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윤석열 대통령이 자초한 온갖 논란과 욕설 파문으로 시끄러웠던 해외 순방에서 ‘구걸 외교의 끝판왕’인 한일 정상 간 약식 만남은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있다.
이는 지난 21일(현지 시각) 유엔총회가 진행되던 뉴욕에서 한일정상회담에 떨떠름한 반응을 밝혀온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굳이 찾아간 윤석열 대통령을 두고 나오는 얘기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번 만남이 약식 정상회담이냐, 간단한 이야기가 오간 ‘간담(회)’이냐를 두고 말이 엇갈린다. 한국 대통령실에서는 이번 만남이 2년 9개월 만에 정식으로 열린 공식 정상회담임을 강조했다. 또 약식회담으로 열린 배경과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의 일정이 변경되면서 모든 양자 일정들이 다 헝클어졌다”라고 해명했다. 다소 뜬금없는 해명이다.
반면 일본을 대표하는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가 이번 양국 정상의 만남을 “비공식회담으로 자리매김했다”라고 보도했다. 보수 유력지 요미우리신문은 “징용공(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 해결의 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정상회담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해 정식적인 ‘회담’이 아닌 비공식 ‘간담’”이라고 했다는 일본 정부의 설명을 전했다.
한국은 공식회담이라고 발표했지만 정반대로 일본에서는 비공식회담이라고 못을 박은 것이다.
어째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을까? 이와 관련해 이번 만남 이후 일본에서 어떠한 반응이 나왔는지 자세한 내막을 살펴보자.
“저쪽도 의욕을 보이고 있으니까 어디 한번 잘하는지 지켜보자.”
23일 아사히신문은 한일 정상 간 만남이 끝난 뒤 기시다 총리가 일본 기자들 앞에서 위처럼 말했다고 보도했다. 앞으로 윤 대통령이 일본의 요구를 얼마나 성실히 이행할지 두고 보자는 식의 깔보는 시선이 담겨있다.
신문에 따르면 일본이 계속 거절해도 한국은 여러 차례 ‘기시다 총리를 만나고 싶다’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일본은 ‘자신들이 시간과 장소를 지정해도 괜찮다면 만나 주겠다’라고 했고 한국은 흔쾌히 응했다. 일본은 기시다 총리가 있는 유엔 일본 정부 대표부로 찾아오라고 한국에 통보했다.
일본은 회의공간 한편에 양국의 국기도 걸지 않은 채 의자 몇 개만 부랴부랴 준비했다. 이후 기시다 총리는 자신이 주관한 CTBT(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 우호 모임을 마치고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윤 대통령을 만났다.
신문은 두 정상의 대화 과정에서 기시다 총리는 뚱한 표정으로 별말 없이 앉아있었던 반면 윤 대통령은 열심히 계속 말을 이어가려 했다고 전했다.
당시 만남에 동석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행동을 “단시간에 (만남이) 끝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시간을 길게 하려고 했다”라고 평가했다. 만남에 별 관심이 없는 기시다 총리와 달리 윤 대통령이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는 취지다.
또 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아무것도 성과가 없는 가운데 만나고 싶다고 해서 이쪽은 만나지 않아도 되는데 만났다. 한국은 일본에 빚을 졌다. 당연히 다음에는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만나기 싫었는데 그렇게 부탁해서 만나는 줬으니까 나중에 대가를 내놓으라’는 식의 태도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일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만 할 뿐 자세한 해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애초에 대통령실의 짧은 해명 외에는 한국의 관점에서 그날의 진실을 알 방법이 없다.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의 요구에 따라 한국 기자단에게 만남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이와 관련해 “우리가 일본 측과 합의했던 건, 회담을 하기 (전)까지 보안을 철저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합의를 했었다”라면서 “저희는 그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사전에 기자단 여러분께 공지를 드리지 못했다”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 기자단과 달리 일본 기자단은 자유롭게 취재를 했다는 점에서 판이 일본에 굉장히 유리하게 짜여있었음은 확실해 보인다.
원래 외교 관례상 양국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국기, 자리 배치를 비롯해 기자단이 취재를 어떻게 할지 어떤 내용을 보도할지 등 사전 조율이 철저히 진행된다. 그래야 의전 사고, 상대국의 입맛에 맞게 편파적으로 가공된 왜곡 보도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만남에선 사전 조율 과정이 전혀 없었다. 윤 대통령은 일본 총리와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들, 일본 기자단에 사방팔방 포위된 꼴이었다. 이를 봐도 이번 만남이 철저히 일본의 입맛에 맞게 연출된 비공식회담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리하면 윤 대통령은 아무런 성과 없는 30여 분 만남을 위해 일본의 무례한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굴욕 외교에 앞장선 셈이다.
한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애걸복걸했네. ‘만나줍쇼’ 이게 뭐냐? 이게 외교냐? 구걸이지!”, “세상에나 대통령이 남의 나라 행사장에 찾아가서 악수 사진 찍으려고 했다니 비참한 줄도 모르고 해맑게 웃는 윤석열은 참 행복하겠구나”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누리꾼들의 지적처럼 일방적 구걸 외교로 얻은 건 사진뿐이었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윤 대통령의 활짝 웃는 표정과 기시다 총리의 뚱한 표정이 뚜렷하게 대비된다.
대통령실은 이번 만남을 두고 ’2년 9개월 만에 양국 정상이 만나 한일관계 개선에 공감대를 이뤘다‘라고 했지만 정반대로 역대급 굴욕 외교라는 대망신만 자초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일본이 이번 만남에 응한 대가로 한국에 무엇을 요구할지, 또 윤석열 정권이 얼마나 저자세를 보일지도 심각하게 우려된다.
이번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서 한일 정상 간 30여 분 만남은 ‘48초 대화’, 욕설 파문과 함께 최악의 순간으로 두고두고 기억될 듯하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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