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198] 시정연설을 통해 본 북한 경제 전망②

김민준 기자 | 기사입력 2022/10/18 [21:53]

[아침햇살198] 시정연설을 통해 본 북한 경제 전망②

김민준 기자 | 입력 : 2022/10/18 [21:53]

(이어서)

 

3. 동서해 대운하 건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나라의 경제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전망적인 사업들을 설계 작전하고 계획적으로, 단계별로 밀고 나가야 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나라의 동서해를 연결하는 대운하 건설을 비롯한 전망적인 경제 사업들에 대한 과학적인 타산과 정확한 추진 계획을 세우며 일단 시작한 다음에는 국가적인 힘을 넣어서 반드시 성공을 안아 와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동서해 대운하’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1) 1950년대부터 나온 동서해 대운하 구상

 

북한이 ‘동서해 대운하’를 처음 구상한 시점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2년 4월 13일 김일성 주석은 김일성종합대학 교직원, 학생 앞에서 한 연설에서 “나는 우리나라 지도를 볼 때마다 대동강 상류와 용흥강(현 금야강) 상류 사이 또는 임진강 상류와 덕지강 상류 사이에 운하를 건설하여 동해와 서해를 연결시킬 수 없겠는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여기에 운하를 건설하여 동서해의 배들이 서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한다면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매우 큰 의의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황진태, 「김정은의 동서해 연결 대운하 구상의 발표배경 및 예상경로 추정」, 통일연구원, 2022.9.30.) 

 

1952년이면 아직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인데도 상당히 구체적인 구상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서해를 운하로 연결하면 정치적으로는 동서 교류를 확대하는 효과가 있고, 경제적으로는 물류 운송과 지역 발전의 효과가 있고, 군사적으로는 군함을 동·서해에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특히 군사적으로 보면 군함이 남해를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문제가 북한 해군의 커다란 약점이 되고 있었다. 지금도 서해에 있는 군함을 동해로, 혹은 그 반대로 옮기고 싶어도 마음대로 옮길 수 없는 게 북한 해군의 작전에는 큰 제약이 된다. 

 

1960년대에도 운하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1968년 7월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육해운부문 책임일꾼과 한 담화에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강하천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수상운수를 발전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수상운수는 철도나 자동차운수에 비하여 매우 경제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와 강이 없는 어떤 나라에서는 일부러 운하를 건설하여 수상운수를 발전시키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황진태, 앞의 글)

 

운하 건설을 직접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상운수와 철도, 자동차운수에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수상운수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강이나 바다가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비용이 가장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고대부터 지금까지도 운하 건설을 선호하는 것이다. 

 

1980년대에도 대운하 구상이 나왔다. 1981년 10월 5일 김일성 주석은 노동당 중앙위 6기 4차 전원회의 연설에서 “남포갑문(현 서해갑문)이 건설되면 대동강 하류지대의 공업용수와 먹는 물 문제도 원만히 풀리게 됩니다. 또한 대동강과 재령강의 수심이 깊어져 크고 작은 배들이 드나들 수 있게 되고 남포로부터 순천, 덕천, 재령에 이르는 공업지대와 농업지대들이 하나의 대운하로 연결되어 수상운수 발전의 넓은 전망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황진태, 앞의 글) 

 

대운하가 운송뿐 아니라 공업지대와 농업지대를 연결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연구까지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국내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아서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에서는 대운하와 관련한 이야기가 꾸준히 나왔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실제로 북한은 대운하 건설의 방편으로 대동강을 따라 서해갑문을 시작으로 미림갑문, 봉화갑문, 성천갑문, 순천갑문 등 5개의 갑문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경제위기인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대운하 사업 얘기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나라의 경제형편이 어렵다고 해서 현행 생산에만 급급하는 것은 보신이고 후퇴이며 혁명을 하지 않겠다는 표현”이라면서 “진정으로 인민을 위하고 조국의 부강 번영을 위함이라면 원대한 이상과 목표를 내세워야 하며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동시에 완강히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우리는 전망적인 대건설 작전들을 끊임없이 펼치고 성과적으로 완결하는 투쟁을 통하여 인민의 세기적 숙원이 하나하나 빛나게 실현되어나가는 우리 국가의 발전상과 양양한 전도를 과시하여야 합니다”라고 하여 이번에는 동서해 대운하를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2) 그동안 동서해 대운하 건설을 하지 않은 이유

 

그렇다면 북한은 왜 그동안 동서해 대운하를 건설하지 않았을까?

 

국내외 언론은 북한이 동서해 대운하 건설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중간에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흐지부지되었다고 보도한다. 

 

특히 낭림산맥을 관통하는 수십 킬로미터의 수로 터널을 뚫거나 아니면 100미터 이상의 고저 차를 극복할 선박용 리프트를 설치해야 하는데 북한의 기술력과 장비로는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많다. 

 

이 때문에 동서해 대운하보다는 기존 철도나 도로를 보수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1981년 5월 4일 착공하여 5년 만인 1986년 6월 완공한 서해갑문은 공사 조건이나 작업량을 따져보면 최소 10년 이상 걸리는 방대한 사업이었지만 5년 만에 끝냈다. 은하과학자거리, 려명거리, 송신·송화지구 등 최근 평양에 연속 들어서는 거리들의 규모나 수준을 보면 북한의 건설 역량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북한은 2002년부터 2019년까지 17년 동안 전국에 1만 킬로미터가 넘는 무동력 관개수로를 건설한 경험도 있다. 동력을 쓰지 않고 위에서 밑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만들었다고 해서 북한은 무동력 관개수로를 ‘자연흐름식 물길’이라 부른다. 사진을 보면 물길이라고 해서 폭 1미터 안팎의 작은 수로가 아니라 작은 운하를 방불케 하는 대형 수로이며 ‘물 고속도로’라고도 할 수 있다. 같은 기간 한국의 도로(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총연장 거리는 6천 킬로미터 정도 늘어났으니 북한은 한국이 도로를 건설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수로를 건설한 셈이다. 

 

▲ 황해북도 미루벌 물길.     

 

▲ 황해남도 물길 2단계.     

 

▲ 함경남도 금야군 물길.     

 

▲ 평안남도 천성-성산 배수갱.     

 

북한은 수로뿐 아니라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물길굴(수로터널)’ 공사도 많이 하였다. 대표적으로 희천발전소에서만도 수십 킬로미터의 수로터널을 700일 만에 완성하였다. 

 

북한의 이런 수로, 수로터널 공사 경험과 역량은 대운하 건설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북한이 대운하 건설을 미룬 다른 요인이 있지 않은가 생각할 수 있다. 

 

동서해 대운하가 완성되면 북한은 대운하를 중심으로 국토가 남북으로 나뉜다. 이를 잇기 위해 대운하에는 여러 다리를 놔야 한다. 운하 밑으로 하저터널을 뚫을 수도 있지만 다리보다 비용이 더 드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한반도는 아직 전쟁 위기가 상존하는 정전 상태다. 북한은 미국의 핵위협이 끊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대규모 한미연합훈련도 몇 십 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만약 대운하를 완공한 후 전쟁이 발발하면 대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들이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북한 내 대운하 남쪽 지역은 순식간에 고립되고 만다. 특히 아직 대운하 경로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평양을 가로지르는 경우 자칫 수도 평양이 반으로 나뉘는 사태도 벌어질 수 있다. 

 

이처럼 국토를 가로지르는 대운하는 군사적으로 보면 매우 위험한 시설물이다. 막대한 국력을 쏟아부어 대운하를 만들었다가 전쟁으로 파괴되었을 때 입을 경제적 손실만 생각해도 쉽사리 시도하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이 대운하를 본격적으로 건설한다면 이는 전쟁이 나지 않는다는 확신, 혹은 전쟁이 나더라도 대운하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사회주의의 줄기찬 발전과 번영을 이룩하는 데서 어떠한 침략위협도 통할 수 없는 조건과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차대하고 사활적인 요구로 나서며 이를 실현하자면 적들을 압승할 수 있는 절대적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는데 바로 이런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3) 동서해 대운하의 경제 효과

 

경로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동서해 대운하가 대동강을 활용할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대동강 주변에는 남포, 송림, 평양, 평성, 순천을 비롯한 주요 도시와 순천화학연합기업소, 순천시멘트연합기업소, 순천인비료공장, 황해제철연합기업소 등 주요 기업소가 밀집해있다. 따라서 여기서 생산된 여러 자재를 대운하를 통해 내륙으로 운반할 수 있다. 이것이 북한 내부 물류 운송과 관련한 1차 경제 효과다. 

 

 

2차 경제 효과로는 대운하를 따라 여러 도시가 건설되는 것이다. 주택단지, 공업단지, 상업·물류단지, 관광단지, 체육·문화공원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설 수 있다. 최근 평양에서 개발하는 여러 거리를 보면 선진국 대도시의 번화가를 방불케 하는데 대운하를 따라 이런 거리를 계속 만들 수 있다. 그러면 북한 입장에서는 지역균형발전을 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여기까지는 북한 내부의 경제 효과다. 시야를 넓히면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 등 주변국이 동서해 대운하를 이용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의 활용이 주목되는데 시진핑 국가주석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일대일로 사업과 연결되면 예상을 뛰어넘는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 단순히 통행료를 받는 수준을 넘어 “동북아의 지정학-지경학적 구도상에서 대운하가 새로운 변수로 급부상”할 수 있는 것이다. (황진태, 앞의 글)

 

‘동북아의 지정학-지경학적 구도’에 관해 조금 더 살펴보자. 

 

북·중·러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경제협력은 오래전부터 논의의 대상이었다. 1992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지원을 받아 북·중·러가 참여해 출범한 두만강개발계획(TRADP)이 대표적이다. 이 계획은 2005년 9월 대상지역을 몽골 동부와 한국 동해안까지 넓혀 광역두만개발계획(GTI)으로 확대되었다.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극동개발에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2000년 취임 직후 북한을 방문해 ‘아시아 중시전략’의 시작을 알렸다. 푸틴 정부는 집권3기(2012~2018년) 최대 국정 과제의 하나로 극동·시베리아 개발을 꼽고 17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였다. 2012년 극동개발부 창설, 2014~2015년 선도개발구역 지정, 2015~2016년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지정, 2016년 국제운송회랑 프리모리예-1·2 개발 기본계획 승인 등이 이어졌다. 또한 2015년부터 신동방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방경제포럼을 대통령령으로 창설했다. 이 포럼은 러시아가 연방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단 3개의 포럼 가운데 하나다. 

 

이런 이유로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2016년 8월 28일 기사를 통해 “극동개발은 푸틴의 명운이 달린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다. 특히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을 잇는 장거리 가스관과 송유관 건설, 사할린 유전 가스관 연결, 극동 최대 수력발전소인 부레야 발전소의 송전망 구축 등은 남·북·러 모두 관심을 모으는 사업들이다. 

 

이런 러시아의 처지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더 확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과 러시아의 관계는 앞으로 상당 부분 축소될 것이며 러시아는 유럽으로 향하던 가스 등을 중국이나 인도로 돌려야 한다. 따라서 극동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중국 역시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 동북3성 개발에 관심을 보여왔다. 중국 내 낙후한 지역 가운데 하나인 동북3성의 개발을 위해 중국은 2003년 동북진흥전략을 입안하였고 2016년에는 신동북진흥전략을 발표해 3년 동안 27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동북3성은 일대일로 사업은 물론 북한·러시아 항구를 빌려 동해로 진출하는 차항출해(借港出海) 전략의 요충지다. 원래 일대일로 사업은 동북3성이나 북한, 러시아 극동지역과는 무관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2018년 9월 10일 랴오닝성이 ‘일대일로 종합시범구 건설 총체방안’을 발표해 단둥-평양-서울-부산 연결을 통한 일대일로의 한반도 확장을 명시하였다. 그해 9월 말 시진핑 국가주석은 동북3성을 방문하고 일대일로를 동북지역까지 건설하는 방안을 논의하였다. 

 

같은 시기 러시아 블라디보스트크에서 열린 4차 동방경제포럼에 시진핑 국가주석과 동북3성 당서기들이 전원 참석해 러시아 극동지역 개발과 동북진흥전략의 연계를 추구했다. 이 자리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동북아경제권을 주창했다. (변현섭, 「중국의 일대일로와 중·러 협력:동북3성 및 극동지역 교통물류협력을 중심으로」, 『중소연구』 42권,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2019.)

 

이처럼 중국, 러시아가 동북아 지역 경제 개발에 관심이 높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 극동지역을 연결하는 해상 항로로 북한의 동서해 대운하가 각광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톈진시나 칭다오시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기 위해 한반도를 빙 돌아 대한해협을 건너는 것보다 대동강을 통해 동해로 빠지면 훨씬 시간과 거리를 단축할 수 있는 것이다. 뉴스핌은 2022년 9월 12일 자 보도에서 “(대운하가 건설되면) 다롄 등 중국 항만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을 연결하는 경제적인 해상루트도 마련돼 상당한 외화획득(통과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동서해 대운하가 북·중·러 경제협력의 중심지로 떠오를 수 있다. 대운하를 따라 들어서는 도시들에 중국, 러시아를 연결하는 다양한 시설이 들어설 수 있다. 이상현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는 2022년 9월 14일 ‘17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두만강을 따라 중국, 러시아, 한국 등이 참여하는 국제연합도시들을 건설하자고 제안했는데 기후면에서 볼 때 두만강보다는 대운하를 따라 국제연합도시를 건설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극동지역이나 만주도 겨울이 너무 길고 추워 북·중·러 경제협력의 중심지가 되기에는 불리하다. 

 

대운하를 따라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 같은 세계도시(global city)가 들어선다면 이곳이 세계의 중심지가 될 수도 있다. 지금 북·중·러는 모두 핵강국이자 다극화 세계를 추구하며 반미 강경 노선을 표방하고 서로 연대·협력하고 있다. 또한 미국 중심의 경제가 몰락하는 반면 이들 나라의 경제는 상승 국면에 있다. 여기에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 등도 합류하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세 나라가 뭉치면 미래에는 충분히 세계의 중심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위에서부터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 평양의 송신·송화지구(좌)와 려명거리.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통일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으로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여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루빨리 통일을 실현해 세계의 중심이 되자고 한다. 심지어 해외에서도 그런 목소리가 나온다. 한반도 전문가이자 평화학 권위자인 요한 갈퉁 교수는 1972년에 이미 통일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 국가’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시점상 통일이 되기 전에 동서해 대운하가 먼저 열리고 이곳이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도 어떻게든 대운하에 진출하고자 할 것이다. 어쩌면 북한은 이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라 여길 수 있다. 통일은 민심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한국 민심은 미국과 손을 잡아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이런 믿음이 급격히 깨지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북한은 자신과 손을 잡아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으로 민심을 바꾸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다. 즉, 북한은 동서해 대운하를 세계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통일의 거점으로 만들고자 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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