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불신」
황선 | 입력 : 2023/04/13 [10:18]
불신
-황선
주종 간에 신뢰란 없는 것이다.
그 중 더 가진 자
더 부린 자
더 약탈한 자일수록
불안한 것이다.
친구여 벗이여
우방이여 혈맹이여
제 아무리 좋은 말로 불러도
‘불신’은 숙명이다.
관계의 본질이다.
비 오면 우산을 씌어주마
그 어떤 해일에도 끄떡 않는
방파제가 되어주마
그 말을 믿고 처마 밑에 엎드려 있어도
잘해봐야 행랑채 신세
말 한마디 편히 못 하고
밥 한술 떠먹는 것도 눈치다
종들이 주먹 불끈
밤마다 서러운 울음 울던 대나무 꺾어들고
말없이 수그렸던 낫이며 쟁기
하늘로 치켜들고
호통 한 번 칠 때마다
세상은 변하는 것이다.
빼앗겼던 볏섬도
도둑맞은 목소리도
내 것이 아닌 줄 알았던 권리도
이 불신의 관계를 뒤집어엎어야
제자리를 찾는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