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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독재정권의 시녀, 하수인, 주구 그리고 미국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 기사입력 2023/02/23 [13:06]

[기고] 독재정권의 시녀, 하수인, 주구 그리고 미국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 입력 : 2023/02/23 [13:06]

 

 

2020년 국가정보원법 개정을 통해 2024년 대공 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기로 했다. 

 

대공 수사권은 민중에 대한 불법 사찰과 국내 정치 공작에 악용되어 온 국정원의 핵심 권한이다. 특히 정권이 위기에 몰릴 때 국정원은 앞장서서 간첩 조작사건과 공안 탄압으로 정국을 전환하는데 대공 수사권을 남용했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정권 시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은 국정원의 조작사건이었다. 또한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의 주구(走狗)로 인혁당, 민청학련 사건 등을 조작했다. 이후 전두환, 노태우 군부 정권 시절 국가안전기획부의 조작사건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에 대한 반성과 사과 그리고 문책 및 책임을 지지 않고, 법적 구실이 되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국가보안법 위헌판결을 앞두고 국정원이 앞장서서 작년 연말부터 만들어 내는 공안사건은 반민주, 반통일 악법 국가보안법을 유지하려는 단말마적인 발악이다.

 

국정원의 전신 중앙정보부는 박정희가 만들었지만, 기원은 이승만 시대의 특무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배후는 미국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경찰, 특무대 등 대부분의 공안 통치기구에 미국이 관여했다.

 

이승만 종신집권의 하수인 친일경찰과 특무대 

 

일제는 식민 지배를 위해 총독부의 하수인으로 경찰을 전면에 내세웠다. ‘칼 찬 순사’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해방되자 일제하 천황의 충견 노릇을 하던 경찰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그들이 자행한 친일 반민족 죄악에 대한 민중의 분노와 엄중한 심판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방 후 진주한 미군은 민중의 열망과는 반대로 총독부의 하수인 식민지 경찰의 충성심을 적극 미군정에 이용했다. 친일경찰은 재빠르게 일본 대신 미군에 절대복종했다. 그들에게 미국은 구세주이자 은인이었다. 그리고 ‘반공’과 ‘빨갱이’를 구실로 일제하 독립운동가를 심문하듯 혹독한 고문과 잔인한 폭력으로 민중을 탄압했다.

 

민중은 식민지 시절보다 경찰에게 폭언과 폭력 그리고 고문을 더 당했다. 심지어는 재판을 받지 않은 채 총에 맞아 죽기도 했다. 바로 경찰에에 이런 권력을 부여한 것이 이승만 정권이었다. 그리고 이승만은 친일경찰과 함께 특무대를 창설하여 장기집권을 넘어 종신집권을 꿈꿨다. 

 

『대한민국 잔혹사』(김동춘, 한겨레출판(주), 2013)에는 “해방 직후 진주한 미군 방첩대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부터 일제시대의 헌병·경찰 출신을 훈련해 장차 한국군의 비밀정보 요원으로 육성하려 했다. (중략) 정부 수립 직후부터 이 조직(방첩대)은 국가 전복 세력을 색출한다는 미명 아래 실제로는 이승만의 정적을 감시하고 제거하는 일을 했다. 미 방첩대, 미 공군 정보기관, 미 CIA 등 많은 정보기관이 한국 특무대와 긴밀히 협조했다. 당시 특무대는 이승만의 사조직처럼 움직였다. 이들은 군대 혹은 관료조직 특유의 지휘명령 계통을 무시하고 이승만에게 모든 활동을 직접 보고하는 특권을 누렸다. 특무대장 김창룡은 사실상 이승만 다음의 2인자로 행세했다”라고 쓰여 있다. 

 

특무대는 이후 중앙정보부, 안기부, 국정원으로 변신하지만 이러한 공안 통치기구의 배후는 미국이다.

 

박정희의 중앙정보부 창설과 미국 중앙정보국(CIA)

 

1960년 역사적인 4.19혁명으로 이승만 독재가 무너지자 민중의 평화적 민족통일 역량은 분출했다. 혁신정당과 학생 청년단체는 통일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4.19혁명이 이룩한 가장 큰 성과 중 하나가 ‘남북협상론’ 통일논의의 등장이었다.

 

그러나 5.16쿠데타로 무력 정권 찬탈에 성공한 박정희와 군사쿠데타 주도 세력은 ‘반공 국시’를 천명하면서 사회당, 사회대중당, 혁신당,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전국피학살유족회, 교원노조, 통일민주청년동맹, 민주민족청년동맹, 전국민족통일학생연맹 등 18개 혁신계 정당·사회단체의 핵심 인물을 용공 세력이라 규정하고 체포했다.

 

사실 5.16쿠데타의 실질적인 주모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당시 미국 CIA 국장이었던 덜레스이었다. 덜레스는 1964년 5월 3일 영국 BBC 방송에 출연해 “내가 재임 중에 CIA 해외 활동에서 가장 성공을 거둔 것은 5.16쿠데타였다. (중략) 만약 미국이 무언가를 하지 않았더라면 한국민은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에 현혹되어 남북통일을 요구하는 폭도들을 지원하였을지도 모른다”라고 자랑하였다.

 

여순항쟁에서 남로당 조직원을 불고 풀려난 배신자 박정희는 미국의 의도를 간파하고 ‘반공’을 구실로 중앙정보부를 창설한다. 『프레이저보고서』(미하원 국제관계위원회 국제기구소위원회 엮음, 한미관계연구회 옮김, 실천문학사, 1986)에 따르면 중앙정보부는 미국 CIA의 상당한 개입과 후원하에 만들어졌다. 

 

이후 중앙정보부는 박정희 장기집권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반공’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에 관여했다. 중앙정보부는 야당과 민주인사에 대한 통제와 감시뿐만 아니라 여당 공화당 의원과 고급 관료 등 친박정희 세력 중에서도 정치적 야심이 있는 인물에 대해 감시하고 통제했다. 이 때문에 박정희 체제를 ‘정보 정치’, ‘공작 정치’라고 부른다.

 

이승만 정권 때는 경찰과 특무대를 이용하여 장기집권했다면, 5.16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는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정치 통제의 핵심 도구로 이용했다. 

 

박정희 장기집권의 주구 중앙정보부의 고문 조작사건

 

박정희는 중요 역사적 굴곡과 위기가 있을 때 중앙정보부를 이용하여 공안 탄압과 고문 조작사건을 터뜨려 민중의 저항을 꺾었다. 대표적인 것이 소위 1, 2차 인혁당 사건이다.

 

1차 인혁당 사건은 1964년 대학생들의 한일회담 반대 투쟁을 주도했던 학생운동의 배후 조종 혐의로 조작하여 만든 사건이었다. 박정희는 1964년부터 본격적으로 한일회담을 추진하나 학생들은 격렬하게 반대하였고 언론은 그 투쟁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또한 대학생뿐 아니라 고등학생과 일반 시민이 참가하는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특히 야당, 사회·문화단체 대표 2백여 명은 3월 6일부터 ‘대일굴욕외교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를 발족하고 ‘구국 선언문’과 ‘대정부 경고문’을 발표했다. 

 

1960년 4.19혁명에 이어 전국적인 한일회담 반대 투쟁이 야당과 대학생 중심으로 일어나자 박정희는 위기를 느꼈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광복절을 하루 앞둔 1964년 8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지령을 받고 국가 반란을 기도한 남한 내 지하조직 ‘인민혁명당’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발표와는 달리 기소권을 가지고 있던 검찰은 고문에 의해 조작된 허구라고 주장하며 기소를 포기했다. 그러자 담당 검사를 바꿔가며 법원에 기소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만다.

 

▲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소위 ‘인혁당재건위 사건’ 불리는 2차 인혁당 사건은 1974년에 일어난다. 1972년 ‘탈냉전, 군축’을 표방한 닉슨독트린과 시민사회의 반독재 민주화운동 투쟁으로 위기에 몰린 박정희는 북한과 7.4공동성명을 발표한다. 그러나 권력을 맛본 박정희는 7.4공동성명을 외면하고 종신집권을 위해 유신헌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유신헌법 제정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 거세게 일어나며 대학생들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알려진 유신반대 투쟁을 준비한다. 이렇게 유신반대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박정희는 유신독재 반대 투쟁을 주도하였던 민청학련을 배후 조종하였다는 혐의로 소위 인혁당재건위 사건을 만들었다.

 

그리고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의 상고를 기각하고 8명의 사형을 확정했다. 국가는 다음 날인 9일 도예종을 비롯한 8명의 열사를 살인한다. 재심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무자비하게 사형을 집행한 것이다.

 

하지만 2002년 9월 12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이 고문조작 되었다고 발표한다. 이어 2005년 12월 7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진실규명위원회가 ‘인혁당 및 민청학련 사건’의 고문 조작 사실을 인정하고 20일 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차 인혁당 사건의 재심을 결정한다. 이뿐만 아니라 2006년 1월 23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자 16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공표한다. 마침내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합의 23부는 사형수 8인을 무죄로 판결했다. 이것은 소위 2차 인혁당재건위 사건 재판과정이 위법하고 부당하였음을 국가가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2021년 7월 7일 국정원은 비로소 사과한다.

 

이런 중앙정보부의 ‘정보 정치’, ‘공작 정치’는 이후 전두환 정권이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만 바꾸지만, 공안 탄압과 고문 조작사건은 계속된다. 그뿐만 아니라 군부대 내의 사찰업무를 관장하던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과거의 방첩대 특무대)까지도 민중 탄압에 동원된다. 보안사는 민주 인사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요원들을 대학가에 상주시키는 등 활동면에서는 오히려 안기부를 능가했다. 노태우 군부정권 시절 안기부의 조작사건도 헤아릴 수없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시기 국정원은 더욱더 교활하게 민중을 사찰하고 댓글 조작뿐만 아니라 국정원 특수활동비까지 청와대에 상납하는 하수인으로 전락한다. 점입가경으로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총체적 대선 개입이라는 부정선거로 당선된 박근혜는 취임 초부터 촛불시위로 국정이 마비된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소위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이라는 무리수를 저지르다, 최순실 국정농단 등으로 탄핵당한다. 여기에는 국정원뿐만 아니라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까지 개입한다. 그리고 기무사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로 유가족 사찰과 국정 여론조작 그리고 계엄령 준비 논란을 일으켜 2018년 해체되고 국군방첩사령부로 개칭된다. 

 

윤석열의 시녀, 검찰과 국정원 

 

윤석열 정권의 국면 전환용 공안사건이 도를 넘고 있다.

 

헌법은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형사소송법에서도 진술거부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이에 더해 ‘진술 자체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연행자들이 헌법이 보장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지만 국정원은 지난 2월 13일 폭력적으로 강제 인치(引致, 신체의 자유를 일정한 장소에 연행하는 것)를 하였다. 

 

또한 지난 2월 18일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과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을 국가보안법 혐의로 강제 연행했다. 체포영장의 집행과 동시에 영장에 제시된 혐의 사실과 개인 신상 언론 노출은 명백한 불법적 피의사실유포이다.

 

지난해 말부터 진보민중 운동단체 활동가뿐만 아니라 진보정당들에 대한 공안 탄압을 계속해온 국정원이 이제는 활동가들을 간첩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이는 명백한 정권 위기 탈출용 공안 조작사건이다.

 

심지어는 국정원이 총을 쏠 수 있다며 연행된 활동가를 협박하는 일도 있다. 

 

이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정원 원훈이 다시 복원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중앙정보부 시절의 원훈은 1961년부터 37년간 사용되다 김대중 정권 출범 때 고문과 사찰, 불법을 자행하는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돼 교체됐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이 이를 다시 복원한 것은 그때처럼 간첩 조작 공안몰이를 하겠다는 것이다.

 

▲ 국정원의 원훈  © 김영란 기자

 

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한술 더 떠 노골적으로 ‘국가정보원’이라는 이름이 적힌 옷을 입고, 수백의 경찰과 소방공무원을 동원해가며 무소불위의 불법과 공포를 조성하고 있다. 이는 진보민중 운동 진영을 희생양으로 삼아 작년부터 계속된 윤석열 퇴진 운동과 60%가 넘는 부정 평가, 1년 뒤 경찰로 넘어가게 될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지켜내려는 처절한 발악처럼 보인다.

 

민중은 지난 2013년, 2014년 박근혜와 정면 대결부터 시작해 결국 촛불 항쟁으로 박근혜를 퇴진시킨 위대한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국정원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 폐기가 필요하다.

 

국가보안법 존재는 일제의 ‘치안유지법’과 같이 국정원과 정부의 공작과 탄압의 발판이 될 뿐이다.

 

▲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반인권, 반민주, 반통일 악법 국가보안법은 역사 속으로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 마녀사냥 공안 탄압 국정원을 해체하라!

 

▶ 국정원 생존을 위한 공안사건 조작놀음 중단하라!

 

▶ 반민주 반인권 악법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 정권 위기 국면전환용 공안 탄압 즉각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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