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를 불과 이틀 남겨두고 더불어민주당의 추락이 심상치 않다.
5월 첫째 주까지만 해도 국힘당과 엎치락뒤치락하던 민주당 지지율이 둘째 주부터 급락하더니 셋째 주가 되자 20%대까지 떨어졌다. (한국갤럽 기준, 이 기사에 나오는 여론조사 정보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무난한 승리를 점치던 김동연 경기도지사 후보도 김은혜 국힘당 후보와 초박빙에 들어갔으며, 열세 속에서도 격차를 줄이고 있던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도 다시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말았다.
이재명 후보마저
가장 충격을 준 건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다.
출마 당시만 해도 당연히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이를 뒤집고 국힘당 윤형선 후보와 초접전을 벌이는가 하면 아예 역전된 결과까지 나왔다.
처음 파장을 일으킨 여론조사는 STI가 19~20일 자체 조사한 여론조사로 윤형선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49.5% 대 45.8%로 앞지른 결과가 충격을 주었다.
특히 놀라운 점은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52.4%(윤석열은 43.9%)로 더 지지했던 50대가 이번에는 윤형선 후보를 49.3%(이재명은 47.4%)로 더 지지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핵심 지지층이 대거 떨어져 나갔다고 볼 수 있다.
대체 이재명 후보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론조사 시작일인 19일 아침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이재명 후보는 진행자가 한덕수 총리 후보 인준에 대한 입장을 묻자 “(한 후보자는) 국민 눈높이에서 보면 부적격하다”라면서도 “지금은 대통령이 첫 출발을 하며 새 진용을 준비하는 단계”라고 거듭 강조했다.
진행자가 한 후보자를 인준해야 한다는 뜻이냐고 묻자 이재명 후보는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고, 그런 점도 조금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라고 모호하게 답했다.
당시 민주당은 한 후보 인준 부결 입장이었는데 이재명 후보의 발언 이후 분위기가 바뀌어 결국 인준해주고 말았다.
이재명 후보는 한 후보가 ‘부적격’이라면서도 윤석열 정권 첫 내각이니 고려해주자는 입장이었는데 이는 원칙을 저버린 것이며 윤석열 적폐 세력을 인정해주자는 주장이었다.
다음 포털의 해당 뉴스 댓글 중에는 “국무총리 자격이 없으면 당연히 부결하면 되는 것이고, 자격이 되면 가결하면 되는 것인데 선량한 국민들은 내팽개치고 오직 다수 의원을 보유한 민주당의 이해득실만 따져 국무총리 인준안을 결정한다는 것은 민주당의 앞날에 날벼락이 다가올 징조이다!!”(조코**, 19일 오전 9시 50분)라는 비판적 목소리도 있었는데 지금 보면 정확한 예언이 된 셈이다.
이재명 후보의 위 발언이 지지율 급락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분명한 건 이재명 후보가 지난 대선 때부터 지지자의 기대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사이다에서 고구마로
원래 이재명 후보의 강점은 이른바 ‘사이다’였다.
주변 눈치 안 보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주장을 직방으로 말하고,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굽히거나 타협하지 않고 거칠게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많은 이들이 지지를 보낸 것이다.
이런 모습은 기존 민주당 주류, 특히 이재명 후보의 경쟁자였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분위기와 정반대라서 더욱 주목받았다.
그런데 대선 후보가 되면서 이재명 후보는 급격히 이낙연 전 대표의 모습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지지자들 내에서는 ‘사이다’가 ‘고구마’가 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는데 선거 막판 이재명 후보는 다시 ‘사이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모습이었을 뿐 지방선거에 뛰어든 후에 보여준 모습은 ‘고구마’ 일색이었다.
이재명 후보는 14일 선거 사무소 개소식에서 “대한민국 지방선거에서 확실하게 이겨야 이재명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대선 패배 후 정치적 재기를 위해 지방선거 승리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윤석열 정권의 정치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힌 게 아닐까 싶다.
이재명 후보는 23일 거리 유세에서도 “이번에 이재명 지면 정치생명 끝장난다, 진짜요”라고 말한 뒤 손으로 자기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끽”이라고 했다.
이러다 보니 이번 지방선거는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정책 이야기도 없고 국민의 삶에 대한 고민도 없는, 그저 당리당략만 남은 선거가 되어버렸다.
이를 두고 모 초선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가의 현실과 시민의 삶을 선거에서 논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 자신의 부끄러운 자기 고백과 비난을 위한 비난만” 난무하는 현실을 개탄하며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그림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인지 아닌지 인정투쟁에나 골몰하는 것이 정치인가”라고 되물었다.
적폐와 ‘잘하기 경쟁’
이재명 후보의 문제는 윤석열 정권을 대하는 입장에서도 드러난다.
이재명 후보는 8일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견제와 균형, ‘잘하기 경쟁’이 가능하도록 심판자가 아닌 일꾼이 필요하다”라고 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10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과 새로운 정부 출범을 축하드린다”라며 “성공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선 협치와 균형이 필수”, “초당적 협치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만들어 달라”, “저와 더불어민주당도 야당으로서 협력할 것은 확실히 협력하고, 견제할 것은 제대로 견제하며 ‘잘하기 경쟁’에 집중하겠다”라고 하였다.
취임도 하기 전부터 집무실 이전 강행, 한동훈 등 부적절한 인사, 공약 파기 등으로 공분을 사다 못해 ‘선제탄핵’ 주장까지 나오는 국민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또 윤석열 정권과 국힘당을 ‘청산해야 할 적폐’로 규정하지 않고 그저 경쟁자로 인정하고 협력도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단순히 ‘분위기 파악’을 못한 정도가 아니라 기본 관점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정도면 박근혜 사면을 주장한 이낙연 전 대표와 다를 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재명의 이낙연화, 이것이 지금의 민주당 위기를 만든 게 아닐까?
이재명 후보의 입장이 이러니 민주당 지도부도 이를 따라가고 있다.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29일 유세에서 “(윤석열 정권이) 올바른 방향으로 잘 갈 수 있게 또 견인도 해줘야 해요”라고 하였다.
586 용퇴론의 배경
최근 민주당 지도부 내분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박지현 비대위원장도 이재명 후보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애초에 박지현 비대위원장은 대선 직후 이재명 후보가 직접 전화해 1시간 동안 비대위 합류를 설득한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재명 후보와 박지현 비대위원장은 지금도 교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박지현 비대위원장이 “민주당을 팬덤 정당이 아니라 대중 정당으로 만들겠다”라며 사과해 당내 큰 파문이 일었을 때 이재명 후보 캠프는 “전적으로 공감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박지현 비대위원장이 586 용퇴론을 거론하자 이재명 후보는 “제가 일선에 나와 있는 책임자라서 그 안에 벌어지는 내용은 잘 모르고 있고, 또 앞뒤 전후 맥락도 모르는 상태에서 말씀드리기가 조금 그렇다”라며 회피했다.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이 자기 당 지도부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내분을 잘 모른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자기는 모르는 일’로 해야 하는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정치 신인인 박지현 비대위원장이 산전수전 다 겪은 당 지도부와 “봉하 다녀와서 느낀 거 없느냐, 노무현 정신 어디 갔냐”, “저를 왜 뽑아서 여기다 앉혀 놓으셨냐”라고 고성을 섞어가며 물러서지 않고 맞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아마도 이재명 후보와 사전 교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추정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재명 후보는 지금 시점에서 왜 586 용퇴론 카드를 꺼냈을까?
이재명 후보가 지방선거 후 당권에 도전하리라는 예상은 누구나 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큰 걸림돌이 지금 민주당 주류를 이루고 있는 586이다.
중앙일보는 25일 자 보도에서 민주당 당직자 말을 인용해 “8월 전당대회는 이재명계와 친문+86그룹의 사생결단식의 승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보면 이재명 후보의 의중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방선거를 앞둔 민주당의 끝없는 추락.
이 중심에는 ‘사이다’에서 ‘고구마’로 변신한 이재명 후보가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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