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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북한의 진짜 모습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15:07]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북한의 진짜 모습

문경환 기자 | 입력 : 2024/06/08 [15:07]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집권 기간 외교안보 분야를 돌아보는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5월 18일 공개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안보실 비서관과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최종건 교수와의 대담 형식으로 정리된 이 책에는 남북정상회담, 한미정상회담과 관련해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여러 뒷얘기가 담겨 있다. 이 가운데 북한과 관련한 부분을 살펴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본 김정은 국무위원장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내가 만난 김 위원장은 (정보 보고나 언론보도와-필자 주) 전혀 다른 모습이었어요. 아주 예의 발랐고요. 연장자에 대한 존중이 몸에 밴 듯 행동했지요”라고 하면서 “시종일관 그랬어요. 예를 들면, 북한에서 일정을 할 때 항상 먼저 와서 기다리고, 떠날 때 안 보일 때까지 배웅하고, 어디 들어갈 때는 항상 앞세우고, 말도 깍듯하고”라고 회고했다. (190쪽)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사람들이 먼저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예의에 밝다는 것이다. 

 

최종건 전 1차장도 “제가 특이하다고 느꼈던 게, 김정은 위원장이 대통령님에게 ‘백화원 초대소가 상당히 초라합니다. 대통령께서는 여러 세계 좋은 데 가셨겠지만, 참 초라합니다. 우리가 이 정도밖에 안 됩니다’라고 하는 것이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라면서 “따뜻하게 맞이하려고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양 시내에 도열한 시민들은 예전에도 본 모습이지만, 백화원 초대소까지 대통령님을 에스코트해 준 것은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라고 하였다. (260쪽)

 

2018년 9월 20일 남북정상이 헤어질 때의 장면도 인상적이다. 최종건 전 1차장은 “다 마치고 삼지연공항에서 공군 2호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는데요. 저도 그 비행기 끄트머리에 타고 있었습니다만, 이륙하기 전에 창밖을 보니 김 위원장 내외와 북측 인사들이 도열해 있었습니다”라고 하였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우리가 완전히 안 보일 때까지. 까마득해질 때까지 서서 배웅을 했죠”라고 회고하였다. (310쪽)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솔직한 모습에 관한 이야기도 여러 차례 나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4.27남북정상회담의 백미였던 도보다리를 떠올리며 “배석자 없이 두 정상이 진솔하게 속마음까지 털어놓으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는 게 좋았어요”, “내게 보여준 김 위원장의 모습은 우선은 매우 솔직했습니다. 그들의 고충도 솔직히 털어놓았고요. 그때 미국과 회담이 예정돼 있었는데, 미국과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하는 것에 대한 기대와 함께 아무런 경험이 없다는 것에 대한 걱정도 이야기했어요. 또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그런 것에 대한 질문이 많았죠”라고 했다. (116쪽)

 

▲ 도보다리 환담 모습.  © 청와대


물론 북한은 미국과 수십 년에 걸쳐 외교 담판을 해왔기 때문에 아무런 경험이 없지는 않다. 미국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한국의 순종적 대미 외교에 비해 적대적 관계에서 치열한 외교를 펼친 북한이 더 풍부한 경험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조언을 청했다. 이는 자신을 낮추고 문재인 전 대통령을 높이는 겸손함의 일면일 수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매우 예의 바르면서,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결단도 빨랐어요. 하여튼 내가 만난 김 위원장은 대화할 만하고 말이 통한다고 느껴지는 사람이었어요”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5년간 많은 외교를 해봤는데, 외교에서 제일 필요한 덕목이랄까, 가장 외교를 잘하는 방법은 솔직한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190쪽)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솔직한 품성 때문에 대화가 편했으며 이게 외교에서도 장점이 된다고 보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의견을 존중하였다고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그때 놀라운 모습을 본 게 또 하나 있어요. 북미 간에 폼페이오와의 사이에서 그런 일이 생긴 것에 대해서 내가 다시 지적을 했어요. 편지의 거친 표현들이 얼마나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지. 그래서 아니면 아니라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표명하면 되는 것이고, 통상적인 외교 어법은 반대조차 완곡하게 에둘러서 표현하면 반대라는 것을 다 알아듣는데, 그렇게 거칠게 표현하면 상대로서는 우리가 대화하자는 게 맞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고요. 그러자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가 문 대통령님한테 아주 혼난다’라고 하면서 김영철(당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필자 주)을 가리키며 ‘우리가 그런 것 신경 써야 돼요’라고 말하는 게 놀라웠어요”라고 회고했다. (295쪽)

 

▲ 2차 남북정상회담 장면. 김정은 국무위원장 옆에 앉은 이가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다.  © 청와대


더 놀라운 이야기도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한 가지 뜻밖이었던 것은, 언젠가 연평도를 방문해서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고통을 겪은 주민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김 위원장의 이야기였어요”,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놀라웠어요”라고 하였다. (294~295쪽)

 

물론 북한은 연평도 포격사건이 한국의 ‘도발’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어찌 됐든 자신들의 포격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장소를 방문해 직접 피해자들을 위로한다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서울 답방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태극기부대가 반대하는 것은 조금 있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하여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북한이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몽골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미국은 몽골에 호텔이 하나뿐이라서 곤란하다고 답했다. 경호나 의전 문제로 두 정상이 같은 호텔에 묵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북측에서는 미국이 그 호텔을 사용하고, 자기들은 게르(몽골 텐트)를 크게 설치해서 사용할 수도 있고, 또 자기들은 기차에서 숙식하는 데 익숙하다고 김 위원장이 내게 말했어요”라고 했다. (123쪽)

 

정상회담에 간 국가 정상이 천막이나 기차에서 숙식을 해결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데 실제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러시아를 방문할 때 종종 기차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소탈하고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남북은 4.27판문점회담 직전에 남북정상 간 직통전화를 개설했다. 하지만 실제 가동은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5월 26일에 있었던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회고하며 “번개 남북정상회담에서 내가 그 전화를 가동하자고 독촉했죠. 그에 대한 김 위원장의 대답은, 집무실이 노동당 청사에 있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 출근하고 대부분 지방을 다니기 때문에 없을 때가 많고, 보안도 염려되니 확실히 보안이 지켜지는 이메일로 하면 좋겠다, 이메일은 자기가 지방 현장에 가도 노트북을 늘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직통전화는 임종석 실장과 김여정 부부장이 관리하기로 하고, 정상끼리는 이메일로 연락하기로 그 회담에서 새로 합의했어요”라고 했다. (224쪽)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방 현지지도가 북한 언론에 공개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보인다.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재치 있는 농담이 많이 화제가 됐는데 이 책에도 새로운 이야기가 소개됐다. 최종건 전 1차장은 “대통령님이 김 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나보다 군사분계선 넘어서 더 멀리 간 것 같다고 이야기하니, 김 위원장 답변이 재치 있었다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어요. ‘아니, 대통령님은 평양까지 올라가시지 않았습니까. 백두산도 가시고’라고 해서 두 분이 웃으셨다고요”라고 말했다. (339쪽)

 

문재인 전 대통령이 본 북한

 

최종건 전 1차장이 “도보다리에서 두 분이 나눈 대화가 북한의 정책으로 나타난 적이 있었습니까?”라고 묻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예, 북한은 그 기조대로 접근했다고 생각해요”라면서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려고 노력한 것이 기본적으로 그러하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폐기 제안 등 북한이 나름대로 선제적으로 성의 있는 비핵화 조치를 내놓으면서 상승 조치를 요구한 것도 그렇게 볼 수 있죠”라고 답했다. (200쪽)

 

물론 북한도 내부 논의와 판단을 거쳐 위와 같은 결정을 내렸겠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제안을 상당히 열린 태도로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흔히 북한 사회를 폐쇄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게 잘못된 선입견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2018년 탁현민 당시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은 북한의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과 합동 공연 준비를 하다가 열병식을 밤에 하면 조명을 써서 극적 효과를 연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런데 이 조언을 반영한 건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이후로 북한이 열병식을 야간에 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북한은 열병식을 야간에 하며 심지어 대단지 아파트 준공식 같은 행사들도 야간에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남북은 9.19군사합의에서 비무장지대 안에 있던 감시초소(GP)를 전부 철수하기로 하였고 시범 조치로 상호 1킬로미터 이내 근접한 초소부터 철수하였다. 철수한 감시초소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은 어디로 갔을까?

 

최종건 전 1차장은 “1,000~1,500명이 다른 GP로 분산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병력을 고스란히 모아서 원산 갈마지역 공사장으로 보냈더라고요. 거긴 본디 군이 공사를 하니까요. 우리는 GP에 근무하던 병력이 워낙 정예병이어서 재배치했는데, 북한은 원산 갈마 경제개발구역으로 보내서 노동력으로 활용한 겁니다”라고 하였다. (268쪽)

 

궁극적으로 모든 감시초소를 철수하기로 한 9.19군사합의의 정신에 비춰 보면 북한이 더 철저히 합의를 이행했음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NLL을 기준으로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한다는 것이 우리로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사실 북한으로서는 큰 양보를 한 것이었어요. 자신들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해상경계선이 무색해졌으니까요. 또 하나는 NLL이 북한의 옹진반도, 황해도 쪽하고 매우 가깝기 때문에, NLL을 기준으로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게 되면 북한 측의 육지와 아주 근접하게 돼서 북한 입장에서는 안보에 상당한 부담이 되죠. 그런데도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는, 북한도 당시 상당히 양보하면서 성의를 보인 것이라고 평가해 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라고 하였다. (276쪽)

 

▲ 북방한계선(NLL) 위치. [출처: Midway]


북한이 예민해하는 안보 문제에서 상당한 양보를 해서 채택한 게 9.19군사합의라는 것이다. 이걸 다시 무효로 한 윤석열 정부의 결정은 심각한 패착이라 하겠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비핵화에 대해서는 남북 간에 협의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 그때까지 일관된 북한의 입장이었어요. 그래서 4.27판문점회담 때 비핵화 합의는 원론적 합의여서 거기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구체적인 로드맵에 해당하는 영변 핵단지 폐기를 남북 간에 합의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고 특별한 일이었죠”라고 하였다. (279쪽)

 

북한이 한국 정부를 상당히 존중하고 배려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종건 전 1차장은 “미국은 베트남하고도 유해발굴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특히 베트남전 때 정글에서 미군이 많이 사망했는데요. 베트남 정부가 미군 유해를 발굴하고 미국이 비용을 부담합니다. 정글이어서 그런지 넘겨받은 유해 속에 동물 뼈가 많이 섞여 있다고 합니다. 미군 유해발굴 담당자한테 제가 직접 들은 건데요. 북한에서 돌려준 유골함에는 동물 뼈가 들어 있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는 거예요. 또 유해발굴단이 체류하는 동안 북한 사람들이 음식을 주고 과일을 직접 깎아주기도 하면서 호의를 많이 베풀었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473쪽)

 

북한은 미국을 ‘철천지원수’이며 적이라고 인식하지만 그와 별개로 일단 합의한 일은 성의껏 완벽하고 깔끔하게 처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미국이라는 나라는 ‘원수’일지라도 미국 국민을 ‘원수’로 대하는 건 아니라는 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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