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서방의 경제 제재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등에 맞서 천연가스 공급 중단을 시작했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은 서방의 태도에 따른 예상된 결과였으나 유럽 국가들은 전전긍긍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 군사작전이 시작되기 며칠 전, 영국 신문 ‘가디언’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 제재의 효과를 분석하는 기사를 실으며 유럽 국가들의 우려를 드러냈다.
해당 기사는 “서방이 간과한 문제점은 대러 제재에 대가가 따르고 그 대가는 제재를 강화할수록 가격이 오른다는 것”이라며 “러시아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제외된다면 서방세계도 피해 볼 것이다. 우선 러시아 가스에 대한 지불 방법에 분명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게다가 전 세계 에너지 비용은 아마도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연합 국가들의 에너지 수입량에서 러시아는 원유 26.9%(1위), 석탄 46.7%(1위), 천연가스 41.1%(1위)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국 중 특히 독일의 대러 에너지 의존이 높고 러시아와 관계가 비우호적인 편인 동유럽 국가들도 대러 에너지 의존이 높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31일 러시아가 지정한 ‘비우호 국가’의 경우 러시아산 가스를 공급받을 때 루블화로 결제하도록 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러시아가 지정한 ‘비우호 국가’는 대러 경제제재에 동참한 나라들인 유럽연합 회원국과 미국, 영국, 한국, 일본 등이다.
푸틴 대통령은 당시 “우리는 이런 (비우호) 국가들 계약자들에게 분명하고 투명한 제도를 제안한다. 러시아산 가스를 구매하려면 러시아 은행에 루블화 계좌를 열어야 한다. 4월 1일부터 이 계좌를 통해 가스가 공급되고 대금이 지급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이런 (루블화) 결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이런 구매자에 대해 불이행(가스 공급 중단)을 고려할 수 있다. 아무도 우리에게 공짜로 무엇을 팔게 할 수 없다. 우리는 자선기관이 아니다. (루블화로 지불하지 않으면) 기존 계약은 중단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유럽연합 국가들은 계약 위반이라며 반발했지만 자업자득임은 분명하다.
사실상 대러 제재로 러시아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제외되고 갖가지 경제적 압박을 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 은행들은 러시아에 달러와 유로를 교환해주지 않으니 거래에 지장이 없는 루블화를 결제 수단으로 지정한 것이다.
또한 거래 방식도 유럽 국가들의 반발이 무색하게 그다지 부담되지 않는 방식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전에는 러시아 가스 유럽 판매 대금 60%가 유로로, 나머지는 달러로 결제되었다.
러시아는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이 세운 은행 ‘가즈프롬방크’에 특별 계좌(일명 ‘K 계좌’)를 만들어 가스 구매자들이 대금을 지급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이 계좌에 유로로 대금을 지급하면 루블화로 자동 환전돼 가스 대금이 결제되는 방식이다.
이번 가스 공급 중단 조치는 4월 27일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대해 이뤄졌는데 이는 두 나라가 가스 수입 대금을 러시아 루블화로 결제해야 한다는 러시아의 요구를 무시하고 가스 대금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스프롬은 4월 27일 “4월 1일 이후 공급되는 가스 대금 지급은 (러시아가 지정한) 새로운 계좌를 통해 루블화로 이루어져야 했지만 26일까지 폴란드 가스회사 ‘PGNiG’와 불가리아 가스회사 ‘불가르가스’로부터 4월분 가스 공급 대금을 루블화로 받지 못했다”라면서 공급 중단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두 나라가 미국을 등에 업고 우크라이나 사태에 적극 개입하는 나라들인 것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폴란드는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무기의 통로로 폴란드 정부가 직접 우크라이나군에 탱크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두 나라는 이번 조치를 두고 “대체 공급원을 찾을 예정이다”, “공급처 다양화를 위해 준비해왔기 때문에 가정에는 가스가 부족하지 않을 것” 등 괜찮다는 식의 말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폴란드는 연간 약 90억㎥의 가스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이는 폴란드 가스 수요의 45%에 해당한다. 폴란드에 수입되는 러시아 가스는 벨라루스를 거쳐서, 폴란드, 독일까지 이어지는 야말 가스관을 통해 들어온다.
불가리아는 소비되는 가스의 9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한편 유럽 일부 기업들과 유럽 국가들은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유럽 기업 4곳이 이미 루블화로 러시아 국영가스업체 가즈프롬에 대금을 지불했고 최소 10곳이 넘는 유럽 기업이 루블화 결제를 위해 가즈프롬방크 계좌를 열었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경제장관은 4월 27일 러시아의 루블화 결제 요구에 응할 수 있다며 “지불은 유로화로 하고 나서 가즈프롬방크에 의해 소위 케이(K) 계좌로 이체될 것이다. 이는 제재와 양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에너지기업 우니퍼는 이날 성명에서 러시아산 가스 대금 지급 방식과 관련해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 경제에 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EU 제재를 준수하면서 결제 방식을 바꿀 수 있다”라며 루블화 지불 가능성을 시사했다.
독일 신문 라이니쉐포스트에 따르면 우니퍼는 ‘유럽 소재 러시아 은행이 아닌, 러시아 현지 은행에 유로로 지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에너지기업 OMV도 이날 “우리는 지불 방법들에 관한 가즈프롬의 요구를 유럽연합의 제재 하에서 분석하고 있고 제재에 순응하는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다”라며 러시아의 요구에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헝가리, 슬로바키아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가스회사 에니(ENI)도 러시아의 요구대로 루블화 계좌 개설을 고려하고 있다.
가즈프롬에 따르면 폴란드도 독일로부터 러시아 가스를 역수입하고 있다고 한다.
가스프롬은 4월 28일 보도문에서 “직접 공급이 중단된 후에도 폴란드는 러시아 가스를 구매하고 있다”라면서 “(러시아 가스의 독일 수출을 위한) 야말-유럽 가스관을 통해 독일에서 역수입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가스프롬은 폴란드의 역수입 물량은 하루 약 3,000만㎥ 정도라면서 이전에 폴란드가 가스프롬과 계약에 따라 직접 수입한 물량과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자 유럽연합과 미국도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러시아가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천연가스 공급을 전격 중단하자 유럽연합은 루블화로 러시아산 가스값을 지불하지 말라고 회원국에 권고했으나 앞서 설명한 대로 이미 계좌를 개설하고 대금을 지불한 경우가 있어 혼란만 가중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이 같은 유럽연합의 권고는 너무 모호하다는 게 상당수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지적이다.
미국은 기업 2곳에 하루 5억 세제곱피트(1,415만㎥)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을 추가로 허용하기로 했다며 자체 수출을 늘리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비용이 문제다. 가스관으로 들어오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대신 전용 선박과 터미널이 필요한 LNG를 대체 수입하면 단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서방의 대러 제재가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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