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분석] 한국의 미래 먹거리, 반도체 산업을 무너뜨리려는 음모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4/03/06 [14:58]

[분석] 한국의 미래 먹거리, 반도체 산업을 무너뜨리려는 음모

문경환 기자 | 입력 : 2024/03/06 [14:58]

한국 정부가 한국 기업을 압박하다니?

 

2월 23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충격적인 내용을 보도했다. 

 

미국의 웨스턴디지털(WD)과 일본의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 합병을 반대하는 SK하이닉스에 미일 정부와 함께 윤석열 정부도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있는 웨스턴디지털 본사 사옥.  © Coolcaesar


세계 3~4위 낸드플래시 업체인 웨스턴디지털과 키옥시아의 합병 문제는 몇 년 전부터 반도체 업계의 관심사였다. 

 

만약 합병에 성공하면 업계 1위인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며 2위인 SK하이닉스는 3위로 밀려난다. 

 

낸드플래시를 비롯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전형적인 소품종 대량생산 업종이기에 규모가 클수록 유리하며 시장 점유율에서 밀리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도태될 수 있다. 

 

이에 키옥시아 지분의 19%를 간접 보유한 SK하이닉스가 합병을 반대하였다. 

 

이는 SK하이닉스가 살아남는 길이면서 동시에 삼성전자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경제 2021년 11월 13일 자 기사 「“1위 삼성 타도” 美·日의 M&A…SK하이닉스에 발목잡혔다」의 제목만 봐도 어떤 상황인지 쉽게 짐작이 가능하다. 

 

이봉렬 기자는 올해 2월 28일 자 오마이뉴스 기사 「일본 언론의 충격적 보도...윤 대통령님, 설마 이거 사실입니까」에서 “한 번의 실수로 뒤처지기 시작하면 회복하기 어려운 곳이 반도체 산업”이라면서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업계 2위 자리를 내주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밀려날지도 모를 일”이라고 우려하면서 SK하이닉스가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반대로 중단됐던 합병 협상이 오는 4월 재개된다고 한다. 

 

신문은 “내부에서는 ‘정치적 압박을 가하면 (SK하이닉스가) 납득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시각도 있었던 것 같다”라며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당시),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장관, 한국 윤석열 정부 등 ‘관계자 일동이 혈안이 돼 설득’했다”라고 보도했다. 

 

반도체 산업을 키우려는 미국이나 일본 정부는 합병을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주저앉히고 싶겠지만 한국 정부는 자국 기업을 지키기 위해 SK하이닉스를 응원해야 정상이다. 

 

중국의 경우 자국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합병에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한국 경제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반도체 산업을 무너뜨리기 위해 한국 기업을 압박한다?

 

우리 국민 처지에서는 미일 정부가 자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한국 기업을 압박하는 것도 화가 나는데 여기에 윤석열 정부가 가세했다는 게 너무 황당한 상황이다. 

 

이건 누가 봐도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매국노’나 미일의 ‘세작’이 할 짓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윤석열 대통령은 미일의 ‘특등공신’이라도 되고 싶었던 것일까?

 

일단 정부는 아사히신문 보도 내용이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아사히신문을 향해 허위 보도를 했다고 항의하거나 정정보도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김건희에게 ‘여사’라는 단어를 안 붙였다고 방송사를 징계하는 윤석열 정부의 평상시 모습이 아니다. 

 

SK하이닉스도 3월 4일 “한국 정부의 압박이나 설득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라며 보도참고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나 SK하이닉스의 발표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윤석열 정부의 압박이 있었다고 해도 그걸 곧이곧대로 공개했다가는 200군데 이상의 압수수색과 기업 관계자들의 구속을 각오하고 기업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 해명에도 의혹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정부와 SK하이닉스의 해명에도 아사히신문 보도가 사실일 것이라는 의혹을 떨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집권 후 지금까지 한국 반도체 산업을 체계적으로 무너뜨리려는 것으로 의심이 가는 정책을 계속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미국 투자를 살펴보자. 

 

2022년 7월 21일 삼성전자가 미국에 약 25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11개를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미국 정부의 압력을 받아 억지로 투자하는 상황이었는데 윤석열 정부는 우리 기업의 방패막이가 되어 미국의 압박을 완화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미국 편에서 투자를 부추겼다. 

 

순수 경제 논리로만 따지면 삼성전자는 미국보다 중국에 투자하는 게 훨씬 이익이다. 

 

하지만 당시 가석방 상태에서 8.15광복절 특별사면 물망에 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처지에서는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 2022년 5월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 삼성 반도체 평택캠퍼스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맨 오른쪽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대통령실


미국은 미국에 투자한 반도체 기업들에 보조금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삼성은 아직 받지 못하고 있으며 받더라도 예상된 액수에 한참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경제 1월 28일 자 보도 「반도체 보조금 푸는 바이든…삼성보다 인텔·TSMC 먼저 준다」에 따르면 보조금 이행 속도가 느려 반도체 업계의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삼성이 뒷순위로 밀릴 것으로 전망된다. 

 

또 2월 26일 러몬도 미 상무부장관은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행사에서 “보조금에 관심을 표명한 기업들의 상당수가 자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며 “(보조금을) 절반만 얻어도 운이 좋은 것”이라고 말해 충격을 주었다. 

 

미국이 사실상 보조금 사기를 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럴 때 정부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나서야 함에도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 보조금에 관한 어떤 대미 외교를 하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사기꾼 미국’의 공범이 아니냐는 의혹이 절로 나온다. 

 

소부장 기업에 관한 태도도 살펴보자. 

 

소부장이란 소재·부품·장비 업종을 말하며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 주로 언급된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일본 소부장 기업에 비해 한국의 소부장 기업은 상당한 열세에 있어 정부 차원의 보호·육성이 절실하다. 

 

그런데 2023년 5월 15일 윤 대통령은 일본 경제인들과 만나 “한국 기업들과 소부장 경쟁력이 강한 일본 기업들 간 상호 보완적 협력이 가능하다”라고 하였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우리 정부가 우리 소부장 기업 대신 일본 소부장 기업의 손을 들어준 꼴이라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결정적으로 윤석열 정부는 과학기술계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해 반도체 기술 발전을 가로막았다. 

 

정부는 2024년도 예산안에서 대부분 분야를 증액하면서 유독 교육 예산과 연구·개발 예산만 대폭 축소하였다. 

 

연구·개발 예산은 국가의 미래가 달린 일이라서 지난 33년 동안 한 번도 축소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무려 16.6%나 삭감한 것이다. 

 

특히 정부가 건드릴 수 있는 예산 범위로 축소하면 대략 25% 정도나 삭감한 상황이다. 

 

너무 심하다고 봤는지 국회를 통과할 때는 축소폭을 14.7%(4조 6천억 원)로 조금 줄이기는 했다. 

 

연구·개발 사업들 가운데 특히 반도체 관련 사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업 631개 가운데 예산 삭감 규모 상위 5개 분야는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기술, 우주, 디지털·데이터 순이다. 

 

일부 사업들은 90% 가까운 예산이 하루아침에 날아갔는데 이렇게 되면 사실상 그 사업을 접어야 하며 사업에 참여했던 연구원들은 일자리를 잃고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 연구·개발 예산을 4조 6천억 원이나 깎은 뒤 3월 4일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첨단 신산업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하는 윤석열 대통령.  © 대통령실


오마이뉴스 3월 4일 자 기사 「한국 떠나는 과학자의 탄식 “늦었어요, 망했습니다”」에 따르면 상당수 젊은 과학기술자들은 비정규직으로 여러 연구원을 떠돌아다니는 신세다. 

 

연구·개발 예산이 삭감되면 이들의 일자리가 가장 먼저 사라지고 결국 과학기술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가 고급 두뇌의 해외 유출을 부추기는 꼴이다. 

 

반도체는 흔히 ‘산업의 쌀’, ‘한국의 미래 먹거리’로 통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 구조에서 2022년 기준 수출의 19.3%나 차지하는 반도체는 우리가 반드시 지키고 키워야 할 산업이다. 

 

그런데 반도체 산업 보호·육성을 책임져야 할 한국 정부가 거꾸로 반도체 산업을 체계적으로 무너뜨리려는 것 같은 이상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과연 윤석열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문이 커갈 뿐이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