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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이 돌아봐야 할 것들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4/06/14 [06:47]

문재인 전 대통령이 돌아봐야 할 것들

문경환 기자 | 입력 : 2024/06/14 [06:47]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집권 기간 외교안보 분야를 돌아보는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5월 18일 공개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안보실 비서관과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최종건 교수와의 대담 형식으로 정리된 이 책에는 남북정상회담, 한미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여러 뒷얘기가 담겨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아쉬운 지점이 한둘이 아니다. 역대 정권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세 차례나 진행했고(그것도 2018년 한 해에만), 북미정상회담 성사라는 유리한 조건도 갖춰졌지만 그에 비해 남북관계에서 이룬 성과는 왜소해 보인다. 

 

물론 두 개의 남북정상선언과 9.19남북군사합의 등 굵직한 성과가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합의라는 건 이행이 되었을 때 의미가 있을 뿐 그렇지 않으면 종잇장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이행된 합의 조항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정권이 바뀌고 2년 만에 모든 합의들이 실질적으로 폐기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대미 의존성 때문이다. 

 

▲ 2018년 5월에 열린 한미정상회담의 한 장면.  © 청와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책에서 “미국은 초강대국이니까요.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죠”라고 했다. (270쪽) 

 

미국에 결정적인 힘이 있고 한국은 그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강했던 듯하다. 이런 이유로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나고 그 후 북미대화도 진전이 없자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뭔가를 더 추진하지 못했다. 

 

물론 책에서는 북미관계가 안 풀려도 한국이 독자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금 상황은 남북관계 발전이 북미관계의 발전과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로서는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 북미관계 발전을 견인해 가야 하는데, 미국은 생각이 다를 수 있죠”라고 하면서도 “만약 계속 지체된다면 남북 간에 먼저 속도를 낼 수도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235~236쪽)

 

또 “하노이 노딜 이후에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은 상황을 돌이켜보면, 그런 국면에서 우리가 좀 더 뭔가 상황을 타개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물론 남아요”라고도 했다. (329쪽)

 

그런데 당시 문재인 정부는 방향을 잘못 잡았다. 그 상황에서 한국은 할 수 있는 것, 북한이 호응할 만한 것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어려움을 느꼈던 부분은 대북 제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남북 간에 다시 대화가 시작돼서 제재 범위 안에서라도 최대한 협력을 해내고, 제재에 관계되는 부분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UN 안보리에 예외 승인을 요청하는 등 노력을 더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죠”라고 했다. (236쪽)

 

정말 대북 제재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우리는 개성공업지구에 진출하였던 남측 기업인들의 어려운 사정과 민족의 명산을 찾아보고 싶어 하는 남녘 동포들의 소망을 헤아려 아무런 전제 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전제 조건이나 대가 없이’라는 말은 대북 제재를 피할 길을 열어주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게 문재인 정부가 할 수 있고, 북한도 호응할 최적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업은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승인’을 구하려다 실패해 끝내 재개되지 못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9년 3.1절 기념사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 방안도 미국과 협의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일주일 후 미 국무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에 대한 제재 면제를 검토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자 2020년 7월 통일부는 ‘개별관광’, ‘작은 교역’이라는 꼼수를 들고나왔다. 통일부는 이게 대북 제재를 우회할 방법이라고 선전했다. 

 

‘개별관광’은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개인이 여행사를 통해 개별적으로 북한 관광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정부가 막지만 않으면 대북 제재나 실정법을 건드리지 않고 즉시 시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논의만 하다가 흐지부지 정리해 버렸다. 게다가 이 문제도 미국의 ‘승인’을 얻으려 시도하다가 실패하였다. 당시 월간조선은 “문재인 정부, ‘북한 개별 관광’은 ‘내정’이라면서 왜 미국과 ‘협의’하나?”라고 비웃었다. 더 웃기는 건 이 사업을 1년 넘게 홍보하면서 정작 북한에는 제안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개별관광’은 국민을 속이기 위한 쇼였다. 

 

‘작은 교역’은 말 그대로 대북 제재에 걸리지 않는 작은 교역부터 시작해서 성과를 내보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2020년 8월 국내 민간 단체가 한국 설탕과 북한 술을 물물교환하는 사업을 추진했고 이게 ‘작은 교역’의 사례라며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갑자기 국가정보원이 북한 측 사업 상대인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가 대북 제재 대상이라고 보고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웃기는 건 그 회사가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북 제재 대상 목록은 누구나 볼 수 있는데도 국정원이 거짓 보고를 했고 통일부는 그걸 알면서도 입을 닫았다. ‘작은 교역’ 역시 할 생각도 없으면서 국민을 속이는 쇼였던 것이다. 

 

왜 이런 이상한 쇼를 했던 것일까? 

 

최종건 전 1차관은 책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관계 중요 유산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이라면, 우리 정부는 군사합의를 유산으로 남긴 것인데요. 그러고 보면 그 소중한 유산들을 보수정부가 모두 무너뜨렸습니다”라고 하였다. (266쪽)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김대중 정부의 업적이고 문재인 정부의 업적은 9.19군사합의라는 말이다. 그런데 최 전 1차관 말처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무너뜨렸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는 새로운 업적을 쌓기 전에 무너진 것부터 다시 세웠어야 하는 것 아닐까? 

 

북한이 볼 때 한국 정부와 합작 사업을 하면 다음 정부가 무너뜨리고, 그다음 정부는 또 다른 것을 하자고 하고, 이런 게 반복되면 어떻게 한국 정부를 믿을 수 있겠는가. 문재인 정부가 정말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자 했다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부터 재개한 다음 군사합의든 뭐든 추가로 추진했어야 한다. 

 

그런데 최 전 1차관의 발언을 보면 아마도 문재인 정부는 독자적인 업적을 남기는 것에나 관심 있지 이전 정부의 업적을 계승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남북관계 발전이 목적이 아니라 치적 쌓는 게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적극성을 발휘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마저도 미국의 눈치를 보고 ‘승인’만 기다리다가 허송세월하고 말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까지 40%대라는 전례 없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하지만 2023년 11월 말 한국갤럽이 역대 대통령 지지율 여론조사를 한 결과 ‘잘한 일이 많다’(38%)보다 ‘잘못한 일이 많다’(46%)는 결과가 나왔다. 순위로 봐도 노무현, 김대중, 박정희, 김영삼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IMF 사태를 초래한 김영삼보다도 인기가 없는 것이다. 

 

지난 총선 때도 괜히 민주당 선거를 도와주는 바람에 역풍이 불었다는 불만이 많았다. 

 

이렇게 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돌아보고 반성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이번에 펴낸 회고록을 보면 반성은 별로 없고 치적 자랑과 남 탓만 눈에 띈다. 아쉬운 지점이다. 

 

촛불국민의 힘으로 집권했으니 촛불국민을 믿고 달려들었다면 아무리 적폐세력의 방해가 많았다고 하더라도 모두 돌파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남북관계 가로막고 뒤통수나 치던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항의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무기력하게 남북관계 성과를 다 유실한 모습을 보면서 촛불국민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 한번 생각이라도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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