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지금] 역사를 바로 세우는 러시아

이인선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2/02/03 [09:55]

[러시아는 지금] 역사를 바로 세우는 러시아

이인선 객원기자 | 입력 : 2022/02/03 [09:55]

▲ 2021년 12월 28일 소위 인권단체라 불리는 ‘메모리알 인터내셔널’ 해산 결정을 내리는 러시아 대법원.  

 

러시아 대법원은 2021년 12월 28일 소위 인권단체라 불리는 ‘메모리알 인터내셔널’(이하 ‘메모리알’)과 57개 지역 지부에 해산 명령을 내렸다. 이어 러시아 모스크바시 법원도 2021년 12월 29일 모스크바시에 있는 메모리알 산하 조직인 ‘메모리알 인권센터’에 대해 해산 판결을 내렸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판결의 이면에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국가적 탄압에 대한 기억을 삭제하려는 러시아 정부의 의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의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대법원 결정이 난 2021년 12월 28일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러시아 대법원의 메모리알 강제 해산 결정을 규탄한다며 인권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도 메모리알 해산을 언론과 결사의 자유에 대한 직접적 침해라고 규정했다.

 

마치 이러한 흐름에서 보면 러시아가 인권단체를 탄압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메모리알 해산 결정이 어떠한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에 이번 글에서는 메모리알 해산 결정의 배경과 결정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반체제 외국계 대리인 단체 메모리알

 

메모리알은 소련 핵물리학자이자 1975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안드레이 사하로프 등 반체제 인사들이 1989년 역사 교육 단체로 설립한 곳으로 사하로프는 첫 의장이었다. 이 단체는 소련과 1991년 이후 러시아의 정치적 탄압을 연구·기록한다는 명목으로 러시아 57개 지부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라트비아, 조지아, 폴란드, 체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벨기에 등에도 지부를 두고 러시아와 구소련 국가들의 인권을 흠잡아 왔다. 

 

이번 결정에 적용된 ‘외국계 대리인 법’은 러시아 정부가 외세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2012년 도입한 법이다. 해당 법에 따르면 해외 기금 지원을 받는 비영리 기구(NGO)나 활동가·언론이 정치적 활동을 하려면 ▲6개월마다 활동 내용 등을 당국에 보고 ▲출판물 및 트위터 같은 사회관계망(SNS) 게시물에 외국계 대리인임을 표시 등을 의무로 하고 있다. 러시아 법무부는 2016년 해당 법을 근거로 메모리알과 메모리알 인권센터를 외국계 대리인 단체로 지정했고 현재 100여 개 단체와 언론사, 개인 활동가 등이 외국계 대리인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메모리알과 메모리알 인권센터는 외국계 대리인 법을 불법으로 주장하며 외국계 대리인 표시 의무를 계속 어겨왔고 외국계 대리인 법 위반죄로 2016년부터 19번이나 과징금 처벌을 받았다. 이에 검찰총장은 2021년 11월 11일 대법원에 메모리알 해산 소송을 제기했고, 다음날에는 모스크바 검찰청이 모스크바시 법원에 메모리알 인권센터 해산을 요구했다.

 

알렉세이 자퍄로프 검사는 대법원 공판에서 “국가의 양심이라고 주장하는 조직이 자체 출판물에 외국계 대리인임을 표시하도록 한 법률을 무시하면서 불법이라는 양심의 대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라며 소위 가장 오래된 인권단체가 이를 인정하지 않는 건 “법에 대한 조롱”이라고 공소사실을 밝혔다. 이어 자퍄로프 검사는 메모리알이 소련에 대한 허위 이미지를 조장하고 대조국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왜곡하며 나치 범죄자들을 복권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퍄로프 검사는 메모리알이 20세기 정치적 탄압을 주제로 추측성 글들을 쓰면서 소련을 테러 국가라는 잘못된 이미지로 인식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퍄로프 검사는 메모리알이 주장하는 스탈린 서기장 시기 희생자 중에 소련 시민의 피를 묻힌 나치 범죄자들도 대다수 포함되어 있다며 “이것이 대조국전쟁 승자의 후손인 우리가 조국의 반역자들과 나치 협력자들을 복권하려는 시도를 막아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후 대법원은 2021년 12월 28일 메모리알을 반복적인 외국계 대리인 법 위반을 근거로 해산 명령을 내렸고, 다음날 모스크바시 법원도 메모리알 인권센터가 외국계 대리인 법을 여러 차례 위반했고 출판물을 통해 테러 활동과 극단주의 행동을 정당화했다며 해산 명령 이유로 밝혔다.

 

역사 왜곡 시도를 막으려는 러시아

 

▲ 러시아 대법원의 결정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21년 5월 대조국전쟁 승전 기념행사에서 “배타적이고 망상적 이론에 사로잡힌 나치 이데올로기에서 나온 것들을 다시 적용하려는 시도가 있다”라며 자국 내 극단주의자들과 서방 국가들에 날을 세운 듯한 발언을 한 바 있다.

 

러시아는 1812년 모스크바를 침공했던 나폴레옹과의 전쟁을 ‘조국전쟁’, 나치 독일과의 전쟁을 ‘대조국전쟁’이라고 부르며 민족적 자긍심의 근거로 삼고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인뿐 아니라 전 국민이 하나가 돼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승리한 전쟁이란 의미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의회 승인을 거친 ‘1941~1945년 대조국전쟁 승리 기념법’ 개정안을 2021년 7월 1일 최종 서명해 해당 법안을 발효했다. 해당 법안 제안자들은 “새 법률이 대조국전쟁에 관한 역사적 진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자들을 차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해당 법안은 소련 지도부나 소련군 지도부의 목표·결정·행동 등을 나치 독일이나 유럽 동맹국(이탈리아, 일본 등)과 공개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나치 격퇴에서 소련이 한 결정적 역할과 유럽 국가들이 나치 압제에서 해방되는 과정에서 소련이 한 역할을 부정하는 행위도 금지하고 있다.

 

법률 설명문은 “최근 들어 언론, 심지어 러시아 언론에서도 대조국전쟁 당시 소련 지도부와 소련군 지도부의 목표·결정·행동들을 나치 독일 지도부나 나치군의 목표·결정·행동들과 동일시하는 근거 없는 비하성 발언들이 게재되거나 방영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설명문은 “조국(러시아)의 수호자나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행동과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2차대전 전범 재판) 판결에 따라 범죄자로 인정된 자들의 행동을 혼동하거나 동일시하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당시 소련 지도부를 이끈 스탈린 서기장은 독일군의 소련 침공 10여 일 뒤인 1941년 7월 3일 대국민 라디오 연설에서 “이것은 보통 전쟁이 아니라 총력전, 전체 소련 인민의 전쟁이다. 소련의 자유냐, 독일 지배하의 예속이냐를 선택해야 한다”라고 애국심에 호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스탈린 서기장 격하 운동과 냉전 이데올로기로 인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역할과 공헌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러시아 내에서는 스탈린 서기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대두되고 있다.

 

2021년 5월 전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센터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56%가 ‘스탈린 서기장은 위대한 지도자였다’라고 답했고 14%만 반대 의견을 보였다. 또한 같은 시기 다른 조사에서는 75%가 스탈린 흉상 설치를 찬성했고 60%는 스탈린 기념관 건립도 찬성했다. 그리고 찬성자들의 35%는 ‘아이들이 알아야 하는 우리 역사이자 역사 보전을 위해서’라고 답했고 22%는 ‘스탈린 서기장이 위대한 사람이자 지도자로 인민의 아버지였고 영웅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특히 주목해볼 점은 러시아 사람들이 2012년부터 러시아 역사상 가장 저명한 인물 1위로 스탈린 서기장을 뽑았다는 점이다.

 

물론 스탈린 서기장의 부족점도 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부각해 알리겠다는 명목으로 메모리알과 같은 단체들이 세계 각지에 등장했다. 그런데도 러시아에서 스탈린 서기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푸틴 정부와 함께 국민이 더 이상의 역사 왜곡을 막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노경덕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한 강의에서 1990년 이전 미국 주류학계 등에서 스탈린 서기장 시대의 억압적 모습을 강조하면서 굴라크(통합국가정치보안부 교정노동수용소)나 숙청을 부각한 주장은 문서적 근거가 빈약했다며 “1990년 이후 소련의 문서고가 개방되면서 스탈린 서기장 시대를 보는 시각이 크게 달라졌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스탈린 서기장 시대 억압과 관련한 대다수 주장은 소련에서 도망 나온 사람들과의 인터뷰나 일부 출판된 자료만을 가지고 연구했기에 허구적인 것이 많다고 한다.

 

인민위원회 평의회 주석이자 외무인민위원이었던 몰로토프는 『몰로토프 회고록』에서 스탈린 서기장이 집권하던 1930년대를 돌아보며 “그(스탈린 서기장)에게 과오가 있지만, 그보다 더 적게 과오를 범한 사람은 없었다. 당시 지도부에 내재했던 그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때 제기됐던 과제들을 해결한 유일한 인물이 스탈린 서기장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몰로토프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스탈린이 완수한 일과 전반적인 맥락을 보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보이는 과오만 들추면서 날밤을 새우고 있다며 “격하 운동을 주도한 이들은 스탈린의 과오를 바로잡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과오를 이용해 당의 노선을 훼손했다”라고 강조했다.

 

이외 스탈린 서기장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이전에 쓴 글로 갈음한다. ([러시아 읽기] 5.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 http://www.jajusibo.com/53242)

 

▲ 러시아의 학교에서 진행하는 애국주의 교육 모습.     

 

앞으로도 러시아는 서방의 지원을 받는 이들을 통한 역사 왜곡을 막고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많은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대표적으로 2021년에는 애국 교육 프로그램에 1억 8,50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해 8세 미만 어린이 60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러시아의 국가 이념을 조국의 발전에 헌신하는 애국심이라고 말한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국민이 이번 메모리알 해산 결정을 계기로 러시아의 역사 바로 세우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보자.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