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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거부한 자가 범인이다. 윤석열을 끌어내리자!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 기사입력 2024/01/17 [14:23]

[기고] 거부한 자가 범인이다. 윤석열을 끌어내리자!

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 | 입력 : 2024/01/17 [14:23]

한국갤럽이 지난 12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긍정 33%, 부정 59%인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들은 부정 평가의 이유로는 ‘경제·민생·물가’(16%), ‘거부권 행사’(10%), ‘외교’ ‘소통 미흡’(각각 7%)을 택했다. 

 

부정 평가 이유 중 윤석열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가 2위이다.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만 무려 8개이다.

 

 

남발하는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역대 대통령 중 취임 2년간 8건이라는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헌법소원 여부를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최근 국회를 통과한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서도 거부권 행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양곡관리법 ▲간호법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에 대해 ‘입법 과정에서 충분한 협의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남발했다. 

 

또한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특검법 등에 대해서는 ‘선거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구실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용서받지 못하는 권력 남용(濫用)이자 노골적 재벌 편들기이다.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민중의 권익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용납할 수 없다.

 

특히 아내 김건희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어느 시기에도 없던 권력의 전횡(專橫)이다.

 

새해 들어서 나온 각종 여론조사 중 ‘특검법 찬성 및 거부권 반대’가 65% 안팎에 이르렀다. 압도적 여론이다.

 

지난 1일 보도된 문화방송(MBC) 여론조사에서는 거부권 행사에 ‘동의하지 않는다’가 64%, ‘동의한다’가 31%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중도층에서는 71%가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같은 날 보도된 경향신문의 기사에서는 거부권 행사에 ‘부적절하다’가 62%, ‘적절하다’가 23%였다. 중앙일보 또한 응답자의 65%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의견이었다.

 

응답자들은 배우자 김건희 방탄용 거부권 행사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을 대통령이 아니라 아내를 지키는 한 가정의 졸장부 남편으로 보고 있다.

 

▲ 지난해 11월 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한 윤석열 대통령 부부.  © 대통령실


역대 대통령들은 가족들의 금전 의혹 문제에 대해서는 엄격했다. 그리고 모든 대통령은 가족 문제를 모두 수사했다. 

 

대통령들은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해 거부권 행사를 자제하거나 친인척 수사에 성역이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

 

그러나 윤석열은 옹졸하게도 자기 아내를 위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자식을 끔찍이 사랑했던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도 자녀 비리에 대해 국민 앞에서는 대국민 사과를 하며 용서를 빌었다.

 

 

김영삼 대통령과 둘째 아들 ‘문민 황태자’ 김현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1년은 동아일보 1994년 2월 14일 자 「대통령만 뛰었다」라는 연재 기사 제목으로 압축된다. 부인 손명순 여사는 “대통령은 집에 와도 저녁 식사하면서 전화를 하고, 텔레비전 보고 신문 보고 서류를 챙기는 바람에 내조할 틈이 없다. 그래서 재미도 없다”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와 1995년 4월 28일 대구 지하철 폭발 사건 그리고 그해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참사로 김영삼 정권은 붕괴하기 시작한다.

 

리영희는 한겨레 1997년 2월 17일 자에 「김 대통령에 드리는 고언」이라는 특별 기고에서 “말씀드리기 심히 괴롭지만 요즘 나라의 정황은 ‘말기 증세’적 징후로, 온 국민이 절망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해방 후 대통령과 동세대적 역사를 찾아온 나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의 말기 현상을 보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승만 정권의 1959년 상황을 회상하게 합니다. …중략… 최근 사태의 발단인 노동법과 국가보안법의 처리 방식은 대통령께서 혹시 힘의 논리에 너무 도취되어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갖게 합니다”라고 했다.

 

이런 국정 운영 난맥(亂脈) 속에, 둘째 아들 김현철이 모든 고급 정보를 독식하는 ‘1인 안기부’로 군림하면서 김영삼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김현철은 김영삼 정권 출범 당시 겨우 34살로 ‘문민 황태자’, ‘리틀 YS’ 등으로 불릴 만큼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미 그는 ‘소통령’ 또는 실질적인 대통령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성역’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한보 특혜 대출 비리 사건의 여파가 정국을 강타하면서 김현철이 이 사건의 배후라는 의혹이 쏟아졌다.

 

김영삼은 아들을 불러 추궁했다. 김현철은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자 김영삼은 검찰총장에게 김현철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1997년 2월 21일 김현철은 검찰에 출두해 밤샘 조사를 받고 무혐의로 풀려났다. 하지만 그의 국정 개입 의혹이 터져 나왔다. 결국, 김현철은 1997년 5월 알선수재와 조세포탈 등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1997년 2월 25일 김영삼은 취임 4주년을 맞아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저를 더욱 괴롭고 민망하게 하는 것은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제 자식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략…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매사에 조심하고 바르게 처신하도록 가르치지 못한 것, 제 자신의 불찰입니다. 만일 제 자식이 이번 일에 책임질 일이 있다면 당연히 응분의 사법적 책임을 지도록 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둘째 아들 김홍업 씨, 셋째 아들 김홍걸 씨 비리 연루 의혹

 

1997년 대선 때 김대중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후보와 단일화를 하고, 박태준까지 함께했다. 그리고 이인제가 여권표를 500만 표 가까이 잠식하여, 4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김대중은 약 40%의 득표로 50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김대중은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합을 통해 박빙으로 겨우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국민을 통합시키고, 외환위기(IMF) 사태를 극복해야 했다. 

 

김대중은 늘 이런 정치 구도를 염두에 두고 자민련과 함께 국정 운영을 했다. 보수인 김종필·박태준·이한동을 총리로 임명하여 정부 운영을 맡겼고, 그는 새천년을 맞는 한국 사회에 희망을 제시하는 데 집중했다.

 

그 결실이 남북정상회담이다.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이 순안공항에 도착하여, 마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두 손을 맞잡는 모습은, 전 세계와 한국인에게 놀라움과 큰 감동을 안겨 주었다. 서울도 평양도 민족 모두는 울었다.

 

과거를 잊고 남북 정상은 앞으로 후퇴는 없다면서, 민족에게 새천년의 큰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은 그야말로 난관의 연속이었다.

 

미국을 설득하고 무엇보다 남·남 갈등과 지역주의로 갈라질 수 있는 여론을 신뢰와 용기로 돌파했다.

 

여기에는 인터넷이 급속하게 확산하여, 네티즌의 영향력이 큰 역할을 했다. 

 

2000년 2월 말 당시 인터넷 이용자 수는 1,297만 명에 이르렀지만, 인터넷의 보급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빨랐다. 전 국민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있는 시대가 이루어지면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정권과 권력에 대한 감시와 참여 소통이 왕성했다.

 

그러나 그런 김대중에게도 자식 문제가 터졌다.

 

2002년 봄 김대중의 둘째 아들 김홍업과 셋째 아들 김홍걸에게 비리 연루 의혹이 제기됐다. 그는 미국에 있던 김홍걸에게 부속실장을 보내 진상 파악을 한 뒤 “조속히 귀국해서 검찰 수사를 받으라”라고 지시했다. 김홍걸은 5월 16일 귀국해서 이틀 뒤 구속됐다. 김홍업도 6월 21일 구속됐다. 

 

그리고 김대중은 그날 오후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저는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껴 왔으며, 저를 성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마음의 상처를 드린 데 대해 부끄럽고 죄송한 심정으로 살아왔습니다. 제 평생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렇게 참담한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조차 못 했습니다. 이는 모두가 저의 부족함과 불찰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거듭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그는 재임 중에 두 아들이 청와대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가족 비리 구속 잔혹사(殘酷史)’와 ‘곧바로 사과’

 

이뿐 아니라 다른 역대 대통령들도 ‘가족 비리 구속 잔혹사’가 있다. 

 

‘대통령 가족 비리 구속 잔혹사’는 대통령 한 사람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다.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부독재 시대에는 비자금과 가족 그리고 친인척들의 비리 의혹이 많았지만, 권력과 수구 언론들의 비호로 진상이 다 드러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1987년 체제 이후’ 취임한 대통령들은 가족 문제를 감출 수 없게 됐다.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 곧바로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비리 의혹의 당사자들은 민정수석실 감찰이나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형 노건평 부동산 투기 의혹과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구속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등은 모두 사과했다.

 

윤석열 또한 2년 전 2021년 12월 29일 경상북도 선대위 출범식에서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졌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 대장동 특검하자고 그러니까 무슨 고발 사주까지 끼워 넣어서 하자고 해서, 저는 하라고 그랬습니다. 왜냐? 걸릴 게 없으니까. 근데 이 사람들은 왜 안 합니까? 진상을 밝히고 조사를 하면 감옥에 가기 때문에 못 하는 겁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런데 윤석열은 김건희 여사가 부적절한 처신으로 이런저런 구설에 오르고 장모가 구속됐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어디까지나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리에 따라, 입법부가 명백히 부당한 법률을 제정하려고 하는 경우에만 대항 수단으로써 사용돼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특검의 의미는 과거에 비할 수 없이 중요하다. 정권과 검찰이 한 몸인 초록동색(草綠同色) ‘검찰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김건희 특검’ 거부는 권력 사유화요 ‘이해충돌방지법’에 저촉된다.

 

헌법과 법률로 부여된 권한이라도 공직자가 사적 이익을 위해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가 직무를 수행할 때 본인이나 가족 등 사적 이해관계자가 관련돼 있으면 스스로 회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다!

거부권 남발 윤석열 정권 끌어내리자! 

 

민중은 단 하루도 윤석열 정권과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

 

올해 총선 패배는 곧 식물대통령이라는 것을 윤석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방송장악과 포퓰리즘 정책 그리고 국정원, 검찰, 경찰정 등 휘하 기관들을 총동원하고 거부권을 남발하고 있다.

 

민중은 남은 4개월 동안 총력 집중해야 한다.

 

탄압이면 항쟁이다!

반헌법 반민생 반민주 반평화 윤석열 정권 몰아내자!

반제·자주·민주·평화애호 세력은 총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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