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20일 만에 관객 수 700만 명을 넘겼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최고 흥행작이 됐는데 더욱 많은 사람이 봤으면 한다. 영화의 짜임새와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실제 현실이 겹쳐 떠오르며 여운이 짙게 남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 지인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관람 전 우리는 영화가 얼마나 재밌을지 기대하며 들떠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안에는 왠지 모를 씁쓸함이 남았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영화는 군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통령이 총을 맞고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시작된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이 된다. 이후 계엄법에 따라 전두광 보안사령관이 합동수사본부장이 되어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안기부도 대통령비서실도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라의 모든 정보를 손에 쥔 전두광은 자신을 위하는 사조직인 하나회를 등에 업고 날뛰기 시작한다.
이를 불안히 여긴 정상호는 오국상 국방부 장관에게 전두광 등 하나회 구성원들을 좌천시켜야 한다고 건의하지만 전두광이 “억지로 쑤셔 넣어서 어쩔 수 없이” 무언가 받은 오국상은 그러지 못한다. 오히려 그 자리에 있었던 하나회 군인들을 통해 이 소식이 전두광에게 흘러 들어간다.
전두광과 하나회는 옷을 벗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려는 반란 계획을 세운다. 비슷한 시각 정상호는 전두광의 폭주를 막기 위해 이태신을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임명한다.
그렇게 12월 12일 하나회 군인들의 반란이 시작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전두광과 이태신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국방부 장관 오국상이다. 영화 초반 서울 시내에서 총소리가 나자 오국상은 가족들을 데리고 황급히 도망쳤다. 또 영화 중반 반란군이 육군본부로 진격할 때 “국방부 장관이 뭐 육본 지키는 자리야?”라며 육군본부 지하에 몸을 숨긴다. 오국상이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자 영화관에서는 옅은 웃음이 흘렀다.
그러나 상황이 점점 급박해지는 영화 후반부 쿠데타를 돕는 오국상의 모습이 나오자 사람들의 반응은 답답한 마음이 섞인 한숨으로 바뀌었다.
오국상은 무능한 인물이다. 무능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보신, 목숨과 안위만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영화 후반 오국상은 전두광에게 끝까지 맞서는 이태신을 직위해제 해 버린다. 또 반란군의 편을 들어 최한규 대통령에게서 보안사의 정상호 체포와 반란을 정당화하는 사후 승인을 받아내는 등 쿠데타를 적극 돕는다.
전두광의 반란에서 손발 노릇을 했던 것이 하나회였다면, 쿠데타를 완성시켜 준 것은 오국상이었다. 이렇게 무능한 자가 중요한 자리를 꿰차고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영화는, 그리고 역사는 알려준다.
돌아보면 영화에서는 전두광과 하나회의 쿠데타를 막을 수 있는 기회들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오국상처럼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보신, 안위만을 걱정하는 무능한 자들이 그 기회를 날려 버렸다. 그 틈을 타 전두광과 반란군 세력은 군 조직에 사방팔방 뻗친 하나회 세력으로 도·감청과 회유, 무력을 동원해 끝내 권력을 거머쥐게 된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본 어떤 이는 영화의 주제를 ‘기회’라고 짚었다. 결국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수하고 아까운 기회들’, ‘누군가의 잘못된 판단으로, 용기 내지 못한 누군가의 불참으로, 잘못된 자리에 앉은 무능한 인물 때문에 날아가 버린 기회들’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또 다른 주제는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기억의 중요성 역시 일깨워준다. 전두광과 하나회가 역사의 범죄자임을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 현실에서 국가는 그들을 끝내 심판하지 못했고 전두환은 감옥 바깥에서 편안히 죽었다. 하지만 영화가 비춘 40여 년 전의 기억은 전두환과 하나회가 저지른 쿠데타를 현실로 불러냈다. 특히 쿠데타를 직접 겪지 않은 2030 젊은이들이 흥행을 주도하는 점이 인상 깊다. 12월 4일 기준 CGV 예매 앱 관객 연령별 비율을 보면 30대가 30%로 가장 높다. 이어 20대(26%), 40대(23%), 50대(17%), 10대(4%) 순이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2차 관람’했다는 인증도 이어지고 있다.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를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의 의미가 클 것이다. 영화 「서울의봄」이 결코 잊어선 안 될 역사를 실제 현실로 다시금 끄집어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영화를 강력히 추천한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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