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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효성은 만 사랑의 시작이자 종착점

황선(평화이음 이사) | 기사입력 2022/01/26 [17:48]

지극한 효성은 만 사랑의 시작이자 종착점

황선(평화이음 이사) | 입력 : 2022/01/26 [17:48]

고개를 넘다

 

지난 12월 중순 경이었습니다. 

 

간 이식이라는 큰 수술을 마친 지 채 두 달이 되지 않은 때라 그가 아직 누워있어 마땅한 환자라고 생각한 나는 우리 집 앞에 거의 다 왔다는 연락을 듣고 뛰어나가면서도 그렇게 씩씩한 사람을 마주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그는 평소보다 많이 홀쭉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습니다. 그의 집부터 우리 집까지 큰 길을 따라 걸으면 3km, 중간에 산을 넘는다고 하기엔 과하지만 몇 십 년 전에도 여우가 출몰했을 법한 제법 깊은 고갯길이 있는 터라, 걷는 것에 재미 들린 사람이 아니고는 모두가 의례히 차를 타고 오가는 길이 있습니다.

 

큰 수술을 한 후라 느릿느릿 움직이긴 했지만, 목소리며 표정은 쾌활 그 자체였습니다. 퇴원 직후 본 모습보다 차도가 굉장했습니다.

 

그는 가방을 내리더니 주섬주섬 예쁜 꾸러미를 꺼냈습니다. 원두커피가 들어있을 것 같던 꾸러미에서 나온 것은 ‘은갈치’였습니다. 잘 다듬어 토막을 낸 은갈치 두 팩.

 

장인어른이 보내주신 거라 했습니다. 큰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인 사위가 걱정되어 보내셨을 그 은빛 물고기를 조금씩 나눠 먹겠다고 꾸러미 꾸러미 나눠 들고 산길을 걸어온 거였습니다.

 

그를 차에 태워 데려다 주면서 고맙다는 말은 얼른 끝내고 끝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았습니다. 나보다 더 잘 할 것을 알면서 몇 번을 당부한 것들을 그대로 반복했습니다.

 

나라면 결심도 실행도 못 했을 일들을 단 몇 개월 만에 해치우고 보란 듯 웃고 있는 사람에게 여전히 감잎차를 먹고, 매실고를 먹고, 잡곡밥에 풍욕을 하루 한 번이라도 해야 한다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고서 돌아오는 내내 또 후회를 했습니다.

 

‘늙었나? 왜 이리 잔소리만 느는가? 이미 그는 험한 고개를 넘어섰는데.’

 

길은 만드는 것

 

권오민. 

 

권오민은 부산 동아대에서 학생운동을 하고 지역에서 성실하게 활동을 이어가는 활동가로 특히 침착하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해서 지역 기자회견이나 각종 행사 사회를 자주 보곤 했습니다. 그가 결혼을 하고 서울로 거처를 옮기게 되자 부산지역 활동가들이 많이들 아쉬워하고 섭섭해 했습니다만, 그 아쉬운 마음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최근 몇 해 서울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도맡아 하는 것을 보니, 그는 난 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질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역할을 맡아도 일신의 계산보다 사업의 의의를 더 깊이 헤아리고, 남보다 먼저 몸을 내대면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성과를 개인의 것이 아니라 집단의 것으로 돌리는 것이 몸에 익어있고, 늘 자신에게 필요한 것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없는지 살핍니다. 

 

2017년 막막했을 사드기지 진격 당시에 그가 주변의 동지들에게 썼던 글의 일부입니다. 

 

사드진격투쟁

 

'현지인들도 들어가는 길이 없다던데'

성주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들었던 말입니다.

사방이 절벽과 산으로 둘러싸인 사드기지

쏟아지는 빗줄기에 앞은 보이지 않고 

미끄러운 돌에 넘어지기를 수차례

우리가 저 벽을 넘을 수 있을까?

끝없이 펼쳐진 이 산을 넘을 수 있을까?

크게 넘어져 다리와 발목을 접지르는 순간

일어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함께 가자고 손잡아주는 동지들 

반드시 저 산을 넘고야 말겠다 반짝이는 눈들.

다시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반드시 저 산을 넘어 가야만 했습니다.

길이 없다면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합니다. 

 

사드기지로 들어가는 길을 만들어 기어이 사드기지 안으로 들어간 청년들 중에 권오민이 있었고, 그들은 오늘까지도 그날의 결행으로 인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극초음속에 궤도와 사거리가 다양한 미사일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어 사드는 이미 무용지물이 되었고, 기지 역시 전쟁 발발시 과녁이 될 뿐임이 그날 그 청년들의 주장대로 명백해졌음에도 아직도 우리 정치권은 박근혜 정부와 오바마 정부의 오판을 바로잡지 않습니다.

 

여튼, 그는 자신의 글에 썼던 대로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로 그 후 요구되는 모든 일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지난 해 초여름 아버지가 간암 확진을 받자마자 그가 간 이식을 결정한 것은 그런 그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 소식에 놀란 주위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별 고민도 없어 보였습니다. 아버지를 살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가능성이 높은 길이라는데, 뭘 고민할 것이 있냐는 투였습니다.

 

그 때의 그는 내게 많은 물음표와 느낌표를 남겼습니다. 

 

‘내 생각과 차이가 있더라도 그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고무하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이식이 아닌 다른 치유방법을 택하기를 계속 바랐습니다. 이식이 불가능하다는 의학적 소견이 나오길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병원의 검사결과도, 가족들도 권오민 동지의 뜻에 완전히 부합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도록 해야 할 일이 많은 권오민 동지가 아닌가. 간을 반 이상이나 공여하고 쉬 피로해지거나, 혹시라도 후유증이 생긴다거나 하면 어쩌나…등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주위에서 왜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는지 답답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 걱정과는 달리 많은 분들이 물심양면으로 응원해 주시는 속에서 권오민 동지와 아버지는 수술을 잘 끝내고 퇴원해 회복에 힘쓰고 있습니다.

 

수술 직후 병원에서 간호하느라 애쓰던 그의 아내 김나현 동지가 틈틈이 전해주는 부자지간이나 고부간의 모습은 그렇게 건강하고 아름다울 수 없었습니다. 

 

이 과정은 나에게 ‘효’란 무엇인가? 나는 어떤 가족, 어떤 동지인가? 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반복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찾은 답이 어떻든 간에 분명한 것은 권오민 동지와 그 부부 그리고 부부의 양가 부모님은 내 수준에서 미치지 못 한 경지에서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섬기고 존경하지 않는 집안에서 이웃과 화목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사람이 나오기 어렵고, 제 부모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남의 부모를 함부로 욕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효’라는 인간 도덕의 기초이자 관계의 근본이 함부로 여겨지는 풍토에서 다른 숱한 관계가 파탄지경으로 흐르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효를 도덕의 근본이자 학문과 인격 수양의 기본으로 여기고 있는데 국가적 차원에서나 지역에서 해마다 효자 효부를 찾아내고 그것을 칭송하기 위해 글과 ‘효자도’같은 그림으로 기록해 둔 것을 보면 그것을 얼마나 중시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부모님께 허벅지 살을 떼어내 드시게 했다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처럼 오늘 병원에서 기꺼이 자신의 일부를 이식해주는 효자들의 사연은 ‘효’가 희미해져 가는 사회에서 찾을 수 있는 미담 중 미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극한 사랑, 믿음

 

권오민 동지와 그 가족은 요 몇 개월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부모 자식 간 사랑 중 가장 높은 단계는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 믿어주는 것, 미래를 낙관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라사랑의 길에도 우국지심을 넘어서는 것이 실천하는 것이고 승리를 낙관해야 실천을 이어갈 수 있듯 말입니다. 

 

물론 이러한 단계가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식이 어떤 상황에서도 난관에 굴하지 않고 이겨낼 것을 믿기까지 과정이 필요합니다.

 

부모의 기질만으로 부모 자식 간에 높은 수준의 믿음이 뿌리내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부모란 기본 자녀를 근심하고 자녀의 일에 가장 먼저 구체적으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녀의 일에 대해서는 세상 어떤 일에서보다 보수적이기 쉽습니다. 

 

그러니 늘 자식문제로 근심이 떠나지 않을 부모님이 자식을 무조건 믿고 따르도록 하기까지 권오민 동지의 노력과 정성이 얼마나 빛났겠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오민이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우리 오민이가 결정했으면 나는 믿는다’ ‘우리 오민이는 절대로 약해지지 않는다. 우리 부자는 더 강해질 것이다’ 

 

아버지께서 이런 생각을 하셨구나, 생각하니 한 편 부끄럽고 한 편 감동이었습니다. 

 

‘마음을 편안히 모신다는 것’이야말로 물질적으로 봉양하는 것이나 사후에 그리워 섬기는 것, 원수를 갚는 것보다 어려운 일인데 권오민 동지를 보니 이미 부모님께서 아들 부부를 생각하면 의지가 되고 마음이 편하신 듯 해 그 경지에 이르렀구나 여겨졌습니다. 

 

나이 오십이 되도록 일가친지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나로서는 삶의 태도와 인생관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권오민 동지를 보면 따뜻합니다. 계산하지 않고 사랑과 헌신이 생활이 되어있는 사람에게서나 풍겨 나오는 여유가 느껴집니다. 

 

사실 큰 수술 뒤에 건강을 회복하고 복귀하기까지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릴 것이라 여기기도 했고, 아무리 재생이 빠른 기관이라지만 상당부분을 잘라낸 간 때문에 쉬 피로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주제넘은 생각은 할 필요도 없지 싶습니다.

 

지극한 효성은 만 사랑의 시작이자 종착점. 

 

‘저 사람은 효자다, 동지들과 동포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기로 인해 걱정하지 않도록 부지런히 건강해 질 것이다.’ 

 

그런 믿음이 제 속에서도 넘쳐났습니다. 

 

나날이 건강해진 권오민 동지가 우리를 향해 더 씩씩하게 걸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처럼 힘을 내어 권오민을 마중합시다. 

 

저도 힘을 내겠습니다. 긍정의 힘으로 커지는 것이 사랑이고, 그런 사랑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는 것을 권오민 동지로 인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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