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의 고위급 관리들이 뉴욕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료와 관련한 비밀 회담을 가졌다는 미국 발 보도가 나왔다.
지난 6일(현지 시각) 미국 NBC방송은 미국의 전·현직 관리 6명을 인용해 지난 4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연락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의 고위급 외교 정책 인사들이 뉴욕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측 인사들은 미국 측의 리처드 하스 당시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 CFR의 러시아 전문가 토머스 그레이엄, 찰스 쿱찬 조지타운대 국제학 교수 등과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회담을 진행했다고 NBC는 전했다.
NBC에 따르면 미국이 회담을 한 목적은 러시아와 꾸준한 소통 유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종료를 둘러싼 향후 협상, 러시아와 타협 및 교섭의 여지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었다.
회담은 관리와 민간(학자, 전문가)이 함께 참여하는 이른바 트랙 1.5(반관반민) 대화, 민간인만 참여하는 트랙 2 대화 형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민간이 참여하는 회담은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지만, 적대국의 관리들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충돌을 누그러뜨리는 측면도 있다. 미러 양국은 이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문제에 깊숙이 관여해온 전 국방부 관리들과 메리 베스 롱 전 국방차관보 등도 배석했다고 NBC는 전했다.
나토와 관련한 미국 인사가 참여했다는 점에서 미국과 러시아는 ‘나토의 전선 후퇴’와 관련한 논의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러시아는 미국이 나토를 러시아 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우크라이나를 사실상 나토에 편입시켰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러시아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은 지금도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NBC는 이번 회담에서 오간 내용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보고됐다면서, 이번 회담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NSC가 미국의 대외·국방정책을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이러한 NBC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이를 볼 때 미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료 논의와 관련한 바이든 대통령의 관여가 드러나는 걸 꺼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로서는 회담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법하다.
미 언론을 통해 비밀리에 진행되던 회담 내용이 알려진 건 미국이 러시아와 대화를 하고 있음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회담에 우크라이나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시할 만한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회담에서 미국과 러시아만 비밀리에 만났다는 건 결국 우크라이나에는 선택권이 없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판단과 결정에 의존하고 있음을 추정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