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반복되는 대북 정책 실패의 배경에는 북한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편견,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있다. 이를 깨지 않고서는 남북관계를 정상화할 수 없다.
북한은 독재국가인가
한국에는 북한이 독재자의 나라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권에 이런 인식이 흔하다. 사회주의 국가가 등장할 때부터 자본주의 지배층은 사회주의 국가를 독재국가로 묘사해 왔으니 백 년도 더 된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조차 이런 관념에 사로잡힌 경우가 있을 정도로 심하다.
1) 직접 확인한 결과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진행한 남북정상회담 사진과 중계 영상을 통해 우리 국민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2018년 4월과 9월 남북정상회담은 생중계해서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었다. 요즘은 사진과 영상 기술이 발달해서 초고화질로 자세히, 말 그대로 손 떨림과 눈빛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직접 보면서 거기서 독재자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만약 그런 모습이 있었다면 사진·영상 전문가, 음성학자, 심리학자, 심지어 관상가까지 불러서 인물 분석을 하는 종편이 가만히 있었을 리 없다. 그동안 북한을 악의적으로 묘사하던 종편조차 시청자를 설득할 수 없다고 봤는지 대세에 편승했다.
우리 국민이 독재자로 여기는 대표적인 인물 사진과 북한 지도부의 사진을 비교해 보자.
2018년 4.27남북정상회담 직후 MBC 여론조사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비율이 무려 88.7%나 되었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신뢰가 간다는 답변도 77.5%나 나왔다. 생중계로 직접 본 결과 독재자라는 인상을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나본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봐도 독재자라는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아주 예의 바르고 솔직담백하면서 연장자들을 제대로 대접하는 그런 아주 겸손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하였고 “상당히 유연성이 있고 결단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느꼈다”, “매우 솔직하고 의욕적이며 강한 결단력을 보여줬다”, “국제적인 감각도 있다”라고 하였다.
김영춘 당시 해양수산부장관은 “젊은 지도자인데 나이에 비해 의연하고 대범한 자세로 회담과 비공식 일정까지 수행했다”라며 “문 대통령이 식당, 백두산 등을 가시면 항상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겸손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라고 하였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첫째, 스타일이 굉장히 소탈하고 정직하고, 거짓말 안 하고. 사진을 찍는데 누가 찍어주려고 하니까 내가 찍어줄게 이렇게 나올 정도로 소탈하고요. 그다음에는 결국 굉장히 열려 있어요”라면서 “더 인간적으로 되고 소위 자본주의, 서방 지도자도 따라 하기 힘들 정도로 열려 있는 걸 봤습니다”라고 하였다.
정동영 당시 민주평화당 대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내가 아직 서울에서 환영받을 만큼 일을 많이 못 했다’고 말했다”라며 “평양 시내 10만 인파가 나와 문재인 대통령을 대환영했는데, 김 위원장도 서울에 오시면 환영받을 것이라고 했더니 겸손한 화법으로 답변한 것”이라고 하였다. 또 “평양 시내 퍼레이드를 할 때 무개차에 하나 있던 자리를 남쪽 경호처장에게 양보했다”라며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었던 것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에 오게 되면 그만큼 대접할 수 있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이정미 당시 정의당 대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샤이한(수줍음을 타는) 스타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지도자로서의 단호함과 여유도 있었지만 수줍게 웃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남쪽에서 가신 분들이 북한에 대해 칭찬할 때 김 위원장이 굉장히 수줍게 웃었다”라며 겸손한 자세에 관해 이야기했다. 또 “우리가 예전에 생각했던 북한 지도자들과는 달리 상당히 열려있었다”라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편안하게 어울리고, 소통하는 모습들도 놀라웠다”라고 이야기했다.
박지원 당시 민주평화당 의원은 “굉장히 진취적이었다. 시대에 맞는 사고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최문순 당시 강원도지사는 “북한판 탈권위, 새로운 리더십을 보이는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또 “김 위원장뿐 아니라 정권 고위직들의 세대교체가 많이 됐다. 과거와 비교해서 훨씬 유연한 리더십을 보이고 있고 그런 분들이 국가 운영의 방향을 경제로 나아가게 하고 있고 북한 주민들에게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라며 “그런 것들이 국정 전반에 녹아들어 있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직접 만나본 사람 중 누구도 독재자로 느꼈다고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국내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난 사람 가운데 독재자로 느꼈다는 말을 한 이는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매우 영리한 사람이자 위대한 협상가”, “아주 전략적인 사람”, “굉장히 재능이 있는 사람”, “위대한 인격에 매우 영리하다. 좋은 조합”이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능력을 수없이 반복해서 찬양했다.
대북 강경파의 대표 주자였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자신감과 확신에 차서 지휘하고 있는 걸 봤다”라며 대단히 결단력 있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2) 안정된 정치 체제
북한은 지금도 정치가 아주 안정되어 있다. 정부 수립 이후 76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주 안정되어 있다. 만약 북한이 독재국가라면 이렇게 오랜 기간 정치 안정을 유지할 수 있겠는지 깊이 살펴봐야 한다. 독재 치하라면 반발과 저항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실 반발과 저항이 없다면 독재를 할 필요도 없다.
혹자는 북한이 통제를 강화해서 반발이나 저항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예를 들어 탈북자 문제를 보자.
만약 북한이 독재국가이고 반발과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통제 사회라고 한다면 탈북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설사 탈북에 성공한다고 해도 중국에서 붙잡혀 북송될 경우 엄청난 처벌을 받고 이후 철저한 감시와 통제로 인해 재탈북은 정말 불가능할 것이다. 남은 가족들 역시 처벌을 받거나 철저한 감시와 통제 아래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상당히 많은 탈북자가 여러 차례 탈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20회가 넘게 탈북과 북송을 반복한 이도 있다. 북송되면 이른바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간다는 일부 탈북자의 주장과 달리 대다수 탈북자는 북송되어도 가벼운 조사와 처벌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재탈북이 어렵지 않다고 증언한다. 또 가족 가운데 한 명이 먼저 탈북해 중국에 자리를 잡은 뒤 나머지 가족이 차례로 탈북하는 경우도 많다. 감시와 통제가 강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보아도 군부독재 치하에서 민주화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 군부독재의 감시와 통제가 느슨했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다. 한국의 독재 체제가 허약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독재 세력은 스스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 정도로 권력이 대단했고 방대한 정보기관과 공안기관으로 국민을 감시하고 억압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목숨을 걸고 독재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 한국의 독재 체제를 약하게 만들고 결국 군부독재를 몰아내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같은 민족인데 북한 국민들만 독재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혹자는 ‘세뇌’를 당해서 그렇다고도 하는데 사실 세뇌로 치면 한국의 독재정권이야말로 일가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보기관 요원이 언론과 방송에 상주하면서 기사와 대본을 일일이 검열하고 아예 써주기까지 하면서 독재자를 찬양했다. 아침저녁으로 국기 게양식, 국기 하강식을 하며 충성을 맹세하게 강요하였다. ‘땡전뉴스’라는 것도 있었다. 또 북한을 지옥으로 묘사하며 북한에는 얼굴이 빨갛고 머리에 뿔이 난 도깨비가 산다고 믿게 만들었다. 지금도 언론과 방송은 ‘윤비어천가’에 이어 한동훈 미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대중은 현명하며 끝내 정권의 세뇌 공작을 이겨냈다.
따라서 감시와 통제 때문에 북한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어 보인다고 할 수는 없다. 또 북한이 독재국가라면 모순이 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조국 전 장관의 이상한 글
얼마 전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국정 기조를 바꾸라는 고언을 하다가 경호원들에게 끌려 나가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이 장면을 보고 윤석열 정권의 반민주 행태에 격분하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을 했던 조국 전 장관은 이 장면을 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의 장성택이 떠올랐다고 하였다. 장성택은 북한의 고위 간부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고모부였지만 2013년 12월 8일 ‘반당 행위, 분파 책동’ 등의 혐의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자리에서 체포되어 재판 끝에 사형을 받았다.
북한은 언론 보도를 통해 장성택이 “당의 통일 단결을 좀먹고 당의 유일적 영도 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저해하는 반당 반혁명적 종파 행위를 감행하고 강성국가 건설과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한 투쟁에 막대한 해독을 끼치는 반국가적, 반인민적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여러 죄목 가운데는 ▲국가 재정 관리 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나라의 귀중한 자원을 헐값에 팔았고 ▲권력을 남용해 부정부패를 일삼고 여러 여성과 부당한 관계를 맺었으며 ▲마약을 쓰고 도박을 하였다는 내용도 있다. 북한의 발표에 따르면 부정부패 사범을 엄하게 다스린 것이다.
당시 국내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장성택을 ‘북한의 2인자’라고 불렀다. 최고지도자의 친인척에 고위직까지 차지했으니 그렇게 볼 법도 하였다. 그런데 북한의 발표에 따르면 ‘권력 서열 2인자’도 부정부패를 하면 가차 없이 처벌받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장성택이 고위직에 있고 최고지도자와 친인척 관계라는 이유로 부정부패를 저질러도 눈감아 준다면 오히려 그게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김건희 씨가 대통령 부인이라는 이유로 공개·확인된 범죄에 관해 수사도 받지 않고 대통령의 거부권 방탄 보호를 받는 한국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대만의 장제스 총통 사례와 비교해 보자.
장제스가 이끌던 국민당 정부는 부정부패에 찌들대로 찌들어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을 압도하는 전력을 갖췄음에도 끝내 본토를 버리고 대만으로 쫓겨났다. 나중에야 장제스는 국민당 내부의 부정부패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칼을 빼 들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지만 본토 수복을 위한 와신상담의 길을 택한 것이다.
부정부패 척결 첫 대상은 놀랍게도 장제스의 조카며느리였다. 장제스의 조카며느리는 당시 국민당 권력층이라면 누구나 하던 밀수를 하다가 발각돼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었다. 장제스는 권총이 든 상자를 조카며느리에게 선물로 보냈다. 자살을 권한 것이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조카며느리는 권총 자살 대신 체포돼 장기간 수감생활을 했다고 한다. 또 국민당 인사부장이었던 육촌 동생도 비슷한 이유로 사형을 당했다. 이런 노력으로 대만 정부의 공직 비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장제스의 단호한 처신을 두고 ‘잔인하다’, ‘폭군이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친인척에게 엄한 칼날을 겨눈 덕에 대만을 건강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북한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
이렇게 보면 대통령에게 고언을 했다는 이유로 행사장에서 끌려 나간 강성희 의원과, 부정부패를 저질러 회의장에서 체포되어 순순히 퇴장한 장성택은 그다지 공통성이나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조국 전 장관은 왜 두 장면을 연결했을까?
혹시 조국 전 장관은 북한이 발표한 장성택의 범죄들이 사실이 아니며 누명을 썼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객관적 근거가 있는 것일까? 있으면 그것을 공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이다. 조국 전 장관도 기레기와 정치 검찰이 퍼뜨린 가짜 뉴스로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인데 북한에 관해 북한 당국과 다른 말을 하려면 그만한 객관적 근거를 대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것이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는 자신의 격에 맞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당시 국내 정보기관이나 통일부 관계자들도 장성택이 정변을 준비하고 있다거나 부정부패가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심지어 경제시찰단 일원으로 서울에 왔을 때 매일 고급 양주를 마셨고 “자본주의 문화를 맛보자”라며 강남 룸살롱에 데려다 달라고 요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북한을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올바른 대북 정책의 출발은 북한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듯 북한을 잘 알아야 남북관계가 위태롭지 않을 수 있다.
북한을 잘 알자는 것이 무슨 ‘친북’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자는 것이다.
북한을 독재국가로 믿는 국민들이 정작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77.5%나 신뢰하고 남북정상회담을 88.7%나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북한을 객관적으로 볼 때 대북 정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기에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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