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 교수 “철마를 타고 인도까지 가는 게 제 궁극적인 목표”

신은섭 통신원 | 기사입력 2022/02/22 [11:42]

이병진 교수 “철마를 타고 인도까지 가는 게 제 궁극적인 목표”

신은섭 통신원 | 입력 : 2022/02/22 [11:42]

자주민주평화통일민족위원회(이하 ‘민족위’)가 지난 1월 27일 인도 유학 시절에 북한을 다녀온 이병진 교수와의 대담을 진행했다. 민족위가 진행하는 대담 ‘민족위가 만나다’에서 세 번째로 만난 사람이다. 대담은 유튜브 ‘민족위tv’, ‘백자tv’, ‘주권방송’으로 방송됐다. 

 

▲ 이병진 교수.  © 신은섭 통신원

 

특이한 이력

 

이병진 교수는 이력이 특이한 사람이다. 그중 하나가 인도 델리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이력은 대학교 2학년 때인 인도 유학 시절 북한에 간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아무 일 없다가 갑자기 이명박 정권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8년간 감옥을 살았다. 감옥에서는 알몸검신까지 받는 등 견디기 힘든 모욕적인 생활의 연속이었다. 대담에서는 ‘알몸검신’ 이라는 충격적이고도 반인권적인 소식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이창기 자주민보(현 ‘자주시보’) 기자와의 인연도 소개되었다.

 

예사롭지 않은 인도 유학 생활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왜 하필 인도였는가? 하는 질문에 이병진 교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 얘기한다. 그는 고등학교 때 근의 공식을 혼자서 증명할 정도로 수학의 관심이 많았다. 없기도 하고 무한이기도 한 0의 개념을 발견한 인도의 관심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고 한다.

 

“뿔이 안 달렸구나. 뿔이 달렸으면 내가 그걸 믿었지.”

 

유학 당시 인도에 북한 유학생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이병진 교수는 거기에서 자연스럽게 북한 사람을 만났다. 북한 사람들은 뿔이 달려있다고 배웠는데 막상 봐보니 뿔이 안 달렸고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어 자연스레 가까워진 것이라 한다. 처음에는 좀 무섭기도 했다던 그에게는 무너진 진실 뒤에 더 빠르게 무엇인가가 채워졌을 것이다. 이병진 교수는 무엇보다 같은 우리말을 쓰는 게 너무 반가웠다고 한다. 당시 인도에는 한국 사람이 많지 않아 일본 사람만 봐도 반가웠다고 하니 가히 짐작이 간다. 같은 우리말을 쓰는 사람에게 느끼는 친숙함과 반가움 덕분에 북한 사람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친해졌다고 한다.

 

삼팔선이 사라지다

 

북한 대학생들과 어울리게 된 이병진 교수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 오랫동안 그어져 있던 삼팔선이 사라졌다고 한다. 누군가로부터 강요된 사실이 아니라 진실에 눈을 뜬 것이다. 이병진 교수는 북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들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 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병진 교수는 자연스럽게 친구 집을 방문하듯 북한 여행을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어린 시절 근의 공식을 스스로 증명하듯이 자기가 직접 북에 가서 북한 사람들이 뿔이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병진 교수는 그렇게 마음먹은 북한 여행을 1993년과 1994년 두 차례 다녀왔다. 당시 한반도 정세는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등 일촉즉발의 나날들이었다. 세계 언론들은 물론이거니와 인도에서도 한반도를 예의주시하고 있었고 한국에서 온 유학생 이병진 교수를 다들 걱정했다고 한다. 이런 전쟁 분위기에 깜짝 놀라 이병진 교수는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전쟁 분위기를 전혀 못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해하기 쉽지 않은 상황들은 이병진 교수에게는 북한 방문을 더욱 부추기는 일이었다. 

 

한국 유학생, 가슴에 북한을 담다

 

이병진 교수는 북한 방문을 처음 마음먹었을 때를 호기로운 모습으로 이야기하였다. 전쟁 분위기로 긴장된 한반도 정세에서 ‘북한이 미국과 싸워봤자 질게 뻔한 데 대화로 해보는 게 어떻겠냐’라고 북한을 타일러 보고 싶었다니 말이다. 인도에서 북한 대학생들과 친해진 이병진 교수에게는 어찌 보면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가서 본 북한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평화를 원하고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고 심지어 북한 사람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전쟁만은 막고 싶어 하더라는 것이다.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것도 평화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모순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전쟁의 원인과 그 뿌리가 되는 한반도 문제의 근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병진 교수는 그 근본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한반도에서 전쟁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들은 이후 이병진 교수의 삶의 방향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어지는 대담에서 이병진 교수가 들려주는 백두산 천지 이야기는 또 다른 북한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백두산 이야기를 비롯한 북한 이야기들은 대담 영상을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지면에는 따로 옮기지 않겠다. 본 방송을 꼭 한 번 보길 추천한다. (https://youtu.be/JQUItmUCE2M)

 

감옥은 나를 거인으로 성장시켰다

 

북한을 다녀온 뒤로도 이병진 교수는 아무 일 없듯 생활을 해나갔다. 정훈장교로 군 생활을 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대학 연구교수가 되었고 승승장구하듯 남부럽지 않은 삶을 이어갔다. 그러다 느닷없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굴레를 쓰고 이명박 정권에 의해 간첩으로 둔갑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기가 막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알몸검신 등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고 가는 수감생활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고 한다. 삶의 바닥까지 내려간 그는 8년 동안 감옥생활을 통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는 그가 쓴 책 『끝나지 않은 야만 국가보안법』에도 고스란히 잘 나와 있다. 그런 그가 이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희망이었다고 한다. 특히 아이들에게 ‘아빠는 간첩이 아니었어’, ‘아빠는 너희를 정말 사랑해’라는 말을 꼭 전하고 죽어야겠다는 간절함은 그 어떤 것보다 힘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시간을 오롯이 견뎌내고 나서야 8년 수감생활을 포함해 ‘자기가 겪은 경험들이 개인 이병진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라며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도 이병진 교수는 기죽지 않고 더욱 밝게 살기 위해 노력했고 미래 세대인 젊은 세대들이 자기와 같은 일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한 일들에 더욱 애써왔다고 한다. 

 

노래 이야기 

 

대담하면서 노래를 두 곡 불렀다. <민족위가 만나다>만의 특별한 순서이기도 하다. 이병진 교수가 고른 노래는 ‘철망 앞에서’와 ‘가자 철마야’였다. 그는 방송 두 시간여 전부터 와서 노래 연습을 하고 기타에 맞춰볼 정도로 열성을 보였다. 노래를 선택한 사연을 들으니 이해가 되었다. 먼저 부른 ‘철망 앞에서’ 같은 경우에는 이병진 교수가 작년에 DMZ 비무장지대를 한 20일 정도 걸었는데 “너무 좋고 또 아프고 정말 우리 아이들한테는 이 철조망을 좀 걷어내 희망을 주자고” 하면서 노래 소개를 하였다. ‘가자 철마야’ 같은 경우에는 역시나 젊은이들에게 “너희들이 앞으로 가야 할 세상은 원대하고 크다. 가로막힌 철조망을 부수고 나가는 길이 이제 열린다. 포기하지 말고 나아가자!!” 라는 마음으로 곡을 고르고 불렀다.

 

노래를 마치고 나서도 북한 이야기를 정확하게는 북한사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방송 시간을 한참을 넘기고서야 진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방송을 강제(?) 종료하기로 하였다. 이병진 교수는 대담을 마치면서 끝인사를 결의와 당부로 마무리했다.

 

“제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우리 딸 아들 지원이, 인규 아직도 못 만나고 있는데 나중에 너희들이 이 방송을 보면 아빠가 너희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고 또 우리가 조국 통일이 된 그 큰 땅에서 너희가 잘 컸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실 이 마음이 지금 제가 계속 앞으로 활동할 그런 방향이다. 평화와 통일이라고 하는 것은 사상과 학문, 이념을 떠나서 너무너무 절박한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그런 일에 앞장서고 투쟁해야 한다. 학자로서 연구하고 하는 것도 저는 그걸로 다 문제가 해결되는 줄 알았더니 그건 하나의 대안인 거고 그런 것들이 입증되고 실천하는 것은 교수가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어떤 지식인만 하는 게 아니라 모두 함께 하는 것이다. 교수로서 지식인으로서 그러한 것들을 함께 나눠주고 길을 찾는 하나의 어떤 도움자 일 뿐이다. 우리 포기하지 말고 함께 하자. 8년 아무것도 아니다. 국정원이 나를 8년 가둬놨지만, 또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감옥생활) 10년도 20년도 통일만 된다면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자.”

 

 

- 이병진 교수 약력 -

: 인도 델리대학교에서 정치학 전공

: 경희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 취득

: 동명대학교 교양대학 강사

: 통일시대 연구원 운영위원

: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의 정책위 정책위원 및 학술본부 감사

: 최근에는 평화통일 공약 정책 발표의 시민 모임 활동

: 저서 『끝나지 않은 야만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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