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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안보실장은 도청 내용 때문에 해임됐을까?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3/04/16 [23:51]

김성한 안보실장은 도청 내용 때문에 해임됐을까?

문경환 기자 | 입력 : 2023/04/16 [23:51]

미국이 한국의 대통령실을 비롯해 세계 곳곳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 커다란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도청한 내용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국가안보실 외교비서관이 미국의 요청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한 대화 내용이다. 

 

이 전 비서관은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어길 수 없으므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김 전 실장은 무기 제공에 관한 발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발표를 같은 시기에 하면 ‘거래’로 보일 수 있으니 폴란드를 통해 포탄을 우회 공급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 지난해 12월 21일 사이버안보 태스크포스 운영 결과 점검회의를 개최한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 [출처: 대통령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김 전 실장과 이 전 비서관이 갑자기 사임한 것이 미국의 압력 때문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의 요구를 이행하지 않고 편법을 쓰려다가 미국이 이 사실을 도청으로 파악한 후 분노하여 윤석열 정권에 압력을 넣어 강제로 쫓아냈다는 것이다. 

 

이게 과연 타당한지 따져보자. 

 

먼저 국가안보실장의 역할을 찾아보면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국가안보실의 사무를 처리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고 되어 있으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겸한다. 

 

여기서 국가안보실은 대통령 직속 참모기관으로 국가안보의 지휘부 기능을 한다. 

 

국가안보실장은 국방부, 외교부, 통일부, 행정안전부를 사실상 지휘하며 외교, 안보, 치안을 관할하는 핵심 요직이다. 

 

국가안보실장의 미국 측 상대는 미국의 NSC를 총괄 운영하는 국가안보보좌관이다. 

 

예를 들어 한미연합훈련을 어떤 수준으로 할지 대통령이 주문하면 국가안보실장은 국방부, 외교부에 필요한 조치를 하고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에 연락해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국방부, 외교부는 방향이 정해지면 이를 실무 수준에서 집행하는 부서다. 

 

국가안보실장은 특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요구를 한국 정부에 전달해 집행하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보내라는 미국의 요구 역시 국가안보실장이 책임지고 풀어야 하는 문제다. 

 

그런데 미국이 원하는 건 어떤 식으로든 우크라이나에 포탄이 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걸 한국 정부가 실정법도, 정부 정책도, 국민 여론도, 대외 관계도 다 무시하고 무조건 밀어붙이는 식으로 풀 수도 있고, 김 전 실장이 추진한 것처럼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율하며 풀 수도 있다. 

 

당연히 미국은 후자를 선호한다. 

 

예를 들어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 관한 미국의 평가를 보자. 

 

버시바우 당시 주한미대사가 “첫 미국 방문에서 환대받으려면 한국의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에 먼저 동의해야 한다”라고 요구하자 이 대통령 측은 미국 방문 전까지 쇠고기 시장 개방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2008년 4월 9일 총선이 있어 그전에는 공식적으로 서명할 수 없다고 하여 미국과 비밀리에 협상하였다. 

 

아마 윤 대통령이었다면 무조건 밀어붙이다가 총선에서 참패해 궁지에 몰렸을 것이다. 

 

미국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최대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머리를 굴리는 이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나중에 광우병 촛불집회로 이 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자 미국 내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협상 등 민감한 사안은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미뤄 이 대통령이 위기에서 벗어나게 도와야 한다는 얘기까지도 나왔다. 

 

이처럼 미국은 자기 요구를 능수능란하게 부작용 없이 수행하기를 바라지, 자기 지시를 무식하게 밀어붙이다 한미 사이의 예속성을 드러내고 반미 감정을 키울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김 전 실장의 발언은 미국에 분노가 아닌 만족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윤 대통령 하는 행태는 정반대다. 

 

미국의 도청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위조다, 조작이다, 악의는 없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해명’을 하면서 미국을 비호하는 모습이 오히려 화를 키우고 있다. 

 

미국이 볼 때는 전혀 기특하지 않고 반대로 한심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미국통으로 꼽히는 유승민, 하태경 같은 인물들이 정부 처사를 비판하며 미국에 항의하라고 촉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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