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핵군축 협상은 불가능하다

김민준 기자 | 기사입력 2022/09/25 [09:14]

북미 핵군축 협상은 불가능하다

김민준 기자 | 입력 : 2022/09/25 [09:14]

북한이 9월 8일 ‘선제 핵공격’을 담은 핵무력 정책에 관한 법령을 채택하자 켄 고스 미국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9월 17일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미국에 대해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 협상을 하자는 전략적 제안”이라고 해석했다. 

 

과연 북미 사이에 핵군축 협상이 가능할까? 

 

세계를 상대로 한 눈속임, 전략무기감축협상

 

지금까지 가장 대표적인 핵군축 협상은 미국과 소련 사이에 진행한 전략무기제한협상, 전략무기감축협상이다. 

 

전략무기제한협상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으면서 세계 인류가 핵전쟁 위험을 경고하자 미소 양국이 전략 핵무기를 제한하기 위해 시작했다. 

 

미국 과학자 연맹(FAS)에 따르면 당시 미국은 2만 5,540개, 러시아는 3,346개의 핵탄두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아래 핵탄두 수는 모두 FAS 추산임)

 

이 협상은 1969년 시작해 1972년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체결로 끝났다. 

 

여기서 양국은 어차피 핵무기를 서로 확인할 수는 없으니 겉으로 드러난 미사일 발사대, 잠수함, 폭격기 같은 핵무기 운반수단 수를 더 늘리지 않는 데 집중했다. 

 

양국은 1979년 좀 더 진전된 2차 협정을 체결했다. 

 

▲ 1979년 6월 18일 지미 카터 미 대통령(왼쪽)과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2차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II)에 서명하는 장면.    

 

그러나 1·2차 전략무기제한협정은 엄밀히 말해 핵무기를 줄이는 협정이 아니라 핵무기 운반수단을 동결하는 협정이었다. 

 

그래서 양국은 핵탄두를 계속 생산하면서 미사일 하나에 여러 발의 핵탄두를 집어넣는 다탄두개별유도미사일(MIRV)을 개발하는 식의 편법을 썼다. 

 

그리하여 1990년에 이르러 미소는 각각 2만 1,392개, 3만 2,98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게 된다. 

 

결국 1991년 미소 양국은 본격적인 핵군축 협정인 1차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I)을 체결한다. 

 

▲ 1991년 7월 31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왼쪽)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차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I)에 서명하는 장면.     

 

양국은 2009년 말까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전략폭격기 등 핵무기 운반수단을 1,600개, 핵탄두를 6,000개로 감축하기로 합의한다. 

 

이후 추가 감축 협정 논의도 있었지만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악화하면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러다 START I 효력이 만료된 2010년 미러 양국은 가까스로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을 체결해 2021년까지 핵무기 운반수단과 핵탄두를 각각 700개, 1,550개로 축소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전략무기감축협정에는 중대한 함정이 있다. 

 

핵무기 운반수단과 핵탄두 초과분을 폐기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정확히는 발사 준비(launch-ready) 상태에서 대기 상태로 바꾸는 것이다. 

 

단순히 말해서 실전 배치했던 무기를 창고에 옮겨놓으면 끝이고 유지·보수 작업은 해도 상관없다. 

 

즉, 핵무기를 몇 개 만들든 협정과 무관하며 다만 대통령이 발사 명령을 했을 때 ‘즉시 발사’가 가능한 숫자만 초과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또 전술핵무기, 단거리 핵무기는 제한 대상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2021년 기준 미러 양국의 핵탄두 수는 여전히 3,708개, 4,495개에 이른다. 

 

▲ 핵보유국들의 핵탄두 보유 수.     ©FAS

 

이처럼 황당한 협정을 체결한 이유는 세계적인 핵군축 요구의 눈치를 보면서도 핵무기를 통한 국제 사회 영향력도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가진 국제 사회 영향력은 그만큼 막강하다. 

 

아무튼 핵군축 협상은 이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북미가 얼마씩 핵무기를 폐기해야 공평한가

 

만약 북미가 핵군축 협상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일단 북한에 핵무기가 얼마나 있는지 알아야 얼마나 줄일지 협상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창고를 사찰하겠다고 하면 북한이 수용할 리가 없다. 

 

여기서부터 협상이 막힌다. 

 

다음으로 각자 얼마나 줄일지 협상해야 하는데 이것도 쉽지 않다. 

 

동일 개수만큼 폐기하자고 하면 북한이 합의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북한에 핵무기가 300개가 있다고 가정하면 북한이 핵무기를 전량 폐기해도 미국의 핵탄두는 10% 정도 줄어드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동일 비율만큼 폐기하자고 하면 미국이 합의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에 비해 미국이 훨씬 많은 핵무기를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문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도 논란이 됐다. 

 

2020년 미국과 러시아가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연장 협상을 시작할 때 미국이 중국도 협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푸콩 중국 외교부 군축 국장이 2020년 7월 8일 “미국이 중국 수준으로 내려올 준비가 돼 있다고 하면 중국은 다음 날 기꺼이 참여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라고 하였다. 

 

당시 중국의 핵탄두 수는 320개로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중국의 주장은 미국이 먼저 핵탄두 90%를 폐기해서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 되면 그때부터 핵군축을 논의해보자는 것이다. 

 

이처럼 핵보유 수에서 10배 이상 차이 나는 나라끼리 핵군축 협상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미러 핵군축 협상으로 돌아가 보자. 

 

미국과 러시아가 과감하게 핵무기를 10% 수준으로 낮추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다른 핵보유국들 때문이다. 

 

중국, 프랑스, 영국도 몇백 개 수준이지만 엄연한 핵보유국이며 북한,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다. 

 

이런 다른 핵보유국들보다 우위에 서려면 이들보다 훨씬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 미국 처지에서 중국,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면 100% 핵폐기를 할 수 없으며, 러시아 역시 프랑스, 영국이 핵무기를 가진 이상 100% 핵폐기를 할 수 없다. 

 

따라서 결국 진정한 의미의 핵군축, 핵폐기는 전 세계 핵보유국이 모두 합의하여 동시 이행해야만 가능할 뿐 북미 두 나라만 만나서 협상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북미 핵군축 협상이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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