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133주년 노동절이다.
서울을 포함 전국 15개 광역시·도에서 13만 명(서울 3만 명)의 조합원과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모여 ‘2023년 세계노동절 대회’를 개최하였다.
민주노총은 이번 대회에서 양경수 위원장의 대회사를 통해 “노동절은 투쟁의 역사입니다. 하루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해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나선 날입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기치 아래, 모든 노동자가 함께 투쟁하는 날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서 “윤석열 정권 1년, 우리 사회는 철저히 망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굴욕외교로, 미국에는 조공 외교로 제국주의자들에게는 박수받고 민중들에게는 비판받고 있습니다. 신냉전, 미중 패권전쟁의 한복판에서 경제도, 주권도, 한반도 평화도 모두 내팽개치고 오로지 한·미·일 군사동맹을 부르짖으며 폭주하고 있습니다. 외국만 나가면 사고 치는 대통령을 출국금지라도 시켜야 할 상황입니다”라고 윤석열 정권 심판을 주문했다.
또한 격문을 통해 “가자! 총파업으로! 반노동 반민중 윤석열 정권을 끝장내는 총파업이다! 거대한 민중항쟁의 시작을 알리는 총파업이다! 노동자 민중의 세상을 쟁취하는 총파업이다! 가자! 총~파업이다”라고 투쟁 전선에 나서자고 호소했다.
1889년 7월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파리에서 개최된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미국 노동자의 8시간 노동시간 운동을 보고 받고 1890년 5월 1일을 ‘메이데이(노동절)’로 정해 세계적인 연대 시위를 결의했다.
이후 노동절은 전 세계에서 노동해방을 위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1880~1890년대 노동자 운동 배경
18세기 후반은 산업혁명의 시기였다. 산업혁명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미국 또한 엄청난 토지 경작과 석탄 채굴 그리고 철도 건설 등 힘들고 비위생적이며 위험한 노동을 할 수 있는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했다. 여기에 주로 유럽과 중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새로운 노동력으로 대체된다.
그리고 미국은 흑인 노동자, 백인 노동자, 중국인 노동자, 유럽 이민 노동자, 여성 노동자의 희생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룬다. 그러면서 자본가들은 인종, 성별, 출신 국적, 사회 계급 등에 따라 차별적으로 보수를 주며 교묘하게 분리 계층화했다.
또한 1880년대 550만, 1890년대에는 400만 명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주민이 유럽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노동력이 과잉 상태가 되면서 임금은 계속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민자들은 미국 노동자보다 통제가 수월했고 저항이 없었다.
그러면서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경쟁이 이민자들 간에 벌어졌다.
한 예로 1880년경 저임금으로 고된 노동을 시키려고 철도회사들이 중국인 이민자들을 유입하는데 캘리포니아에서 7만 1천 명에 이르렀다. 거의 전체 주민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수였다. 그런데 백인들은 중국인 광부들을 습격해 잔인하게 학살하곤 했다.
1880년대와 1890년대에 노동자, 농민의 거대한 운동이 전국을 휩쓸었다. 이 운동들은 1830~1877년 시기의 산발적인 파업과 소작인 투쟁을 능가했다. 그것은 전국적인 운동이었으며 과거 어느 때보다도 국가와 자본가에게 위협적이었다.
마침내 남부의 사탕수수 농장들에서도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당시 미국 주요 도시에는 혁명조직들이 존재하며, 혁명적인 논의가 무성한 때였다.
총파업과 헤이마켓 광장 집회
미국은 1886년에 노동운동이 최고조에 이른다.
5월 1일, 이제 5년째로 접어든 미국노동연맹은 8시간 노동을 거부하는 모든 공장에서 전국적인 파업을 벌일 것을 호소했다.
전국 1만 1,562개 공장에서 약 35만 명이 파업에 돌입했다.
디트로이트는 1만 1천여 명의 노동자가 8시간 노동제 행진을, 뉴욕은 2만 5천여 명이 브로드웨이를 따라 횃불 행진을 벌였는데 제빵공노동조합(Bakers’ Union)의 3,400명이 행렬의 선두에 섰다.
좌파의 본거지 시카고에서는 4만여 명이 파업을 벌였고, 4만 5천 명이 파업 예방조치로 노동시간 단축을 얻어냈다. 시카고의 모든 철도가 운행을 멈췄고 대부분의 산업이 마비됐다. 5월 3일, 파업 노동자와 동조자들이 파업파괴자들과 싸우고 있던 매코믹 수확기 공장 앞에서 경찰의 발포로 노동자 다수가 상처를 입고 노동자 4명이 사망했다.
이에 격분한 노동운동 지도자 스파이스는 전단을 만들어서 뿌린다.
복수를! 노동자여, 무기를 들라!! 여러분은 오랫동안 비천하기 짝이 없는 굴욕을 감내해 왔다. …중략… 여러분은 죽도록 일만 했으며, …중략… 자식들을 공장주에게 희생물로 바쳤다. 다시 말해 이 모든 세월 동안 비참하고 굴종적인 노예였던 것이다. 왜 그랬는가? 게으른 도적 주인들의 한없는 탐욕을 만족시키려고? 저들의 금고를 가득 채워 주려고? 이제 여러분이 짐을 덜어 달라고 저들에게 요구하자, 저들은 사냥개를 풀어 총을 쏘아 여러분을 죽였다! …중략… 무기를 들라고 호소한다, 무기를 들라고!
5월 4일, 헤이마켓 광장에서 집회가 소집되어 약 3천 명이 모였다. 집회는 조용하게 진행됐고 먹구름이 몰려와 군중은 몇백 명으로 줄어들었다. 경찰 파견대는 군중을 해산시키라고 명령하고 연사는 집회가 거의 끝나간다고 말했다. 그때 경찰 대열 한가운데서 폭탄이 터졌다. 경관 66명이 상처를 입고, 그중 7명은 죽는다.
경찰은 군중들에게 총을 쏘아 몇 명을 살해하고 200명에게 상처를 입혔다. 누가 폭탄을 던졌는지 아무런 증거가 없었지만, 경찰은 시카고에서 8명의 무정부주의 지도자를 체포했다.
노동절(메이데이)의 기원
사상과 글을 증거로 8명의 무정부주의자에게 배심원단은 유죄를, 판사는 사형을 선고했다. 항소는 주 대법원에서 자신의 관할이 아니라고 말해 기각됐다.
당시 연설을 하고 있던 필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헤이마켓 광장에 있지 않았다. 재판이 있은 지 1년 뒤, 유죄 판결을 받은 무정부주의자 가운데 4명을 교수형에 처했다.
사형집행은 전 국민을 분노케 했다. 시카고에서는 2만 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 행렬이 벌어졌다.
그리고 7년 후에 무정부주의자 행세를 했지만, 경찰의 끄나풀이 돈을 받고 폭탄을 던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노동운동 탄압을 위해 조작된 사건으로 이에 따라 수백 명이 체포되고 시카고 혁명 운동 본부는 파괴된다.
하지만 헤이마켓 사건은 메이데이를 낳게 했다.
노동절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을 상징하는 날이다.
스파이스 법정 최후진술
당시 투쟁을 이끌던 노동운동 지도자 스파이스가 사형선고를 받고 법정에서 한 최후진술은 노동자의 통일단결을 주문하고 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애겠단 말인가! 그렇다.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 앞에서 뒤에서 사면팔방에서 끊일 줄 모르는 불꽃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들불이다. 당신이라도 이 들불을 끌 수는 없으리라.
이제 우리는 윤석열 정권에 맞서 스파이스의 신념처럼, 노동자 총단결로 총반격하여야 한다.
이게 나라냐! 이대로는 못 살겠다! 퇴진하라! 퇴진하라! 퇴진하라! 민중이 꿈꾸는 세상은 촛불혁명의 광장에 나온 만큼 전진한다! 추록자 불고토(追鹿者 不顧兎), 사슴을 쫓는 사람은 토끼를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전필승 공필취(戰必勝 攻必取), 전쟁을 하면 반드시 원하는 바를 얻어야 한다! 총반격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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