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극장에서만 세 번 보았습니다. 여러 번 보아도 어느새 몰입하게 되고 또 눈물 흘리게 되는 영화. 이런 영화가 또 있을까요?
재일동포를 다룬 많은 영화가 있지만 이렇게 깊은 여운을 주는 영화는 처음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담담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진짜 행복이 무언지, 진짜 보람이 무언지 생각하게 되는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꼭 극장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재특회가 쏟아내는 차별과 혐오의 말에 무방비로 노출되며 영화는 시작합니다. 살아가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온갖 모욕적인 말의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얼굴 벌겋게 분노가 달아오릅니다. 이런 폭력적인 현장을 영상으로나마 생생히 지켜보니, 긴긴 세월 우리 동포들이 어떤 취급을 당하며 일본 땅에서 살아왔던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여전히 식민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은 동포들. 영화는 시작부터 우리를 재일조선인의 사회 속으로 힘껏 잡아당깁니다.
#재일조선인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한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역사의 주인공들입니다.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한 독특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들고 감옥에 갇히는 경험까지 하게 되는 서원수 선생님. 공부 잘한 딸을 평양 김일성 종합대학에 먼저 보내고 일본에서 진 빚들을 갚으면 곧 따라가마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일본에 눌러앉았다는 부만수 선생님. 두 분은 모두 해방 이후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고, 지키고, 가꿔가는데 큰 역할을 하신 1세 동포분들입니다. 그 분들의 노력은 그 이후 수많은 동포들을 조선사람으로 키우는 역할을 합니다. 어린 륭세를 늘 안고 다니는 모습으로 나오는 교토제3초급학교의 교장인 강수향 선생님도 아이들을 당당한 조선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정년을 넘겨가며 자신의 사명을 다합니다.
#나를 찾아서
담담하게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들려주던 영화는 두 번째 장인 ‘나를 찾아서‘에서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립니다. 부드러운 인상의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간첩’이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했다는 대목은 여러 번 봐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증언은 이내 관객들의 눈물을 쏟게 합니다. ‘대한민국은 반공을 국시로 하는 국가이다. 따라서 피고 강종헌과 같은 북한의 간첩은 생존을 허용할 수가 없다.’ “일본 사회의 차별이 싫어서 살아보겠다고 찾아온 조국인데, 생존을 허용할 수가 없다는 말을 들으니 참 서글프더라구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시는 강종헌 선생의 말은 참을 수 없이 많은 눈물을 쏟게 했습니다. 스물넷 푸르른 청춘의 나이에 옥에 갇혀 사형수로 여섯 해, 무기수로 일곱 해를 살고 서른일곱 살이 되어서야 세상에 나오게 된 선생님의 삶. 그 아득한 세월 앞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저 흐르는 눈물을 닦기 바빴습니다.
# 두 개의 조국
세 번째 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분은 단연 김창오 선생입니다. 팬다보러 우에노 공원에 가자는 형의 이끌림에 처음으로 재일동포들의 집회를 가보게 된 청년 김창오는 그날로 조국의 미래를 논하는 재일동포 청년들의 모습에 매료되어 한청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남녘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배우며 조국을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다는 선생님. 그래서 꿈에서도 남녘땅을 가고 싶어 애가 탔다는 선생님은 가지 못하는 남녘땅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조국을 사랑하면 할수록 조국이 멀어지더라.”
선생은 평양에서 열리는 1990년 범민족대회에 참가하게 되면서, 마음속에 그리던 남녘땅만 조국이 아니라 북녘땅도 조국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북녘땅을 처음 밟던 날 비행기 안에서부터 소리 내 엉엉 울었다는 선생님을 따라 관객들도 조용히 흐느낍니다.
유독 동포들에게만 가해지는 가혹한 선택, 늘 남이냐 북이냐 양자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암묵적인 강요 앞에 동포들은 한결같습니다.
“양쪽이요. 둘 다요. 남과 북 한반도 전체가 나의 조국입니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그 말이 남도 북도 아닌 하나 된 조국이 나의 지향입니다라는 동포들의 선언인 것처럼요.
#조선사람으로 살기 위해
네 번째 장에서는 조선사람으로 살기 위해 오늘도 싸우고 있는 동포들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일본에서 조선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건 삶의 모든 순간이 투쟁이 된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를 이어 싸우고 있는 조선학교 학생들의 모습이 전혀 고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활기가 넘치고, 학생들의 얼굴에서 조선 민족의 기개와 긍지가 넘칩니다. 신기하게도 일본 땅에서 투쟁을 이어가는 선생님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합니다. 하고 싶은 운동을 하고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으니 행복하다고 말하는 김창오 선생, 사형을 언도받고 13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나왔지만, 그 시대를 오롯이 배울 수 있어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하는 강종헌 선생. 나의 삶을 평범한 다른 사람의 삶과 바꾸고 싶지 않다는 말씀은 시대적 사명 속에서 참된 삶의 보람을 찾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높은 경지를 느끼게 했습니다.
영화는 재특회의 폭력으로부터 시작했지만 싸우는 자들의 미소를 거쳐 평창 올림픽에서 남북의 하나된 응원으로 막을 내립니다.
시대착오적인 자들의 차별과 혐오, 그리고 시대 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찾은 자들의 높은 자각과 보람. 영화의 마지막에 와선 이 아득한 차이가 참 선명해집니다. 기어이 웃으며 싸워 남북이 하나 될 내일을 만들어낼 사람들,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이 외침은 어쩌면 저 식민지 시기, 일제에 맞섰던 우리 선열들의 투쟁으로부터 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외세에 맞서 싸우며 민족성을 지키고, 그 속에서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았던 값 높은 이들의 삶이 있기에 우리 민족 앞에 찬란한 통일의 내일이 활짝 열리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그리고 동포들은 그 담담한 미소로 말합니다. 우리들은 분단의 가장 큰 피해자이지만, 통일의 가장 큰 은혜를 받을 사람들이라고요. “조국 땅은 70년 전에 해방되었지만 유독 식민지 종주국 일본 땅에 사는 재일동포는 해방되지 못했다, 조국이 통일되어야 재일동포들이 비로소 해방된다”라는 김창오 선생의 말처럼 재일동포들은 통일을 가장 절박한 문제로 받아안고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조국’ 땅에 태어나 ‘분단’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남녘의 우리에게 ‘통일’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려주는 사람들, 한 생을 다 바쳐 통일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려주는 사람들,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는 경지를 70년 동안 삶과 투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 재일조선인. 그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12월 9일 개봉하는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를 통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재일조선인들을 꼭 만나보길 바랍니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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