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희생자들에게 덧씌워지는 말도 안 되는 오명에 분노하며, 이후 행해지는 모든 2차 가해에 대해 조금의 선처 없이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비인간적이고, 반사회적인 행위에 책임이 따를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발표한 창립선언문 전문 중에서.
지난 10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홀 달개비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아래 유가족협의회) 창립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사로 희생된 97명의 유가족 170명은 복받치는 눈물을 삼키며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사과부터 하라!” “살인자를 처벌하라!” “이상민을 파면하라!” “(이태원은) 학살의 현장이었다.” “국가는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들은 용기를 내어 그날을 증언해달라.”
한 유가족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 저희 유가족들이 다 죽어야, 대한민국에서 없어져야 발 뻗고 잘 수 있는 거냐”라며 “저희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시라. 부탁드린다”라고 흐느꼈다.
충남 당진에서 올라온 고 김지연 씨의 어머니는 “다 같이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제발 유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해달라”라며 “제발 국민의 눈과 귀를 막지 말고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길 간곡히 부탁한다”라고 호소했다.
고 이지한 씨의 아버지인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에 따르면 유가족들은 행정안전부, 정부·여당, 서울시에 유가족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라’, ‘약을 먹어라’, ‘상담을 받아라’와 같은 무책임한 답변만이 돌아왔다고 한다.
심지어 정부는 유가족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이태원 참사 수사에 대응하는 중앙수사대책본부를 일방적으로 해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유가족이 왜 중대본을 해체했는지 전화로 묻자 ‘유가족과 소통한 적도 없고 소통할 계획도 없고 위에서 지시가 내려온 적도 없다’라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유가족들은 “여기저기 미친 듯이” 다른 유가족들을 찾아 돌아다녀야 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힘당에서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독하는 막말까지 나와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 권성동 국힘당 국회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시민단체가 조직적으로 결합해서 정부를 압박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라며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 횡령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유가족을 모독했다.
이에 관해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세월호가 간 길이 어떤 길인데 가면 안 된다는 거냐”라며 “정부는 유가족들을 모아놓고 책임자로서 진정 어린 사과 한마디 해달라는 요구를 외면했다. 왜 벌써 이렇게 갈라치기를 하고 국민에 진실을 호도하는 것인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유가족들도 “아들을 묻고 이렇게 온 상황에서 정쟁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사과하라”, “그 더러운 입을 한 번만 더 놀리면 유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꼭 좀 전해달라”라고 권 의원을 향해 강하게 분노했다.
기자회견에서는 유가족협의회와 함께한 시민대책회의가 “끝까지 유가족의 뜻을 받들어 돕겠다”라고 발언했다. 유가족들은 이 말에 고마움을 나타내며 “(우리를) 도와달라”라고 여러 차례 호소했다.
유가족협의회는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책임자들의 진정한 사과를 바란다”라며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 발생 49일째가 되는 오는 16일 오전 유가족협의회는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이태원 참사 49재를 지낸다.
같은 날 저녁 6시 유가족협의회는 시민대책회의와 함께 이태원역 3번 출구 근처에서 시민추모제 ‘우리를 기억해주세요’를 열 예정이다.
13일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나와 시민추모제에서 희생자들의 사진과 이름이 담긴 위패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요즘은 댓글이 아닌 정치인들한테 2차 가해를 받고 있는 것 같다. 권성동 의원이 한 말은 저희에게 댓글보다 더 충격을 주었고 (국힘당의 김미나) 창원시의원은 저희에게 공연히 ‘시체 팔이’라는 이야기를 한다”라며 “세월호(참사 이후 상황)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저는 몰랐다. 앞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서 알아보려 한다”라고 했다.
또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야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처리한 것에 관해 “당연히 환영하지만 탄핵소추로 갔어야 했다”라고 강조했다.
13일 오전 11시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국회 소통관에서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충실하고 성역 없는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권 의원의 막말에 관해 "도움이 절실하고 힘도 없는 유가족들을 반정부세력처럼 몰고 있다"라며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유가족끼리 상처를 보듬고 온전한 추모를 할 수 있게 해달라"라고 호소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 소속 의원으로 구성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위 소속 위원들은 "국힘당 위원들의 조속한 국정조사 특위 복귀를 재차 촉구한다"라며 "오늘 중 국힘당이 복귀하지 않으면 내일부터 국정조사를 시작하겠다"라고 밝혔다.
앞으로 유가족협의회는 ▲윤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 ▲진상규명 과정에 피해자의 참여 보장 ▲성역 없는 엄격한 책임 규명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입장 표명과 자세한 대책 마련 등을 정부에 촉구하는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한편 지난 12일 대통령실은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해서는 진상 확인과 법적 소재 규명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통해 국가의 법적 책임 범위가 정해지고 이것이 명확해져야 유족에 대한 국가 배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라며 이상민 장관의 해임을 거부했다.
이상민 장관 해임을 거부하고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유가족에게 '배상'을 꺼내든 대통령실이 ‘유가족을 향한 2차 가해’의 중심에 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발표한 창립선언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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