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집 어머니 같은 선배...“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요”

4회 이창기 불꽃 상 수상자 인터뷰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2/11/03 [16:55]

친정집 어머니 같은 선배...“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요”

4회 이창기 불꽃 상 수상자 인터뷰

문경환 기자 | 입력 : 2022/11/03 [16:55]

지난 1월 22일 열린 제4회 이창기 상 시상식에서 ‘이창기 불꽃 상’을 받은 조영신(47) 씨를 만났다. 

 

조영신 씨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졸업 후 노동조합에서 주로 근무하였으며 청년회에서 만난 남편의 권유로 국민주권연대 경기지부(아래 경기주권연대)에도 가입하였다. 

 

기자: 이번에 ‘이창기 불꽃 상’을 받은 게 용인 지역에서 1인 시위도 하고 열심히 활동하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조영신(아래 조): 지역에 세월호 문제로 매주 금요일 1인 시위를 하는 분이 계세요. 처음에는 그분을 찾아가서 같이 하자고 제안해서 한 2년 넘게 남편이랑 1인 시위를 했습니다. 그러다 용인에 사는 다른 회원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함께 1인 시위를 했죠. 그러다 코로나 이후로 저희는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에 그분이 1인 시위하는 걸 봤는데 윤석열 퇴진 촛불대행진 참가하러 서울도 다녀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기자: 남편분도 1인 시위를 함께했군요?

 

조: 저보다 남편이 실천력은 더 강해요. 저랑 결혼하기 전에 통합진보당 사태 터졌을 때 혼자 출근길에 터미널에서 1시간씩 1인 시위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엄청 열정적이죠. 남편에게 비하면 저는 실천력은 떨어지고 대신 동지들을 많이 챙기는 편이에요. 그래서 둘이 만나면 서로 좋은 영향을 줍니다. 

 

기자: 요즘 전국에서 윤석열 퇴진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는데 지역에서도 움직임이 있습니까?

 

조: 우리 지역은 가까운 수원에서 집회를 하고 있고요, 또 1인 시위도 하고 자체로 스티커도 만들어서 주말에 붙이러 다니고 이렇게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경기주권연대 유주호 회원은 조영신 씨를 극찬했다. 

 

“조영신 회원은 조직의 결정에 관해 깊은 사색과 토론을 하면서도 무조건 관철하려는 자세가 있습니다. 또 모든 일에 열정이 넘칩니다. 온라인 실천도 열심히 합니다. 용인에 회원이 3명밖에 없는데도 1인 시위 하자고 하면 하고, 현수막 걸기 하자면 합니다. 제안하는 사업은 다 합니다. 작년에 경기주권연대에서 조를 꾸려서 토론대회에 참가하는데 진짜 열심히 하면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단체 일정에 자기 생활도 맞춥니다.”

 

기자: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베푼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 저희 어머니가 베푸시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누가 우리 집에 왔다 갔는데 한 보따리 싸가지고 가면서 친정집 갔다 오는 느낌이 들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따뜻해지고 더 주고 싶더라고요. 

 

기자: 특히 후배들을 참 잘 대해주신다고요. 

 

조: 저도 학생운동을 하다 힘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 모습이 떠올라서 잘 챙겨주게 됩니다. 

 

경기인천대학생진보연합(아래 경인대진연)은 조영신 씨에게 많은 후원을 받았다. 이종오 경인대진연 운영위원장의 말을 들어보자. 

 

“조영신 선배는 노동조합 일을 하면서 버는 돈을 경인대진연에 후원합니다. 그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 워낙 티 안 나게 사람들을 잘 챙겨서 주변에서 잘 모릅니다. 저도 무슨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기프티콘 같은 걸 자주 받았어요. 그런 걸 받으면 ‘항상 이렇게 나를 생각해주시는구나’라고 느낍니다. 또 저희 자취하는 대학생들에게 이것저것 정말 많이 갖다 주셔서 이모나 어머니같이 느껴집니다. 쌀과 김치도 끊이지 않고 보내주세요. 우리 사무실에 냉장고가 있는데 항상 김치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냉장고에 모르는 김치가 있기에 ‘누가 갖다 놓았지?’ 하고 우리끼리 서로 쳐다봤어요. 항상 뭘 주시고도 티를 안 내세요. 저희는 주로 수원에서 활동하는데 조영신 선배님은 용인에 계시니까 한 번씩 놀러 오라고,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하세요. 맛있는 거 해주고 싶어 하시는 거죠.”

 

조: 학생운동 이후에 몸담은 모임이 없던 시절에는 아주 힘들었어요. 생활도 엉망으로 하고, 직장 생활도 인간관계를 맺고 동지를 만든다든가 하는 게 아니고 말 그대로 일만 하니까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후배들이 진보운동에서 멀어졌다는 말을 들으면 제 옛날 생각이 나서 정말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고 그랬죠. 어쨌든 진보운동에서 떠나지 않게끔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사람들한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편이에요. 

 

다시 이종오 씨 이야기다. 

 

“경인대진연에 힘들어하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저희 경인대진연에 남자 선배밖에 없다 보니 마음 붙이기가 어려웠죠. 그때 조영신 선배가 나서서 자주 만나서 이야기도 들어주고 알뜰살뜰 챙겨주셨어요. 한번은 제가 옆에서 이야기하는 걸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학생 얘기를 들어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잘못 생각하는 건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필요한 얘기는 정확히 다 하세요. 그런데 정말 귀에 쏙쏙 들어오게 이야기를 잘하시더라고요. 저희는 똑같은 말을 해도 교양하듯 가르치는 식으로 하는데 저희랑은 달랐어요. 상대에 따라 내용이나 표현을 바꿔가며 이야기하는데 ‘정말 대단하구나’ 하는 감탄이 나옵니다.”

 

기자: 지금 주권연대 경기지부에서 분회장을 맡고 있는데, 분회장이 된 이후로 달라진 게 있나요?

 

조: 예전에는 동지들에게 뭘 주려고 하면 좀 따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회원들에게 뭔가 선물도 하고, 편지도 쓰고, 이렇게 하는 게 아깝지 않아요. 내가 동지들에게 하나라도 더 주기 위해 돈을 벌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기자: 분회 모임은 잘 되나요?

 

조: 새로운 사람이 분회장 하니까 사람들이 좀 기대했나 봐요. 그래서 전에 잘 안 나오던 분도 한 번씩 나오더라고요. 요즘에는 집회 때문에 분회 모임 하기 힘들어서 제가 번개 모임을 제안했어요. 7월에 회원 한 명의 생일에 맞춰서 2주 전부터 공지하고 전화 다 돌리고 잘 안 나오는 회원이 사는 동네로 가서 번개 모임을 소집하니까 그분도 나와서 술값을 계산했습니다. 여러 명이 모여서 새벽까지 진한 이야기도 나누고 아주 친해졌습니다. 

 

▲ 용인모임 회원들. 가운데가 조영신 씨.     

 

기자: 그 뒤로도 또 번개 모임이 있었나요?

 

조: 9월에도 또 번개를 했어요. 당시 한 회원이 마음이 많이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걱정이 됐거든요. 그래서 잠깐 얼굴 좀 보자고 연락해서 이야기도 나누고 했습니다. 잘 안 나오는 회원들에게는 안부 문자도 자주 보내고 집으로 찾아가기도 합니다. 남편이랑 같이 찾아가서 셋이서 술 한잔한 적도 있고요. 어떤 회원은 너무 바빠서 새벽까지 일하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데 만나기 쉽지 않아서 전화 연락만 꾸준히 하고 있어요. 또 어떤 회원은 1년에 한 번 얼굴 볼까 말까 했는데 계속 연락해서 모임에 한번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모임에 나왔을 때 자녀교육에 관한 토론을 해서 활동을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기자: 그렇게 여러 사람에게 꾸준히 연락하는 게 쉽진 않을 텐데요.

 

조: 아유, 제가 그거라도 해야죠.

 

유주호 씨는 조영신 씨의 동지애가 매우 강하다고 하였다. 

 

“단체 활동에서 멀어진 회원이 있는데 아무도 다가가서 잡아주지 못했는데 조영신 회원은 찾아가서 밥도 먹고 힘들었던 사연도 들어주고, 또 그러면서도 요구할 건 요구합니다. 그걸 몇 달, 몇 년씩 합니다. 20년 전 학생운동 할 때 함께했던 사람들에게도 꾸준히 연락해서 어떻게든 다시 활동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서도 동지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세심하게 접근하면서 사소한 생활 문제도 다 챙겨주면서도 진보운동의 원칙을 놓치지 않는 모습이 타고난 성품이고 몸에 배어 있다고 느낍니다. 나도 배울 점이 많습니다.”

 

기자: 저도 주변에 힘들어하거나 진보운동을 정리하겠다는 동지가 있으면 찾아가 보기는 하는데 사실 한두 번 만나서 설득이 안 되면 ‘내가 더 만난다고 달라지겠나’ 싶어서 더 안 만나지게 되더라고요. 여러 번 만나도 전혀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사람을 계속 만나는 게 힘든 일이잖아요.

 

조: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열 번 두드리면 한 번은 마음을 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동지뿐 아니라 인간관계가 있는 거의 모든 사람한테 정성을 들입니다. 남들이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제가 먼저 연락해서 안부도 묻고 힘들어하면 만나서 얘기도 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한 번은 마음을 열더라고요. 

 

기자: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겠네요. 

 

조: 사람에 따라서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 좀 기다려줘야 해요. 힘들어하던 어떤 후배에게 제가 휴대폰으로 편지를 써서 보내고, 제가 좋아하는 노랫말도 보내고, 그렇게 했는데 나중에 저에게 다시 진보단체 활동을 하고 있다고 연락해주더라고요. 꼭 저 때문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다시 결심하는 데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참 좋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자: 남편분은 뭐라 안 하세요?

 

조: 우리 남편은 정말 조용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저한테 좀 오지랖 넓은 거 아니냐 그럽니다. 하지만 저는 동지들에게 창피한 거 숨기거나 그러지 않고 먼저 다가가는 게 맞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유주호 씨는 “조영신 회원이 한때 많이 힘든 시기를 거쳤습니다. 그래서 처음 주권연대 모임에 참여할 때도 어려워했고 나도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힘들 때마다 자기 마음을 솔직히 이야기해주었고 그걸 극복해냈습니다”라고 얘기했다. 

 

기자: 끝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

 

조: 제가 주권연대 분회 모임을 하면서 느낀 건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참 순수하고 좋다, 그런 좋은 사람 속에 제가 있다 보니 저도 좋게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동지를 소중히 여기는 조직의 분위기가 저를 바꾼 거죠. 주권연대가 따뜻하고 정이 넘치면서 또 조직 생활을 철두철미하게 하는데 그런 속에서 저도 많이 배우고 성장합니다. 요즘은 주권연대의 정책과 노선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 어떻게 더 많은 대중과 함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합니다. 우리만 잘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고 대중과 함께해야 세상도 바뀌니까요.

 

이종오 씨는 “조영신 선배는 동지들 만날 때면 항상 푸근한 미소를 머금고 계세요. 동지들, 대학생들 만날 때 표정이 가장 밝아요”라고 하였다. 

 

자신이 힘든 시기를 거친 만큼 동지들에게, 후배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다는 조영신 씨. 취재를 마치고 기자와 헤어지는 자리에서도 뭔가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모습을 보며 고 이창기 기자가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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