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한때 세계 유일 초강대국을 자처했던 미국의 힘이 빠지면서 국제질서가 변화하고 있다. 군사력은 국제질서의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과 서방 진영의 군사력은 급속히 약해지고 있지만 반미·반서방 진영의 군사력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이를 살펴본다.
미국 자본이 만든 할리우드 영화에는 미국인이 개발한 가공할 최첨단 무기들이 나온다. 마블이 제작한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에는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아이언맨 슈트가 등장한다.
아이언맨 슈트를 입은 주인공 군수업자 토니 스타크는 미국의 최신 전투기보다도 빠르게 비행하며, 기존보다 더욱 강력한 미사일과 공격용 레이저 등으로 적을 해치운다.
그런데 정작 현실에서 미국이 만든 첨단 무기는 대부분 고장과 실패로 죽을 쑤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3가지 장면으로 살펴본다.
#장면1. 몇 미터도 못 가서 추락한 탄도미사일
올해 1월 30일(이하 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근처 해상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영국의 전략핵잠수함 HMS 뱅가드호가 발사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트라이던트 II가 수 미터도 날지 못하고 바다에 추락한 것이다.
미국의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이 제작한 트라이던트 II의 사거리는 최장 1만 2,000킬로미터에 이른다. 1990년에 미국이 실전 배치한 이후 수십 년 동안 미국과 영국에서 사용된 유일무이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이기도 하다.
정상 작동했다면 트라이던트 II는 영국군이 의도한 대로 브라질과 서아프리카 사이 대서양에 떨어졌어야 한다. 그러나 미사일에 부착된 보조 로켓에 문제가 생긴 트라이던트 II는 1단계 발사체의 점화조차 실패했다.
당시 영상을 보면 트라이던트 II는 발사되자마자 360도로 빙글빙글 돌다가 뱅가드호 근처 해상으로 고꾸라졌다. 무기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보기에도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영상] 고작 수m 날다 ‘꼬르륵’…영, 핵잠 SLBM 발사 또 실패 ‘망신’」, 연합뉴스, 2024.2.22.)
그런데 8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6년 6월 영국의 HMS 벤전스호는 서아프리카 인근 해안 방향으로 트라이던트 II를 발사했다. 하지만 트라이던트 II는 엉뚱하게도 완전히 다른 방향인 미국 쪽으로 날아갔다. 미국으로 날아가던 트라이던트 II는 오작동을 대비한 자동 파괴 기능에 따라 공중에서 폭발했다.
이처럼 트라이던트 II는 8년 전에도 심각한 결함이 있었는데 8년이 지난 뒤에는 아예 시험발사조차 실패했다. 기술과 성능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구매한 트라이던트 II의 시험발사를 성공시키고자 막대한 돈을 퍼부었다. 지난 3년 동안 트라이던트 II를 싣는 뱅가드호의 정비 비용으로 5억 파운드(약 8,792억 원)를 썼다고 한다.
영국 하원도서관 보고서에 따르면 트라이던트 체계에 들어가는 비용은 총 125억 2,000만 파운드(약 22조 원)에 이른다. 트라이던트 체계의 연간 운영 비용만 영국 국방예산 총액의 6%로 추정된다.
그런데 영국 국방부는 시험발사 실패를 부정했다.
트라이던트 II 시험발사 실패를 직접 참관한 그랜트 샙스 영국 국방부장관은 잠수함과 트라이던트 미사일, 핵탄두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英 미사일 시험 발사 또 실패했지만 “트라이던트 절대 신뢰”[통신One]」, 뉴스1, 2024.2.22)
또 영국 국방부는 성명에서 “트라이던트 II 시험 도중 비정상 현상이 발생”했다면서 “국가안보상 문제로 더 이상의 정보를 알릴 수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영국의 핵억지력은 계속 안전하고 확실하며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국방부의 처지에서는 막대한 혈세를 쓰고도 시험발사에 실패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던 듯하다. 영국 국방부로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트라이던트 II는 미국의 록히드마틴이 만들었고 영국군은 어디까지나 이를 구매해 썼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이번 트라이던트 II 시험발사의 실패는 30여 년 전부터 예정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미 해군이 1987~1989년에 트라이던트 II 시험발사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때도 트라이던트 II가 360도로 빙글빙글 돌다가 고꾸라지는 현상이 있었다. 미국이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해결책을 찾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영국의 트라이던트 II 시험발사는 러시아를 겨눈 서방 진영의 핵억지력을 입증하는 중요한 시험이기도 했다.
미국, 영국은 30년 넘게 트라이던트 II를 쓰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시험발사 실패는 서방 진영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을 활용한 핵억지력이 파탄 났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역시 1970년부터 실전 배치한 미니트맨 III 한 종류만 쓰고 있다. 미국은 2016년이 돼서야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 센티널을 개발하기로 했는데 2030년에야 완료될 예정이라고 한다.
트라이던트 II와 미니트맨 III을 개발한 뒤 수십 년이 지났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은 새로운 종류의 미사일을 개발하지 못했다. 미국과 유럽의 기준에서는 여전히 두 미사일이 ‘첨단 무기’인 셈이다.
#장면2. 돈만 잡아먹는 애물단지 전투기
미국에는 F-35로 대표되는 첨단 전투기가 있다. F-35는 트라이던트 II와 마찬가지로 록히드마틴이 개발했고, 고장이 잦아 실제 운용이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2021년 2월 17일 찰스 브라운 미 공군 참모총장은 기자들에게 F-35를 값비싼 슈퍼카에 비유하며 “출퇴근용으로 페라리를 타지는 않는다. 최고 사양의 전투기를 낮은 수준의 전투에 투입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그런데 F-35가 잘 쓰이지 않는 진짜 이유는 걸핏하면 고장이 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록히드마틴은 F-35의 잦은 고장에 대비(?)하는 첨단 기술을 적용했다. F-35 기체 각 부위에서 고장이 나면 관련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송해 부품을 교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고장의 원인을 해결하는 근본 대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심지어 F-35는 아직 개발도 끝나지 않은 미완성품이다. 현재 F-35에 딱 맞는 운영 프로그램과 엔진도 개발되지 않았다. F-35는 어쩔 수 없이 기존의 다른 전투기가 쓰던 엔진, 레이더, 전자 장비 등을 쓰고 있다.
이는 F-35 운용 시 추락 등의 사고가 잦은 요인으로 보인다.
미군에 따르면 2023년 2월 기준 F-35의 월평균 임무 가능률은 목표치인 65%보다 낮은 53.1%다. 여기서 더 좁혀보면 부분적 임무가 아닌 ‘완전한 임무 수행 가능 비율’은 53.1%를 크게 밑도는 30%에 그친다고 한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주요국은 공동 개발한 전투기 유로파이터 타이푼(이하 유로파이터)을 쓰고 있다.
이들 국가는 1983년 제작을 시작한 지 20년 만인 2003년에 유로파이터를 도입했다. 유럽 각국이 오랜 시간 기술 협력을 거쳐 제작한 만큼 성능이 뛰어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14년 10월 27일 스페인 일간지 ‘엘 콘피덴시알 디지털’은 「대부분의 스페인 유로파이터 제트기들은 날지 못한다: 보고서(Most Spanish Eurofighter jets can't fly: report)」 보도에서 유로파이터의 운용 실태를 고발했다.
스페인 군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유로파이터 대다수는 고장이 잦은 데다가 예비 부품 부족, 검사 지연 등으로 ‘비행 불능’ 상태다. 스페인이 보유한 유로파이터 가운데 6대만이 정상 운용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당시 스페인 정부는 국방예산을 늘리면서 100억 유로(약 14조 8,0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유로파이터는 자금 투자 대상으로 뽑히지도 못했다.
독일에서도 유로파이터 기체에서 비행과 관련한 결함을 발견해 비행 중지 조처를 내렸다.
#장면3. 미국, 유럽을 앞서는 북·중·러의 첨단 무기
미국과 유럽은 북·중·러가 속속 개발하는 첨단 무기에 밀리고 있다.
최근 북·중·러 등 여러 나라가 속속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해 실전 배치하고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을 실전 배치한 나라는 북한(화성포-8형, 명칭 미상 원뿔형 미사일), 중국(DF-ZF), 러시아(아방가르드), 이란(파타-2) 등이다.
미 의회 연구원(CRS)은 2021년 7월 9일 발간한 연구보고서 「미국의 극초음속 무기 개발현황: 배경과 의회에 대한 이슈」에서 미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이 2000년대부터 시작됐으나 경쟁국인 러시아, 중국과 비교하면 뒤떨어졌다고 평가했다.
2024년 3월 12일 미 하원 국방위 소위원회 청문회에서 더그 램본 위원장은 육군과 해군의 합동 장거리 극초음속 무기(LRHW)와 공군의 극초음속 애로(Arrow) 미사일 개발이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현시점에서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적들보다 훨씬 뒤처져 있게 된다”라고 했다.
미국은 전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는 막대한 국방예산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북·중·러가 훨씬 적은 비용을 들여 제작하는 첨단 무기에 밀리고 있다. 그 이유를 2가지 측면에서 짚어볼 수 있다.
첫째는 미국이 관료주의적 군산복합체 국가라는 점이다.
록히드마틴 등 군수업체는 의회의 승인을 거친 정부 예산을 받아 무기를 개발하고 미군은 완성된 무기를 구입해 사용한다. 군수업체는 예산을 받고자 군 관계자와 의원들에게 로비하는 과정에서 성과를 부풀리곤 한다.
이에 관해 미 공군 및 우주군의 첫 최고설계책임자를 맡았던 프레스톤 던랩은 2022년 4월 1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방부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미국은 잠재적인 적에게 기술 우위를 잃을 수 있다”라며 사직서를 올렸다. 그는 “부임 첫날 (국방부는) 예산이나 권한은 물론 사람이나 비전도 없다는 걸 알았다”라며 국방부를 “세계 최대 관료 집단”이라 불렀다.
던랩 이전에 미 공군 첫 최고보안책임자이자 국방부 소프트웨어 최고담당관인 니컬러스 체일런도 2021년 10월 “국방부의 관료주의와 과도한 규제가 절실한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라며 사임했고, 최고자료책임자 데이비드 스파이크도 2022년 4월 초 비슷한 이유로 사임했다. (「“미군은 거대한 관료집단, 中에 따라잡힌다”…고위간부 또 사임」, 국민일보, 2022.4.20.)
미국 군수업체가 소련 해체 이후 30여 년 동안 첨단 무기 개발에 의욕을 보이지 않고 안주해 온 측면도 있다. 경쟁국이 사라졌다고 판단한 군수업체는 새로운 첨단 무기를 개발하기보다는 원래 있는 무기와 부품을 팔아 이윤을 챙겼다. 이 기간 미국의 첨단 무기 개발이 늦춰졌지만 북·중·러는 첨단 무기 제작, 개발에 힘을 실었다.
두 번째로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폐해다.
미국이 개발한 전투기는 세계 곳곳에서 추락 사고가 잦다. 왜 추락 사고가 잦은지에 관련해 록히드마틴과 함께 미국 군수업체를 대표하는 보잉의 여객기 사고를 주시해 볼 만하다.
지난 1월 미국 오리건주에서는 막 이륙한 알래스카 항공 소속 보잉 여객기 몸체에 구멍이 뚫리고 창문이 깨졌다. 4월 26일 뉴욕에서 이륙한 델타 항공 소속 보잉 여객기는 몸체 안쪽의 비상 탈출용 미끄럼틀이 떨어져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야 했다.
지난 5월 9일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는 보잉 여객기의 왼쪽 날개에 불이 붙어 35미터 상공에서 추락하는 사건이 있었다. 같은 날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는 보잉 여객기의 앞쪽 타이어가 착륙 도중 폭발했다. 6월 5일에는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에서 승객 389명을 태우고 이륙하려던 보잉 여객기가 엔진에서 불꽃이 일어 비상 착륙했다.
잦은 사고와 관련해 30여 년 동안 보잉의 품질 기술자로 일했던 존 바넷 씨는 보잉 경영진이 “(여객기의) 생산 지연을 줄이기 위해 중요한 안전 단계를 건너뛰었다”라고 전했다. 보잉은 여객기 기준에 맞지 않는 부품을 사용하는 등 안전 관리를 무시했다고 한다. 여객기야 추락하든 말든 보잉 경영진이 자신들의 주머니를 배불리는 데 집중했다는 얘기다.
성능이야 어떻게 되든 막대한 돈을 벌면 그만이라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미국의 첨단 무기 개발, 도입 과정에도 반영됐을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다.
(계속)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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