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주변의 누군가와 정기적으로 싸우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런 이들은 대체로 싸울 거리를 만들기 위해 시비를 걸거나 별문제 거리가 되지 않는 일들을 구실 삼아 자신과 남을 괴롭힙니다. 재력가의 갑질도 나름 규칙성을 띠고 있고, 가부장적인 가장들의 가정폭력이나 폭언도 가만히 보면 매우 규칙적이어서 그 시달림을 받는 사람들은 한 번 폭풍우가 몰아치면 어느 정도 잠잠한 시기가 이어질 것을 경험에 근거해 계산해 내곤 합니다.
도대체 자신의 분노를 내버려두거나 오히려 즐기는 것 같은 사람의 심리는 무엇인가, 평화가 불편한 듯 쉽게 폭발하고 비틀어 생각하며 상황을 더 어렵고 힘들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 그런 상황을 즐기는 것인가?
적절한 스트레스가 건강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동물을 사육할 때 어항이나 우리에 적당히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정도의 역관계가 형성되면 오히려 개체들이 건강하다는 식의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람의 문명이 자연과 제도의 억압과 한계를 뚫고 진취적으로 진보해왔듯, 개별 인생에서도 자신 혹은 타인과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해 나가며 보람과 기쁨을 습득해 온 과정이 누구에게나 여러 가지 서사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적당 선을 상실한 사회와 사람이 가끔씩 긴장과 충돌을 만들어서 희생양을 찾아 화풀이를 해대는 행위입니다.
꼬투리를 잡고 그것을 일방적인 남 탓으로 매도하며 있는 힘을 다해 화를 내고 나면 갑질을 하는 당사자는 불현듯 속이 후련해지고 삶의 의욕이 넘칩니다. 자신은 다 풀었기 때문에 스스로 뒤끝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의 입장에서 분풀이를 당한 사람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대인기피증이나 공황장애 등 병이 들거나 죽음에까지 이른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버럭 갑질’을 하는 사람에게 습관처럼 남의 트집을 잡고 화를 내는 일은 한시적일지 몰라도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화를 내면 그 화가 간을 친다’고들 어른들은 종종 말씀하셨는데, 이 말은 풀어서 ‘화나는 것을 담아두면 그 화가 간을 상하게 한다(애가 탄다)’라고 이해하는 게 맞습니다. 화가 나는 족족 화를 내고 사는 사람은 그 화로 자기 자신을 다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의 기분을 좋게 한다고 해도 남을 짓밟는 식의 언행을 왜 주기적으로 하는 걸까요?
혹시 화나 싸움도 일종의 중독일까요?
사람의 기질과 행동, 특히 폭력적 언행의 반복과 변화발전에 관한 고민을 하다가 주목한 것이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입니다. 흔히 행복한 순간에 배출된다고 알려진 행복 호르몬인 엔돌핀은 사실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엔돌핀이라는 이름도 ‘몸 안에서 자체 생산되는(내인성) 모르핀endogeneous morphine’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모르핀’이라니! 가장 전통적이고 유서 깊은 마약의 일종, 바로 아편으로 만드는 진통제 맞습니다. 모르핀은 알려진 것처럼 말기 암 환자의 극심한 고통에 쓰는 진통제입니다. 즉각적으로 통증을 차단하고 환각을 일으키는 약물이라, 고통이 극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한적으로 처방되는 중독성 약물입니다. 우리 몸 안에 그런 내인성 모르핀이 있다니 사람의 몸이란 정말 신비롭기 짝이 없습니다. 이 내인성 모르핀, 즉 엔돌핀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엄청나게 행복한 순간에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모르핀이 그렇듯,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 긴장된 상황에서, 작용해 오히려 심신을 이완시키고 행복감을 느끼게 해 몸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강도 높은 운동의 와중에 한계치에 도달했을 때 뜻밖의 희열로 찾아오기도 하고, 극도의 화를 분출하고 난 후의 개운함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고강도의 근육운동에도 분노 폭발에도 중독증이 있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주기적으로 시비를 걸거나 부러 스트레스 상황을 만들어 분노를 쏟아 부어 엔돌핀의 마력에 의존해 행복한 사람이 되는 편이 바람직할까? 인간관계에서 긴장과 화풀이, 짜증을 반복한다면, 별난 성격에 비해 건강은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인간관계 자체는 파탄이 나고 맙니다. 몸은 건강하나 인생 자체는 피폐하고 부실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호르몬은 고맙고 신비로운 힘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호르몬의 작용은 받지만 지배당하지 않는 유일한 생명체, 세계의 주인입니다. 이것을 자각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마찬가지로 남도 귀중한 존재로 인식하고 귀하게 대접할 줄 압니다. 엔돌핀의 존재를 알지만, 자신의 의지에 근거해 낙관을 찾고 눈앞에 있는 난관을 어려움이 아니라 보람으로 알며 극복하는 사람이 엔돌핀의 효력을 가장 긍정적 방향에서 극대화해서 쓸 수 있는 진짜 사람입니다. 스트레스를 남에게 푸는 사람이 많으면 그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입니다. 사회구조적 문제도, 개인사의 문제도 혁신과 창조적 힘으로 승화시켜야 건강 사회도 건강한 개인도 가능합니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나 스트레스는 힘이 됩니다. 가시밭길도 꽃길이 됩니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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