한 법입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도 양립할 수 없는 국민 기만적이고 이중적인 양다리 전략을 버리고, 국가보안법이냐 아니면 4.27판문점선언 합의 이행이냐를 선택해야 할 마지막 시점에 와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의 문제에 대해 두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국가보안법과 자유민주주의 관계입니다. 이 둘의 관계는 ‘물과 불’의 관계로 국가보안법이 사라져야 비로소 한국 자유민주주의가 자리 잡고 꽃피는 관계라는 점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하는데, 국가보안법은 정반대로 자유민주주의의 원천적 파괴자입니다. 자유민주주의 또는 민주주의는 근대 유럽에서 시작된 부르죠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로, 그 가장 큰 가치와 원칙은 ‘사상의 자유’입니다. 사상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 없었다면 프랑스 혁명도, 오늘날의 공화제와 민주주의도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당신의 견해와 다르다고 당신을 탄압한다면, 나는 당신을 위해 싸울 것이다”라는 프랑스 혁명 시기의 사상가 볼테르의 말을 새삼 거론치 않더라도, 사상의 자유란 타인의 견해와 생각의 자유를 폭력의 힘으로 탄압, 억압하지 않는다는 근대 시민사회가 수립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 사회에서는 이 초보적 원칙이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상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밑돌이며 사상의 자유가 없는 공화정, 집회, 언론, 결사, 표현, 선거의 자유는 내용을 채울 수 없는 형식의 자유민주주의이며 결국 절반의 자유민주주의입니다. 한국 사회가 국가보안법으로 국민들의 균형적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도적으로 억압한 결과, 물질적 부를 늘리는 데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사상적 편향은 매우 심합니다. 중고등 교육과정에서 노동법과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권리와 인권에 대한 교육은 아예 없고, 철학, 인문학, 사회과학은 경쟁과 자본주의를 고무 찬양하는 우경적 편향이 너무 심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나 맑스주의 철학사상은 고사하고 우리나라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투쟁사도 없으며 북한 현대사, 우리나라 통일운동의 역사와 통일방안 교육도 없습니다. 주체사상은 처음부터 접근해서는 안 되는 불순한 사상으로 교육대상에서도 아예 배제합니다. 그 결과 일반 국민들은 ‘사상의 자유’ 원칙이 무엇인지 스스로 사상적 편향과 불균형이 심하다는 것조차 잘 자각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저는 한국 사회 자유민주주의는 아직도 완성되지 못했다고 봅니다. 4.19혁명, 1987년 6월항쟁, 최근의 촛불항쟁을 거쳤으나 여전히 민주주의의 절반도 성취되지 않은 미완의 중간단계에 있다고 봅니다. 최소한 전근대적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일정 정도 한국 자유민주주의가 성립되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는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와 결코 대치하지 않으며 더 높은 민주주의로 가는 디딤돌이라고 봅니다.
다음은 한국 진보세력, 특히 다수를 이루는 자주파의 ‘한국 사회변혁 방식’과 ‘대북관’에 대해서 간략히 이야기하려 합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공소장은 세월이 70년 이상 흘러도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습니다. 조·중·동 등 국내 매국 보수언론이 묘사하는 대로 한국 진보가 북한의 적화통일을 위해 남한 정부를 폭력혁명이나 무장봉기로 전복해야 할 대상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변하면서 한국 진보와 한국 자주파의 노선과 운동방식도 다양하게 변천해 왔습니다. 1980년대 군사독재 시기에 실제 정권 전복과 무장대중투쟁을 허용하거나 선호하던 시기도 있었으나, 군사독재가 물러나고 초보적 민주주의가 정착한 이후에는 주로 대중투쟁(집회와 시위)과 합법적 진보정당 운동을 통해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정권교체 운동으로 대부분 전환합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2000년대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등의 진보정당 운동입니다.
2000년대 이후 저는 과거 군부독재 시절과 같은 정권 전복과 무장투쟁을 주장하는 세력이나 그룹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2000년대 이후 대다수 한국 진보와 자주파의 정치방식은 ‘정권 전복’이 아니라 ‘진보적 정권교체’입니다. 중도 보수적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이고 자주적 정권으로 정권 교체하여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노동법을 전면 개정하며 미국에 당당하게 내정간섭 중지를 관철하고 작전지휘권을 즉각 반환시키는 것입니다. 또 남북이 4.27판문점선언과 6.15선언을 이행하여 남북이 연방연합제 방식으로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북한(조선)도 2021년 1월, 제8차 조선노동당 대회에서 당면목표와 남한 관련 규정을 변경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조선노동당 규약은 북에서 가장 권위 있는 최고의 문서입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국가보안법 공소장에 반세기 이상 단골로 등장하던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 표현을 삭제합니다. 대신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발전을 실현하는 것’으로 수정됩니다. 이는 남한사회에 대한 자주화, 민주화 요구는 같지만 과거와 같은 ‘남한 체제 전복’, ‘남쪽 정부의 전면부정’의 방식을 수정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한국자주파 내에는 북과 비공개 교류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강경한 입장도 있고, 북과 비공개 접촉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한국 진보가 이러한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은 역대 정부가 한국 진보와 민간의 정당한 통일운동이 요구하는 북과의 정치적 교류를 계속 차단하고 탄압해왔기 때문입니다. 민족적 과제이자 헌법이 보장하는 평화통일 운동과 남북 정치교류의 권리와 만남을 오로지 정부만 독점하고 나머지는 배제하고 통제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 정권을 포함한 역대 정부는 한 손에는 ‘국가보안법’으로 또 한 손에는 ‘남북교류협력법’으로 교묘하게 민간과 진보 진영의 정당한 통일운동과 정치교류를 허가제로 철저히 통제해 왔습니다. 만약 우리 정부가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평화통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노력과 시도를 한다면 한국 진보는 그를 적극 지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물론 문재인 정부도 북을 통일 대상이 아닌, 외교 대상으로 여기며 그 외교적 성과를 치적으로 삼는 데만 급급합니다. 미국의 한국 정부에 대한 통일문제와 남북교류 내정간섭은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이를 극복할 의지나 계획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정상회담의 외교적 성과와 남북 교류협력에만 관심이 있을 뿐 실질적으로 군사적 긴장을 낮추기 위한 조치도, 평화적 통일방안에 대한 국민적 논의도,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도 전혀 관심이 없는 정부입니다. 평화와 남북관계로 정치 장사를 한다고 봅니다.
다음은 현재 통신기술과 남북 교류 요구의 증가로 국가보안법이 남과 북의 통신과 방송 그리고 만남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환경에 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 민간교류가 20년이 넘어가면서 통일운동과 경제교류 등으로 서로 잘 아는 남과 북의 인사들이 양적으로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또 개인별, 분야별 행사와 소통이 늘어 더는 일방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사회환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통제할 수 없는 교류나 통신이 신고가 없다면 이는 전부 국가보안법이나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어떤 법도 현대 통신기술과 사람들의 소통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로 이미 가고 있습니다. 또 유튜브에서 누구나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자유롭게 볼 수 있습니다. 북의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방송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특별한 암호화 통신이 아니더라도 남과 북, 국제간 비밀 개인 통신을 통제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기술이 전근대적 국가보안법을 일상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시대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공소장에서 언급된 ‘고니시’라는 페루 국적의 정체불명의 사람을 만난 배경에 대해 간단히 서술하려 합니다. 저는 진보 진영에서 공개적으로 어느 정도 알려진 사람입니다. 청년 시절에 미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과 이후 일심회 사건 등으로 알려져 있었고, 2016년 이후에는 인터넷 언론 민플러스의 국제팀장을 맡아 정기적으로 한반도 정세와 국제문제와 관련된 칼럼을 썼는데 이러한 칼럼들이 독자 반향이 좋아 국내외에서 널리 읽히게 되었습니다. 특히 해외에서 통일운동 하시는 해외동포분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 제게 메일을 보내거나 SNS를 통해 접하는 일이 흔하며 그분들과 연대사업을 잘하는 것이 제가 맡은 국제팀장의 업무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고니시라는 이름은 구속영장에서 처음 보았으며 이분도 제 개인 SNS를 통해 연락이 왔고 해외동포인데 나의 글을 잘 읽고 있고 한국에 갈 일이 있는데 가면 만나고 싶다고 했고, 실제로 2017년 4월에 한국에 와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처음 만나 자리를 옮겨 덕수궁에서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날 가장 중요한 대화를 나누었으며 나머지 만남들은 필요 없을 수도 있었던 만남들이었습니다. 고니시라는 사람과 1차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북과 연관이 있다’고 한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상당히 놀랐으며 역으로 이 사람이 공안기관의 프락치가 아닌가를 더 의심하였습니다. 이미 유사한 사건을 경험한 저에게 갑자기 찾아와 북과 연관이 있다니, 놀라고 의심하는 것은 저에겐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가 누구인지부터 명확히 알고 싶었으며, 그 얘기도 직설적으로 전달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에 관해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전달하려는 ‘통신 방법’이라고 얘기했고, 저는 그를 의심하였으나 일단 통신을 통해 그의 신원을 확인하는 선택을 하였고 만약 그가 공안기관의 프락치라는 근거가 발견된다면 대중적으로 폭로할 각오를 동시에 하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그의 정체가 공안기관의 프락치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가 알려준 알 수 없는 대상과 통신을 하였으나 제가 요청한 답신이 오지 않아 통신이 바로 중단되었습니다. 제가 통신을 하지 않자 다시 SNS를 통해 통신을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 와서 몇 차례 정체 확인을 위한 통신을 하였으나 역시 제가 요청한 내용은 실행할 수 없다는 답신이었습니다. 이후 통신은 완전히 중단되었습니다.
경찰이 저의 집에서 압수한 카드리더에 삽입된 SD카드가 ‘비트락커’로 암호화되었다고 하고, 내가 그 암호를 푸는 것을 거부했다고 하는데, 그 SD카드는 시중에서 구입한 보통 저장카드이고 아무런 암호화 기능도 특수기능도 없이 사용하던 평범한 저장장치입니다. 거기에 특수한 기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고니시란 정체불명의 사람을 만나 그가 제시한 방식으로 몇 차례 통신한 적은 있으나 고니시란 사람이 누구인지 통신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이 2년 전에 끝난 사건이 이 사건의 실체입니다.
다음은 이적표현물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쓴 저작물, 출판물들은 ‘이적표현물’이 아니라 ‘통일표현물’입니다. 제가 쓴 책들은 대부분 인터넷 언론매체, 4.27시대연구원등 공개 단체활동의 결과물들입니다. 4.27시대연구원은 통일, 북한 문제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전문 연구위원으로서 저는 매일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구국전선, 조선신보, 북 사회과학원 자료 등을 읽고 분석합니다. 그것이 나의 일이고 직업인 사람입니다. ‘북 바로알기 100문 100답’은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통일부에 신고하고 남북학술교류 차원에서 북과 공개 추진했던 연구원의 사업으로 출판된 책입니다. ‘주체사상 에세이’는 제가 2009년 전주교도소에서 수감 중 집필한 것으로 맑스주의와 주체사상에 대해 제 주관적 견해와 감상을 기술한 책입니다. 주체사상에 대해 그렇게 나쁘다고 하면서 정작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공안기관도, 학계도, 정치권도 사실 진보진영에도 별로 없어 ‘북 바로알기’ 차원에서 저술한 책입니다.
과연 이 책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할 내용인지에 대해서는 연구자로서 사실 웃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설사 저나 공저자분들이 쓴 내용이 오류나 편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학술비판과 토론의 영역이지 국가와 공안기관이 나서서 법정에 세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책들을 국제학회나 학술지에 보내서 이 내용으로 한국 정부가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했다고 하면, 믿지도 않을 것이며 이 사실을 안다면 국제적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공안기관이 이 책들을 이적표현물로 같이 기소한 이유는, 실제 저의 활동에서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현존하는 명백한 위협이 없을 뿐 아니라 국가기밀, 지령, 정부 전복, 적화통일과 연관된 어떠한 결과물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나와 연관된 출판 저술물들이 북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근거로 연결해 기소한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진보진영에 속한 6월항쟁 세대(또는 586세대)로 여야 정계에 동료들과 지인들이 적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이들과 정치적 연계나 정보 등 무언가를 도모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증거기록으로 증명이 되듯이 저는 제 갈 길을 가면서 근 40년간 같은 주장을 해왔을 뿐입니다. 저의 주장이 북의 주장과 같다고 하는데 저는 20살에 전두환 정권 시절 대학에 들어가 세상에 눈을 뜨고 나라 꼴을 알게 된 이후 다음과 같은 동일한 주장을 하다 세 번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1) 이제는 한국전쟁을 종결하고 남·북·미국은 평화협정을 맺고 외세 미국은 한반도에서 손을 떼고 떠나야 한다.
2) 미국은 한국에 군작전지휘권을 이양하고, 한국에 대한 내정간섭을 중단해야 한다.
3) 연방제 또는 연합연방제가 유일한 한반도 평화통일 방안이므로 6.15선언과 4.27판문점 선언 이행으로 나라를 빨리 통일시켜야 한다.
4) 사상의 자유와 자유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노동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
저는 남한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고 북보다 경제력이 30배 이상 앞선 선진국이고 군사력도 월등하다고 주장하면서 왜 한국에 외국군대 주한미군이 필요하며 왜 한국은 자주국방을 못 하며 미국 없이는 당장 망하는 나라로 선전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국방주권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 요소이고 이것을 남에게 의존하는 나라는 필연적으로 그 나라에 종속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의 진리입니다. 저는 한국 보수가 정상이라면, 매국노가 아니라면 평화협정과 미군 철수 자주국방을 주장하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맹신은 시대에 맞지 않는 망국의 길이며 이제는 남북 민족공조로 전환해서 진정한 평화와 연방제에 기반한 선진대국으로 가야 청년세대와 우리 민족 전체가 번영한다고 생각합니다.
검찰 증거기록에 따르면 고니시라는 사람이 나를 만난 이후 국정원은 고니시와 나를 양방향으로 추적하면서 수사하였습니다. 고니시를 추적하며 그의 과거 페루 행적, 필리핀, 중국까지 가서 직접 수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망과 관련해서 간단한 인터넷 자살 기사 하나로 고니시는 사라져버립니다. 고니시 부부가 자살했다면 왜 자살했는지, 실제 자살인지 타살인지, 시신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아무런 확인 수사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실제 수사기록은 있으나 증거기록에서 누락시켰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고니시가 북한사람이라는 증거는 30여 년 전 중남미에서 북한 공작원으로 일했다는 전향 간첩 조OO이라는 사람의 30여 년 전 짧은 만남의 기억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고니시라는 사람이 내게 한 말은 자신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하였으며, 실제 일본어 어투가 매우 강해 저는 처음 보는 순간 재일동포로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아직도 고니시라는 사라진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몇 가지 가설로 추정할 뿐입니다. 국정원이 4년간 방대한 인력으로 수사했으나 정황과 추정뿐 실체가 다른 사건을 검찰에 넘겼습니다. 검찰은 깊은 검토 없이 기소하고, 기소하면 재판부는 유리한 판결을 하는 국가보안법 재판 관행에 당 재판부는 공정한 심리로 숙고해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저는 이 재판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아니라 사상의 자유와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헌법의 평화통일 가치를 지키는가 아닌가를 판별하는 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보안법은 응당 폐지되어야 하지만 폐지 전이라도 정당한 진보활동과 학술활동의 자유, 통일운동의 자유를 유린하고 탄압하는 국가보안법 남용을 재판부에서 공정한 심리로 막아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제가 이번 구속기간에 써서 언론매체에 기고한 옥중기고문 6편도 이 모두 진술에 추가하여 재판부에 제출합니다.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가보안법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