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적 평화통일 위해 투쟁하겠다” 차별을 뚫고 싸워온 재일동포들계속되는 재일동포를 향한 차별과 혐오일제 패망·광복 이후 70여 년이 지났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재일동포를 겨눈 차별과 혐오’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표 사례로 일본 정부는 외국인학교 가운데 우리말과 역사를 가르치는 조선학교와 부설 유치원만 표적 삼아 재정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앞장서서 재일동포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다 보니 일본 곳곳에서 관련 범죄가 잇따른다. 올해 5월 이바라키시에 있는 코리아 국제학교(KIS)에서는 방화 미수 범죄가 벌어졌다. 재일동포를 겨눈 혐오범죄로 추정되는데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동포 사회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앞서 지난해 7월 일본인 범죄자 아리모토 쇼고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아이치현 본부에서 운영하는 나고야 한국학교의 배수관에 불을 붙여 파괴하기도 했다.
아리모토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리모토는 지난해 8월 30일 교토 우토로 마을에 불을 질러 평화기념관에 전시될 물품 40여 개를 불태웠다. 이 때문에 민족의 얼을 지키며 살아온 동포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귀중한 물품이 재가 돼버렸다.
일본에서 재일동포를 겨눈 차별과 혐오는 ‘일본인 개인’의 범죄가 아닌 사회 문제다.
올해 7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암살됐을 때 재일동포가 가장 먼저 ‘암살범’으로 지목됐다. 일본 극우 인터넷 커뮤니티인 2채널을 중심으로 ‘재일동포가 아베를 암살했다’는 가짜뉴스가 퍼지면서 재일동포 사회는 한동안 숨을 죽여야 했다.
일본 사회에서 재일동포를 향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이유는 명확하다. 일본이 식민침탈과 전쟁범죄를 저지른 과거를 반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별을 넘어 조국의 민주와 통일을 위해 나선 동포들
오늘날 일본에는 일본 사회의 차별에 굴하지 않고 힘차게 투쟁과 활동을 이어가는 동포들이 있다.
이번에는 일본 사회와 한국 군사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한국의 민주화’와 ‘조국의 통일’을 외쳐온 재일동포의 삶과 투쟁의 역사를 들여다보려 한다.
1946년 만들어진 재일본조선인거류민단(현 민단)은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자 반공과 독재를 지지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1960년 10월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이 민단 산하 조직으로 출범했다. 4.19혁명의 뜻을 이어 한국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동포들이 뭉친 것이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채택되면서 한청은 민주화와 함께 통일을 기치로 들었다. 그러자 반공과 독재를 옹호하는 민단 지도부는 한청을 산하 단체에서 제외하며 탄압했다.
한청과 함께하는 동포들은 5.18광주민중항쟁, 6월항쟁, 세월호 참사, 박근혜 탄핵 촛불 등 중요한 국면마다 거침없이 목소리를 냈다.
한 동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동포 3세 이준일 씨(1978년생)도 민주화와 통일을 바라며 투쟁해온 선배 활동가들의 뜻을 잇는 동포 중 한 명이다.
일본 효고현 고베시에서 태어난 이준일 씨의 ‘고향’은 경상남도 합천군이다. 여기서 고향이란 조상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곳을 뜻한다.
이준일 씨는 일본에서 중학교 때까지 조선학교를 다니며 우리말과 역사를 배웠다. 이후 고등학교, 대학교는 일본인이 다니는 학교를 나왔다. 한국은 20살 넘어 부모님과 함께 가족여행으로 처음 찾았다고 한다.
대학생이 된 이준일 씨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며 활동하는 한국 대학생들과 교류도 이어갔다. 이 경험이 오늘날까지 이준일 씨가 활동을 이어가는 근간이 됐다.
앞서 설명했듯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를 노골적으로 탄압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동포 학생들이 우리말과 역사를 배우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다음은 이준일 씨가 전하는 말이다.
“재일동포가 우리말이나 역사를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걸 배우기 위해서는 우리학교(조선학교)와 같은 민족학교에 다녀야 하지만 학교 수가 적거나 일본 사회의 차별로 인해 경제적인 부담이 많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인이 다니는 학교를 졸업하고 20살이 넘어 우리말과 역사를 처음 공부하는 동포들도 있다. 이런 동포들은 한국어교실, 동아리 등에서 함께 공부한다고 한다.
동포 중에는 여느 일본인들처럼 회사에 들어가 취직하거나,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직으로 일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취직에 제한이 있고 일본인에 비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이준일 씨는 재일동포들이 일본에서 차별을 받는 근본 이유로 ‘북한 악마화’를 꼽았다.
“일본에서는 특히 언론이 북측에 대한 왜곡 보도를 계속하고 있어서 북측이 미사일 발사를 할 때마다 북측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보도가 퍼져서 그때마다 특히 우리학교 학생들이 욕설이나 폭력에 맞닥뜨리는 피해를 받고 있습니다.”
이준일 씨는 일본 사회의 차별을 뚫어낼 근본 방도를 연대와 투쟁에서 찾는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치로 들고 싸워야 조선학교 재정 지원 중단, 방화 범죄, 취직 제한 같은 차별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취지다.
이준일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분들은 그런 (재일동포들을 향한) 차별에 대해서 늘 항의하고 계십니다. 또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들과의 연대를 더 강화해서 열심히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치면서 3년이나 한국 왕래가 중단된 안타까운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동포들은 일본 시민들과 연대하며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지배와 내정간섭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미국이 패권을 고집한다면 반미투쟁은 한국에서 세계에서 더욱 거세게 타오를 것이다.”
한미연합훈련으로 한반도의 전쟁 위기가 높아지던 지난 5월 동포들은 뜻을 함께하는 일본 시민들과 도쿄 주일미국대사관 앞에서 위처럼 외쳤다. 그 옆에 이준일 씨도 있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는 하늘길이 다시 열리자 동포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지난 8월 광복 77주년을 맞아 재일동포 방문단이 3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방문단은 서울에서 열린 각계 시민단체, 대학생들과 함께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외쳤다.
지난 10월 재일동포 방문단은 민변, 몽당연필, 지구촌동포연대, 포럼 ‘진실과 정의의 초청’ 등 각계 단체의 초청을 받아 다시 한국을 찾았다. 방문단은 국가인권위원회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방문했고 국회토론회 등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했다.
이처럼 동포들은 차별을 뚫어내기 위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다방면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에서는 대선이 치러졌다. 대선 당시 이준일 씨는 “투표권을 가지고 있으니 대통령선거에 관한 홍보 활동을 했다”라며 “조국 통일과 평화를 추진시키는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전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하고 6개월이 지난 현 국면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물음에 이준일 씨는 이렇게 강조했다.
“지금 한반도의 전쟁 위기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 특히 예속적인 자세가 근본적인 요인입니다. 민족 자주의 관점으로써 북측에 대한 적대행위를 다 중단하고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바탕으로 남북대화를 재개해야 할 겁니다. 윤석열 정부의 전쟁정책을 강력히 규탄해 왔고 그것에 동참하는 동포들도 수많이 있습니다.”
다음은 이준일 씨가 한국 사회에 전하는 말이다.
“윤석열 정부의 폭주를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국 국민이 든 촛불의 힘이 한국 사회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우리도 함께 투쟁하겠습니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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