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지금] 서방의 대러 제재, 부메랑 돼

이인선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2/04/04 [11:32]

[러시아는 지금] 서방의 대러 제재, 부메랑 돼

이인선 객원기자 | 입력 : 2022/04/04 [11:32]

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을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났다.

 

그간 서방국들과 친서방국들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러시아를 규탄하며 3,000개 이상의 대러 제재를 시행했다.

 

대러 제재 초기에 서방이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퇴출하고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화 6,300억 달러(약 766조 원)를 동결하는 등 공세적인 제재를 가해 루블화 가치가 반 토막이 되고 러시아 경제가 어려움을 겪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자 루블화는 거의 우크라이나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대러 제재의 주요 표적이던 러시아 VTB 은행은 독일인들의 예금 수십억 유로(수조 원)를 유치해 유럽에서 여전히 영업하고 있다.

 

또한 다른 러시아 은행들은 비자, 마스터카드가 신용카드 사업을 러시아에서 철수함에 따라 중국 유니온페이와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더힐’은 2022년 3월 6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입에 대한 응징을 위해 러시아 경제를 파괴하려는 시도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심각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 군사작전이 시작되기 며칠 전, 영국 신문 ‘가디언’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 제재의 효과를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해당 기사는 “서방이 간과한 문제점은 대러 제재에 대가가 따르고 그 대가는 제재를 강화할수록 가격이 오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는 이어 “러시아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제외된다면 서방세계도 피해 볼 것이다. 우선 러시아 가스에 대한 지불 방법에 분명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게다가 전 세계 에너지 비용은 아마도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예측한 대로 석유를 포함한 에너지 비용이 급등했고 러시아에서 석유와 가스 등을 수입해오던 제제 동참국들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미국, 영국과는 달리 대다수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에너지 수입 금지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 국가들의 에너지 수입량에서 러시아는 원유 26.9%(1위), 석탄 46.7%(1위), 천연가스 41.1%(1위)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국 중 특히 독일의 대러 에너지 의존이 높고 러시아와 관계가 비우호적인 편인 동유럽 국가들도 대러 에너지 의존이 높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제 유럽에 열 생산, 이동성, 전기 및 산업용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라고 인정했고 분석 센터와 경제 기관들에서도 러시아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 독일 GDP가 0.1~5.2%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로버트 하베크 독일 경제에너지부 장관도 이에 대해 “독일에 대규모 실업과 빈곤을 초래할 수 있다”라며 러시아 가스와 석유를 지금 금지하는 것은 러시아보다 독일에 피해를 준다고 밝혔다.

 

하베크 장관은 2022년 3월 30일 천연가스 보급 문제에 대한 1단계 조기경보를 발동한다며 소비자들에게 에너지를 절약하라고 당부했다.

 

모니카 슈니처 독일 정부 산하 경제개발위원회 자문위원도 2022년 3월 30일 러시아 에너지 공급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전력 소비를 줄여달라고 호소했다.

 

젬 외즈데미르 독일 식품농업부 장관은 4월 1일 고속도로에서 저속으로 운전하면 많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며 자가용이 아닌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가계, 기업, 농어촌이 대러 제재로 인한 경제적 여파에 대처할 수 있도록 관련 조치를 시급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장 카스텍스 프랑스 총리는 2022년 3월 11일 정부가 손실을 메우기 위해 가스·전기 요금 인상 비용의 절반 이상을 부담하고 어려움에 직면한 기업들은 세금 납부를 연기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조치에 따르면 2022년 4월 1일부터 4개월간 천연가스를 이용하는 차일수록 리터당 15센트 할인하는 계획도 있다.

 

카를 네함머 오스트리아 총리는 2022년 3월 31일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필요는 있지만,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또한 영국 정부의 생각과 달리 영국 국민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영국 체셔군 콩글턴에 있는 테스코 가게 근처에서 촬영된 동영상이 SNS에서 화제가 되었다. 해당 영상은 휘발유와 경유의 급격한 가격 인상으로 고객들이 계속해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이어 가정용 전기 요금도 오르는 시기에 나온 것이다.

 

영상에는 급등하는 휘발유 가격으로 구매가 어려운 한 남성이 식물성 기름을 차에 붓고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해당 영상을 본 한 주민은 “구식 디젤 엔진이 아닌 이상 자동차나 밴에 식물성 기름을 넣지 마라. 당신은 당신의 엔진을 망치는 중이고 그 기름은 디젤 펌프를 폭파할 것이다. 특히 휘발유 자동차에 붓지 말라”라고 댓글을 달기도 했다.

 

3월 16일 기준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654파운드(약 2,642원)로 최고치를 경신했고 약 2주 만에 리터당 약 14펜스(약 22원)가 오른 것이었다. 경유 가격은 같은 기간 동안 리터당 약 21펜스(약 33원) 올라 1.7676파운드(약 2,824원)로 증가했다.

 

로버트 할폰 영국 하원 교육특별위원회 위원장은 2022년 3월 17일 하원 연설에서 “우리는 부모가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 줄 여력이 없고 근로자가 차를 몰고 출근할 수 없어 집에 있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며 유류 관세라도 인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휘발유 소매상 협회도 영국 당국에 다른 유럽국들의 사례를 따르거나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유류 관세 인하를 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2년 3월 23일 항공사, 자동차 제조사, 관광업 등 유럽 내 수천 개 회사가 대러 제재로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며 정부 지원 규제를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유럽연합 내 각국 정부는 도움이 필요한 기업에 최대 40만 유로의 일반 보조금을 지원하고 농업·어업·양식업종에는 최대 3만 5,000유로(약 4,700만 원)를 지원하며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에는 정부가 대출 보증을 해주기로 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산업군에 속한 기업에는 에너지 비용의 최대 30%를 국고 보조금으로 지원할 수 있다. 이 조치는 알루미늄과 금속, 유리 섬유, 펄프, 비료, 수소, 기타 화학물질 제조업체 등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기업에 적용된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부집행위원장은 2022년 3월 23일 성명을 통해 “대러 제재는 유럽 경제에도 영향을 주며 앞으로 몇 달 동안 계속될 것”이라며 “우리는 이번 전쟁의 경제적 영향을 완화하고 심각한 피해를 보는 기업과 산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유럽연합 주요국들조차 제재를 감행하면서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다른 국가라고 다르지 않음은 분명하다.

 

러시아 원유 공급 차질 우려에 따른 원유 가격의 급등에 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한 품목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원자재(팔라듐, 니켈, 알루미늄 등) 및 곡물(밀, 옥수수 등) 가격도 올라가고 있다.

 

에너지에 대한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 한국의 2020년 에너지 수입량에서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석유제품인 나프타의 경우 23.4%로 1위이며, 원유 6.4%(4위), 천연가스 6.7%(6위), 유연탄 16.3%(2위) 등이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기업들이 무역보험, 공급선 다변화, 물류비 지원과 신속한 정보 제공 등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소비자들도 이런 비상 상황에서 자동차 운행을 줄이고 난방온도를 낮추는 등 에너지 절감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러 제재를 강행하기 전부터 나오던 우려가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오히려 대러 제재는 부메랑이 되어 제재동참국들 국민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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