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 국어로 ‘평화’가 적힌 단일기를 늘 갖고 다니는 정연진 대표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2/07/05 [15:02]

30개 국어로 ‘평화’가 적힌 단일기를 늘 갖고 다니는 정연진 대표

김영란 기자 | 입력 : 2022/07/05 [15:02]

▲ 정연진 AOK 대표가 30개 국어로 '평화'라고 적힌 단일기를 만든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보통 우리가 남과 북을 파랗고 빨갛게 표시하잖아요. 보통 파란색과 빨간색은 이념을 의미하죠. 하얀 한반도에 ‘평화’라는 단어를 30개 국어로 표시했어요. 평화를 원하는 전 세계 시민들과 함께 통일코리아를 만들어 나가자는 뜻이죠. 외국인들도 자국의 말을 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하더라고요.” 

 

정연진 AOK 대표는 지난 6월 30일 진행된 ‘민족위가 만나다’에 19번째 손님으로 출연해 이처럼 말했다. 

 

‘민족위가 만나다’는 자주민주평화통일민족위원회(이하 민족위)가 매주 목요일에 진행하는 대담이다. 

 

AOK는 지난 2013년 서울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동시에 결성된 풀뿌리 통일 운동 단체이다. AOK는 ‘Acton One Korea’의 약자로 ‘하나의 코리아’를 위해 실천, 활동하자는 의미이다. 

 

정연진 대표는 AOK의 창립 과정에 대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통일 운동을 고민하다가 만들었죠. 박근혜 때라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이었어요. 주위에서 ‘조금 기다렸다 남북관계가 풀린 다음에 하자’라는 얘기도 있었죠. 하지만 저는 ‘이런 때일수록 평범한 사람이 참여하는 통일 운동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어요. 당시 동포들 안에서는 통일 운동하면 대단한 운동가나 대단한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저는 이렇게 해서는 절대로 통일이 될 것 같지 않았어요. 마침 페이스북이 인기를 얻었어요. 통일 운동은커녕 시민운동도 별로 안 해본 사람들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으면서 페이스북 그룹 ‘Acton One Korea’ 회원이 약 300명 된 뒤에 서울과 LA에서 동시에 창립식을 했어요”라고 설명했다.

 

AOK 창립 이후 정연진 대표는 전 세계 여성들과 한반도 분단의 문제를 알리고 평화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2015년 ‘위민 크로스 디엠지(DMZ)’에 참여했다. 북한을 도보로 행진하고 판문점을 거쳐 한국으로 오려 했으나 박근혜 정부와 유엔사의 반대로 개성공단이 있는 개성을 통해 한국으로 왔다. 도보가 아닌 버스에 탑승한 채로.  

 

대담을 보면 당시 과정을 상세히 알 수 있다.

 

정연진 대표는 서울대학교 재학 중에 미국으로 갔다. 어떤 계기로 시민운동에 나서게 됐을까. 이에 대해 정연진 대표는 아래처럼 말했다. 

 

“199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에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처음 만들어지고 김학순 할머니가 ‘내가 위안부 피해자다, 일본은 거짓말하지 말라’라고 증언하셨잖아요. 대책기구에서 일하던 분들이 해외에 나와 이 문제를 설명하는 기회가 있었어요. 당시에 미국에서 1년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고 박원순 변호사가 한국의 변호사들과 함께 LA에 왔어요. (설명을 듣는 자리에 갔다가) 위안부 할머님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활동을 시작했죠.”

 

▲ 백자 민족위 상임운영대표와 대담을 나누는 정연진 대표.  © 김영란 기자

 

그 후 정연진 대표는 2005년 일본의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막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이 과정에 대해 “당시에 ‘일본의 과거사 청산을 위한 국제연대협의회’라는 민간단체 협의회가 있었어요.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본 10개 국가의 단체와 미국의 단체가 국제연대협의회를 만들었죠. 국제연대협의회에서 일본의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막기 위해 각 나라에서 서명 운동을 하자고 의결했어요. 그때 정대협이 먼저 서명 운동에 들어갔죠. 저는 LA에서 ‘바른역사정의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인터넷 메일을 이용해 서명 운동을 받았어요. (당시에는 대부분 서명 운동을 종이에 직접 했다) 한 사람이 서명하면 세 명의 친구 이메일을 적어놓는 방법으로 했죠. 한 명이 세 명이 되고 세 명이 아홉 명이 되는 식이었죠”라고 말했다.

 

그러던 중 중국계 미국인이 서명 운동을 빠르게 확산하는 방법을 설계했다고 한다. 100만 명을 목표로 했던 서명 운동에 한 달 반 만에 4천 200만 명이 참여했다. 또한 매일매일 서명 운동 참여자가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세계 여론도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부정적으로 움직였다. 결국은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막아냈다.

 

정연진 대표는 대담 마지막에 “풀뿌리 통일 운동은 건설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현재의 분단 체제를 넘어서 우리 누구나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하나의 조국을 만들어가는 운동이죠. 이 과정에 세대와 세대를 넘어서, 문화와 예술을 비롯해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마음을 한마음으로 모으고 감동과 연대를 만드는 것이 풀뿌리 통일 운동이라고 생각해요”라면서 통일 운동을 더 쉽고 적극적으로 펼치자고 호소했다.

 

그래서인지 정연진 대표는 국내외에서 강연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통일 운동을 하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 문제이다. AOK는 더 많은 시민과 통일 운동을 하기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AOK는 지난 6월 26일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운동 출범식’을 진행했다. 이 출범식에는 한국은 물론 미국, 프랑스, 뉴질랜드, 일본 등 국내외 시민운동단체 대표와 평화통일 운동가가 함께했다.

 

AOK는 “우리가 모두 국가보안법 피해자”라는 구호로 활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런 결심을 반영하듯 정연진 대표는 노래 ‘일어나’를 백자 민족위 상임운영대표와 함께 부르며 대담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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